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3월호
「커-피」의 이야기_ 글 김기오
커-피란 그 맛에 있어서나 제조과정에 있어서나 한국 사람들의 전통과 식성에 맞지 않는 다분히 이국성을 띤 차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한때 우리 선조로부터 ‘잠 오지 않는 약’으로서 경원했던 이 커-피가 현금에 이르러서는 우리들의 생활과 떠날 수 없는 위치를 점유하여 버렸으며, 국내에서 거대한 소비량을 보이고 있으니 이 커-피란 차가 언제 한국에 도입되었으며 어떠한 변천을 거쳐 현재에 이른 것인가? 이러한 일맥의 사실들을 들추어 보는 것이 적이 흥미 있는 일일상 싶다.
그리고 기간 많은 다방에서나 일부 가정에서 무미하게 끓여지고 또 마구 마셔지고 있는, 마치 숭늉에 설탕을 탄 것 같은 소위 커피가 그래도 제법 자랑삼아 내어놓여지고 있는 형편이니 어떻게 해서 좀 더 풍미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또 과연 이 커피란 차가 우리 한국 사람의 체질에 맞는 것인가 등 커피가 가진 바 우리 국민생활에 점한 중요성에 비추어,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여기에 몇 줄 커피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소위 문화인을 자처하고 커피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일부 인사들도 이 사실을 잘 모르는 상 싶다. 커피가 최초 한국에 등장한 것은 광무2년(1898년) 경이었는데 당시 주한 아라사 공사관에서 열린 파티에서 본국으로부터 가져온 커피를 끓여 내 놓은 것이 처음이다(한국에서 최초로 커피를 접한 사람은 1895년 아관파천 당시 고종황제라는 설이 가장 많다 _편집자 주). 이때 생후 처음으로 이 씁스륵한 차를 대접받은 이 나라의 귀빈들은 주체자 측의 체면을 보아 마시기는 하였으나 좀처럼 맛을 알 수가 없어 끝내 차 이름을 쓴차라고 하였다 한다. 이것이 커피가 한국인의 체내에 슴여든 최초요, 또 쓴차란 별명을 듣는 극히 기이한 차로서 왕실과 일부 귀족들에게 알려졌던 것이다.
이후 한국 사람에 의하여 식탁에 오른 것은 이조말엽 현 덕수궁 석조전에서 왕실이 베풀은 연회에서였는데, 당시에 사용한 원료 및 셋트 등은 아라사 공사관에서 선물 받은 것인데, 그때 다기는 철제완이었다. 이러한 경로를 밟아 차차 유행되기 시작하여 YMCA 조선호텔 식당에서도 나오고 당대의 신사들 층과 특히 일본을 다녀온 인사들이 애음하는 사이에 대중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이것이 일반가게에서 나오게 된 것은 서울의 전본가삼정목 ‘니꼬니꼬’식당이었으나 그때만하여도 커피란 양식에 부수(附隨)가 된 것으로 알았었다.
그 후 다방이 등장하였으나 제2차 대전이 일어남에 커피의 반입금지로 그 자취를 감추자 일제는 그 대용품으로 콩가루와 잣껍질을 태워서 만든 것을 식당에서 사용하였는데 제법 커피 같은 냄새는 풍겼다. 종전 후 외군이 진주함에 따라 원료입하가 허용하였고 안가(安價)한 까닭에 오늘날과 같은 다방전성시대가 되었다.
커피의 사태! 일부인사들은 다방 같은데 앉아서 설탕도 우유도 필요 없는 커피를 마시고 극히 우월한 표정으로 떠드는 것을 본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언제부터 커피당이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과연 우리 한국 사람에게 그 설탕도 우유도 넣지 않는 커피가 신체에 맞는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영양부족에 걸릴 판인데 과히 장려될 수 없는 것이라 한다. 왜냐하면 외국 사람들이나 미국사람들이 커피에 설탕이나 우유를 넣지 않는 것은 커피가 체내의 지방분을 흡수 배출하는 효과를 내는 때문에 육식을 많이 하는 그들의 위대증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서양 여자들은 그의 보전을 위하여 25~26년 때에 커피를 가장 많이 마신다고 한다. 그러므로 육식을 많이 하는 한국 사람은 모르거니와 그렇지 못한 사람은 육신에 해롭다는 것이다.
같은 동양 사람이라도 중국 사람들은 돼지고기 같은 지방질이 많은 음식을 먹건만 커피는 절대로 마시지 않는다. 사실상 중국은 무려 70종이나 되는 유명한 엽차가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다소 커피를 마신다고 하면 해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리라. 그들은 거센 바다와 야간작업을 위하여 하나의 흥분제로 이 커피를 애음한다고 한다. 한편 커피란 어떻게 끓여야만 진미를 낼 수 있는가? 어떤 전문가는 혼성물이 없는 생수로 끓이게 되는 경우에는 물을 최고열도로 끓였다가 일단 식혀서 다시 식히여야 된다고 하며 이것은 소독약분을 제거하기 위함이라 한다. 그리고 맛을 시험하려면 먼저 소금을 먹은 다음 한수가락의 커피를 마셔서 헤바닥의 짠맛이 없어져야 비로서 진미를 낼 수 있다고 한다. 날로 늘어가는 다방이요 다도락이 성행하는 이 나라의 새로운 풍속도 앞에 욕된 말이 아닐른지 모른다.
* 원문은 현대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있으나, 당시의 시대적인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체신문화에 소개된 것을 동일하게 게재합니다.
※blog.daum.net/e-koreapost에서 전문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