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제도는 성격상 사고 발생의 우연 보성을 기본요소로 하고 있다. 사고 발생의 우연성이란 사고 발생이나 정도가 보험 당사자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결정되는 것으로서, 만약 보험계약자가 고의로 사고를 발생시키거나 발생한 사고를 과장한다면 보험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보험약관에도 보험금을 지급하지 아니하는 보험사고로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정신질환 상태 및 계약의 책임 개시일로부터 2년 경과 후 자살한 경우는 제외)와 수익자 또는 계약자가 고의로 피보험자를 해친 경우임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즉, 자살의 경우에는 보험금 지급이 되지 않으나, 단지 뚜렷한 자살의 정황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자살 추정만 감지되는 경우에도 보험금 지급이 될 수 없는 것인가?
보험 실무에서는 유서 등의 자료가 없다 하더라도 경찰 기록상 피보험자의 자살 추정이라고 명기되어 있다면 당연히 면책 처리를 할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자살 근거가 없는 상태라면 경찰 기록상의 자살 추정 내용만으로는 보험사가 면책 처리를 할 수 없음을 최근 인보험조정위원회에서 판시하고 있다.
경찰 기록상의 자살 추정만으로 약관상의 자살 인정 여부
신청인은 1994년 6월 30일 00생명보 험(주)과 사망시 1천만원의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0000보험계약을 체결하고. 1995년 10월 26일 X X생명보험(주)과 만 70세 이상 생존시 주계약의 4% 내지 6%의 0000연금을, 재해사망시 재해유족 연금으로 매년 보험가입금액의 12%를 지급하는 0000연금보험계약을 체결하여 유지해 온 사실과 1996년 2월 13일 02:08 경 신청인의 주택에 화재가 발생하여 피보험자를 포함한 3인이 질식 사망한 사고가 발생하였음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다.
당사자의 주장
신청인은 1996년 2월 13일 02:08경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사고로 피보험자 망인 000와 그의 남편 000 및 자식 등 일가족 3인이 질식, 사망한 사고에 대하여 00소방서는 화재 원인을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으며, 00경찰서에서의 수사결과에는 가정불화로 피보험자 망 000가 고의로 방화하였고 본인도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수사 결과만을 토대로 피보험자가 고의로 방화하여 자신을 해친 것으로 단정하고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하여 피신청인은 이 건 화재 사고와 관련하여 00경찰서에서 발행된 변사확인원의 기록과 같이 “변사 당일 잠든 틈을 이용하여 처가 석유난로에 불을 붙여 방화하여”라고 변사 개요를 밝히고 있으며, 피보험자는 평소에도 남편과 자주 부부싸움을 하고 사고 당일에도 심하게 다툰 후 방화한 것으로 추정하며, 피보험자가 방화 후 목욕탕에 피신해 있다가 연기에 질식, 사망하였다고 밝히고 있으며, 발화 지점에 있던 뚜껑이 열린 빈 석유통을 증거물로 압수하고 피보험자를 방화치사죄로 입건한 사실 등을 미루어 보건대, 이 건 화재사고는 피보험자 망 000가 고의로 방화하여 가족은 물론 자신도 자살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사망보험금 지급은 불가하고 기납입 보험료만을 지급함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인보험분쟁조정위원회의 판단
신청인의 신청서, 피신청인의 처리의견서, 00병원 발행 사망진단서, 해당 보험 약관, 00경찰서 발행 변사확인원 및 수사 내용 등 관련 자료의 기록 내용을 종합하여 피보험자 망 000의 자살 인정 여부 등에 대하여 살펴보건대, 피신청인은 이 건 피보험자 망 000가 평소 남편과 자주 싸움을 하고 사고 당일에도 심하게 다툰 후 방화한 것으로 추정하고 피보험자가 방화 후 목욕탕에 피신해 있다가 연기에 질식해 사망하였다는 00경찰서의 변사확인원 및 수사 내용을 근거로 이 건 화재사고가 피보험자의 고의적인 방화에 의하여 가족은 물론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00경 찰서의 이 건 화재사고에 대한 수사 내용은 피보험자가 사망한 상태에서, 그리고 다른 목격자도 없는 상황에서 방화사건으로 추정한 것이므로 이를 근거로 피보험 자가 방화하였고, 이에 더하여 자살까지 한 것으로 단정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그외 달리 자살이라 단정할 만한 입증자료가 없는 한 피보험자의 사인을 자살로 추단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신청인에게 해당 보험약관이 정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도록 조정결정을 했다.
개관적인 입중자료 구비되어야
상기 조정례를 살펴볼 때, 경찰서 수사 기록지상에 피보험자가 고의로 방화하여 남편과 자식을 질식사망케 하고 피보험자 본인도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기록이 있으나. 피보험자가 방화하였다는 사실과 자살을 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는 보험약관상의 자살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동 조정례의 취지인 것 같다.
피보험자를 포함한 3인의 질식 사망 상황을 보면, 사고 장소는 2층 옥상 가건물로 전기배선이 안전하지 않은 상태이며, 피보험자가 난로에 석유를 넣다가 석유통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화재가 발생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피보험자는 사망 당시 옷을 벗은 채 화장실에서 사망한 사실로 보더라도 난로에 석유를 넣다가 불이 옮겨붙자 옷을 벗어 불을 끄던 중 불길이 커지자 화장실로 피신하였다가 질식 사망한 것으로 추정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반 정황을 종합해 볼 때, 피보험자의 사망을 자살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많은 의문점이 제기되는 바, 단지 경찰 수사기록상의 자살 추정만으로는 보험사가 피보험자의 자살 입증을 충분히 하였다고 볼수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 해당 보험약관에 의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아니하는 보험사고로서의 자살을 구체적으로 입증하기 위해서는 보다 객관적인 자살 단서가 구비되어야만 가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