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12월호
김동리가 체신문화에‘난중기’를 발표한 시기는 1953년 여름, 한국전쟁을 겪은 후 그가 서울로 돌아오기 전, 첫 번째 부인 김월계를 두고 당시 부산일보사 편집국장의 아내인 손소희와 동거하던 때다. 이 사실은 피난시절 부산중앙일보 사회면에 특종으로 실려 김동리는 괴로운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난중기의 주인공 병수는 전쟁 당시 그 자신의 투영이다. 또 내용을 보면, 유복했던 첫 부인의 경제생활로 인한 성격차이, 두 번째 부인 손소희의 알뜰한 면 등이 등장인물인 아내와 순애 속에서 대조되는 것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김동리는 잘 알려진 것처럼, 해방 후 ‘문학의 사회현실에 대한 참여와 공리성’을 중시하는 좌익계 문인들의 문단이 형성되고 두각을 나타내던 시기에, ‘문학은 역사와 현실을 뛰어넘어 더 본질적이고 일반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 인간과 생명의 근본적인 운명을 탐구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또 소신 있는 작품 활동과 함께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하며 ‘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해 문학의 이념적 편향도 경계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서울이 공산 치하에 넘어가면서 사회주의 정치보위부에서 김동리 등 민족진영 문화계인사를 지명수배 하자, 김동리는 서울이 수복되기 전까지 서울 외곽 허름한 집 천장에 은신 하는데, 그 지옥 같던 시기의 숨 막히는 상황이 그의 소설에 많이 나타나 있다.
그는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숨어 지내면서도, 대구의 남한 정부와 연락을 취하려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윤수와는 달리 무기력하게,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만을 한다. 다방의 뒷방에서 숨 막히는 피난생활을 하던 인식에게 마지막 남은 것은 억눌린 성욕의 문제뿐이다. 그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서울이 수복되는 것을 본다.
_ 자유의 역사 中
지난 여름 육이오 사변 때 병수가 도강(渡江)에 실패를 했기 때문에 그의 목숨을 지키노라고, 여러 가지 신고를 겪은 아내라, 그런 일을 두 번 또 당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병수가 그 뒤, 아내의 은공에 보답했다기보다 배반했다고 그의 아내는 간주하는 것이며, 그렇도록 병수는, 이번 피란 문제에 있어서도 자기 자신이나 어떻게 떠나갈 것 같은 그따위 걱정만을 있다금 풀숙풀숙 몇 마디씩 던졌을 뿐이요, 아내나 아이들을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그와 더부러 일찍이 상의가 없었으므로, 저이들은 거기서 다 죽어버리라는 뺏장이라고, 아내는 속으로 병수를 자못 괘씸하게 생각하는 점도 있었던 것이다.
_ 난중기 中
난중기의 시간적 배경은 서울 수복 후 중공군이 다시 38선까지 밀고 내려왔던 1.4후퇴 때로, 주인공 병수가 본인과 가족들의 소개(疏開)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며칠 동안 일어난 일들이다. 아내와 두 아이를 먼저 보내고 집안 시중을 들던 순애와 무혁이 그리고 병수가 남아 집을 지키지만, 결국 병수는 우연히 국회의원 가족 피난열차표를 얻어 피난을 떠난다. 하지만 터질 것 같은 열차 안에서의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열차에서 내리고, 다시 돌아와 자전거에 무혁을 태우고 떠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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