1954년 7월호
현대적 드라마 플롯과 명랑한 결말
이야기는 집배원 전삼룡, 그의 딸 전재숙, 요양소 환자 최명수, 그를 간호하는 장명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대체로 집배원 삼룡이가 장명희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과정을 그려가고 있으며, 점차 주변인물과 얽혀가는 관계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삼룡이 입장에서 보면 썩 좋은 결말이라 할 수 없지만 반전을 유쾌하게 그려내는 명랑소설 특유의 해피엔딩이 그대로 나타나 있어 흥미롭다.
소설에서 삼룡이는 짝사랑하는 명희에게 한발짝씩 다가갈수록 세상을 더욱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우리도 움츠린 몸과 마음을 활짝 열고 화사한 봄날의 꽃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대화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세상이 더욱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소설 외에도 한가지 더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소설 첫 부분에 들어간 제목과 삽화다. 어린 시절 국어 교과서의 철수와 영희 그리고 바둑이 그림들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해방 후 수십 년간 교과서 삽화를 그려온 김태형 화백이 그 그림들을 그렸던 장본인인데, 당시 체신문화의 표지나 내지 삽화도 여러 차례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집배부의 사랑에 그린 삽화에서도 소박하고 정감 있는 김 화백 그림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 잠시나마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명랑소설 ‘집배부의 사랑’
“사람이란 살게는 마련이야...”
입버릇처럼 뇌까리는 삼룡(三龍)이의 말이었다. 삼룡이의 설을 빌면, 몸둥이에 달려 있는 어떤 부분품(部分品)이 그 몸 전체를 먹여 살린다는 것이다.
대서소니 소설가니 하는 따위의 손 끝 하나로 살아가는 축들이 있는가 하면, 아나운써-니 교환수니 하여 입부리만 가지고 생애를 삼는 패도 있고 또 자기처럼 다리가 튼튼하기에 살아갈 수 있는 위인도 있다는 것이다.
“내야 글세 무슨 재주가 있냐 말이야. 만일 내가 절뚝발이였거나 각기병이라두 있어보라구, 체전부 노릇을 어떻게 하겠나. 그랬드면 북어처럼 말라비틀어졌지 별 다른 도리가 있었을까?” 하면서 뭉싯한 다리를 대견한 듯이 쓰다듬곤 하는 것이었다. (후략)
* 원문은 현대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있으나, 당시의 시대적인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체신문화에 소개된 것을 동일하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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