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총국
“각국과 통상을 한 이후로 안팎으로 관계되는 일이 날로 증가하고 나라의 무역에 대한 소식이 그에 따라서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 체전(遞傳)을 합당하게 하지 못하면 원근의 소식을 모두 연락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정총국(郵征總局)을 설립하도록 명하니 우선 연해 각 항구에 오가는 신함(信函)을 맡아서 처리하고 내륙의 우편에 대해서도 점차 확장하여 공사(公私)에 이롭게 하라.” 이 글은 1884년 4월 22일 고종이 내린 왕명으로, 우리나라 근대 우편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문건의 일부다. 1884년 4월 22일 개화파 홍영식을 초대 총판(總辦)으로 하여 우정총국이 개설됨에 따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행정제도인 우정업무가 11월 18일 서울-인천 간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우편업무는 중앙에 우정총국을 두고 지방에 우정국을 두는 체계를 갖추었으나, 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의 실패와 함께 우정총국은 폐쇄되었다. 이후 1893년에 전우총국이라는 이름으로 우편업무가 다시 이어졌고, 공무아문 역체국, 농상공부 통신부, 통신원 등으로 이어나갔다. 우정총국은 조선 초기 국립병원인 전의감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의 지붕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현재는 우정기념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기념관 기능에 따라 일부를 고쳐 옛날 모습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지는 못하다. 기념관 안에는 우표와 문헌,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 건물은 처음으로 근대식 우편제도를 도입하여 국내· 외 우편사무를 시작한 유서 깊은 곳으로 그 의미가 크다. 1970년 유적건조물 근대교통·통신시설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제213호로 지정되었다.
우정총국 · 사적 제213호
지정(등록)일 : 1970.10.29
소재지 : 서울 종로구 견지동 397
인천우체국
인천우체국은 서울체신청 관내에서 가장 오래된 우체국사로 건축된 지 80여 년이 지났다. 1924년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우편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지은 건물로, 인천우편국으로 건립되어 1949년 8월에 인천우체국으로 개칭되었다. 인천우체국은 1982년 유적건조물 근대교통·통신시설로 지정되어 증축이나 개축을 할 수 없게 되자 2003년 4월 25일 연수구 연수동에 새 청사를 지어 이전하였다.
건립초기 이 건물은 당시 유행하던 절충주의 양식을 단순화한 구조로 입구 양쪽에 큰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 기둥머리 없는 작은 기둥을 여러 개 받쳤다. 윗부분에는 둥근 돔 모양의 탑옥을 올려놓은 것이 일반적인데 이 건물에서는 생략되었다. 당시 관공서 건물은 대체로 탑옥을 올린 모양이었는데 이 건물은 기본 형식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구조는 벽돌조로서 바닥만은 콘크리트로 시공했다. 외부마감은 징두리에만 화강암을 붙이고, 나머지 상부는 시멘트 몰탈로서 석조모양을 본뜨고 있다. 6·25 당시 일부 파괴되어 1957년 지붕 부분이 개수되었다. 현재는 문화재청사로 보존, 관리되고 있다. 또한, 인천우체국은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집배원을 도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천우체국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
지정(등록)일 : 1982.03.02
소재지 : 인천 중구 항동 6가 1
곡성 삼기우체국
1948년 삼기면사무소 용도로 지은 1층 건물로 1964년 8월 15일부터 우체국 건물로 사용되었다. 곡성 삼기우체국은 별정우체국으로, 별정우체국이란 우체국이 없는 지역에 지식경제부장관의 지정을 받아 개인이 자기 부담으로 청사, 기타 시설을 갖추고 국가로부터 위임받아 체신업무를 수행하는 우체국. 삼기우체국은 공간 구성이 단순하며 외관은 전면 중앙의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룬다. 당시의 일반적인 면사무소 형태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건축 자료이다. 업무시설의 등록문화재로 2005년 지정되었다.
곡성 삼기우체국(구 삼기면사무소) · 등록문화재 제222호
지정(등록)일 : 2005.12.09
소재지 : 전남 곡성군 삼기면 원등리 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