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쓸모있는 잡학사전
그래, 우체국쇼핑이 있었지
2020년 상반기,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의 갑작스런 확산으로 세계는 정적에 휩싸이는 듯 보인다. 호흡기가 주 감염 경로로 밝혀지면서 각종 교육기관은 개학과 개강을 연기했고 기업들 또한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외출을 삼가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장기화되면서 기존 소비 시장이 빠르게 위축되는 추세를 보이는 반면, 온라인 쇼핑, 모바일 배달 서비스가 우리 삶의 주요 기반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온라인 쇼핑 강국이었음을 새삼 깨달으며 코로나 이후, 디지털 경제를 기반 삼아 전개될 삶의 변화를 예측하기도 했다.
완도산 전복을 서울에서 주문해도 2~3일이면 거뜬히 받아볼 수 있는 시대지만 단 하나, 요즘 아무리 노력해도 구하기 어려운 것이 있으니, 다름 아닌 ‘마스크’다.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모든 약국에 마스크 매진을 알리는 공지문이 나붙고 인터넷에서도 ‘금스크’라 불리며 그야말로 금값이 되어가던 때. 우정사업본부가 정부 지정 마스크 공적 판매처가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정사업본부가 빠른 시일 안에 우체국쇼핑몰에서 마스크 판매를 시작하겠다고 밝히자,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사이트가 다운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아쉽게도 아직은 우체국쇼핑몰에서 마스크를 살 수는 없지만, 코로나19 특별관리지역인 대구·청도 지역 89개 우체국과 공급여건이 취약한 읍·면 소재 1,317개 우체국 창구에서 보건용 마스크를 판매하고 있다. 우체국쇼핑몰에 접속했다가 “면역력에 좋은 청국장을 구입했다”, “보양식을 끓이려고 옻육수를 샀는데 팩으로 되어 있어 편리하다”는 등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생겨나기도 했다. 고객과 함께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에너지가 새롭게 생겼다는 후문이다.
미국에는 피자헛, 한국에는 인터파크
현재 많은 전문가들은 코로나 이후 일어난 삶의 변화를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그 핵심은 단연 전자상거래의 중심화. 실제로 2003년 중국의 인터넷 보급에 가속 페달을 달아준 것이 ‘사스’라는 사실은 유명하다. 온라인 쇼핑의 편리함을 소비자들이 직접 경험, 체득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 그 분석이다. 그런데 이쯤 되니 궁금해진다. 어느새 우리의 일상이 된 온라인 쇼핑은 처음에 어떤 모습으로 시작된 걸까?
최초의 전자상거래 시스템은 우리가 생각하는 시기보다 훨씬 더 일찍 태동했다. 1979년 영국인 마이클 알드리치(Michael Aldrich)가 전화선을 이용해 개조한 TV로 최초의 온라인 쇼핑을 가능하게 한 것.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이 지금의 형태로 자리잡기까지는 다시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90년 월드 와이드 웹(WWW) 서버와 브라우저가 구축되자 발빠르게 신기술에 대응한 피자헛이 1994년 세계 최초로 온라인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이 흐름을 이어 받아 1995년 아마존과 이베이가 웹사이트를 오픈하며 본격적으로 온라인 쇼핑의 시대를 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전국 우체국 물류네트워크를 활용한 우편주문판매가 1987년 도입되긴 했지만 온라인망은 아직 구축되지 않았던 상황. 따라서 업계에서는 1996년 6월 1일 오픈한 인터파크를 국내 최초 온라인 쇼핑몰로 간주하는 바다. 인터파크는 서비스를 시작할 때 한정적이었던 판매 품목을 의류, 완구, 생활 용품, 전자 제품 등으로 다양하게 확대하고 제품 검색 시스템을 도입하여 주목을 받았다. 2000년대부터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의 등장과 사용자의 급증 등 IT 혁명을 통해 급속한 발전을 이루며, 누구나 소비자인 동시에 판매자가 될 수 있는 옥션을 필두로 오픈마켓 형태의 시장까지 활성화됐다. 이후 쿠팡, 티몬, 위메프 같은 소셜커머스까지 온라인 쇼핑몰 대열에 합류하여 오늘날 그 열기가 꾸준히 지속되는 중이다.
온라인 쇼핑 이전에 우편주문판매제가 있었으니
현재 온라인 쇼핑몰들은 점점 더 바쁘고 복잡해지는 현대인의 삶에 맞춤화된 배송 서비스를 선보이며 편리함을 더하고 있다. 파격 할인의 상징이 된 소셜커머스, 스마트폰으로 배달 혁신을 일으킨 각종 배달 앱들, 아침에 먹을 식재료를 한밤중에 주문해도 받아볼 수 있는 새벽배송 서비스까지. 신속, 정확을 기조로 삼는 다양한 유통 전략을 살피다 보면 우체국쇼핑이 지니고 있는 조금은 다른 출발점을 떠올리게 된다.
우체국쇼핑은 1986년 12월 “전국적인 물류와 네트워크를 가진 우체국을 활용하여 산지의 생산자와 도시의 소비자를 연결하면 우루과이라운드에 따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어촌의 판로 개척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한 체신부(현 우정사업본부) 직원이 낸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우편주문판매제’라는 이름으로 순창 고추장, 완도 김, 속초 오징어를 비롯한 8개 품목을 서울 9개 우체국에서만 창구 접수를 받아 판매했지만 생각보다 뜨거운 반응 덕분에 빠르게 전국 우체국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1999년 웹 사이트 오픈 이후에도 우체국쇼핑은 품질 좋은 지역 상품에 그 물건만 이 지니고 있는 따듯한 이야기를 담아 세상 밖으로 전하는 일을 묵묵히 전개해 왔다. 삶의 기반이 디지털로 바뀌어도, 우리가 더 이상 얼굴을 보고 물건을 구입하지 않아도 그 기저에는 분명 사람과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것. 다가올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면서도 단단하게 지켜온 철학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체국쇼핑을 우리 곁에 머물게 한 특별한 원동력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