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면 덕성리(德城⾥) 청하 성읍(淸河城⾢) 흔적
성읍(城⾢)은 성벽이 둘려 쳐진 성읍과 성읍 밖에 성벽이 없는 고을로 이루어지는데, 대적이 쳐들어오면 성 안으로 모여 대적을 상대했다고 합니다.
청하 읍성은 고려 8대 현종 9년(1018년) 때 현재의 위치에 토성을 쌓고 청하면 고현하방에 있던 청하현(淸河縣) 현기를 옮겨오고, 덕성현(德城縣)이라 하다가 조선 태조에 이르러 현명을 다시 청하로 고치고, 세종 9년(1427년) 청하현감 민인(閔寅)의 청에 따라 안동, 봉화, 풍기, 영천 등지의 장정들을 동원하여 지금의 청하면 덕성리(德城⾥) 일대에 돌로 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향교 골, 핑이 골, 비달 골, 동문걸, 서문 밖, 덕성과 같은 자연부락을 합하여 덕성리라 통칭하였습니다. 덕성리 청하 읍성은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보전되어 있던 일체의 건물들이 한일합방 이후부터 하나 둘 허물어지기 시작하여 해방이 되자 완전히 철거되고 새마을사업이 시작되면 석축마저 대부분 허물어 없어지고, 성터에는 청하초등학교, 면사무소, 농업기반공사 청하 출장소, 보건소와 같은 공공건물이 자리하며, 지금의 청하면 사무소와 청하초등학교 담장으로 그 흔적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청하면 사무소 마당에는 400여 년생 회화나무(10m X 4.9m x 10m)가 지금까지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