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쌀∙누에고치∙곶감)의 고장
가을은 넉넉함의 계절이다. 산도 들도 바다도 풍성하다. 예로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일컬어왔던 경북 상주도 예외는 아니다. 낙동강과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여러 지천들 탓일까, 상주는 일찍이 비옥한 땅이 발달하였다. 함창평야와 상주평야는 그 대표 격이다. 기름진 땅에서‘삼백’이란 말이 생겨났다. 삼백은 상주의 특산물인 쌀과 누에고치, 곶감을 뜻하는 말인데 사양화 길을 걷고 있는 누에고치를 제외하곤 삼백의 명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곶감은 전국 생산량의 60%를 넘게 출하시키고 있어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다. 그 옛날, 호랑이가 왔다고 해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던 어린아이가 곶감 소리에 울음을 그쳤다는 전래 설화 속에 등장하는 바로 그 곶감이다.
남장동 일대엔 많은 곶감 농가가 몰려 있어 곶감마을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해마다 시월이면 남장동에 산재한 감나무들이 벌겋게 익기 시작하는데 곶감농가들이 본격적으로 분주해지기 시작하는 건 시월 말에서 십일월 중순까지이다. 수확한 감을 모아서 곶감을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곶감 작업은 감을 선별하여 깎는 일부터 시작한다. 십여 명의 아낙들이 모여 앉아 반자동 기계에 감을 물리고 껍질을 깎아낸다. 깎인 껍질이라고 그냥 버리는 것은 아니다. 발효 과정을 거쳐 감식초로 다시 태어난다. 이렇게 만든 감식초는 외지인들 에게 인기가 높다. 시중에서 사는 감식초와는 달리 생산농가에서 직접 만든‘오리지널’이기 때문이다. 반자동 기계를 거쳐 수줍은 속살을 드러낸 감은 건조대에 매달려 건조 과정을 거친다. 찬 기운과 바람을 머금으며 쫄깃한 몸을 만드는 과정이다.
“상주 곶감은 과육에 탄력이 있고 표면에 흰 가루(분)가 적당히 있습니다. 꼭지 부위에 감 껍질이 아주 적게 붙은 것도 우리 곶감의 특징이지요. 이에 비해 중국산 곶감은 과육이 딱딱하거나 물렁물렁합니다. 표면의 흰 가루도 많거나 아예 없고 꼭지 부위에 껍질도 많이 붙어 있죠. 심지어는 곰팡이 낀 것도 많습니다.”
남장동에서도 비교적 규모가 큰 편에 속하는 전통한방곶감농장에서 만난 현지민은 국산 곶감과 중국산 곶감을 구별하는 방법을 귀띔해 준다. 중국산의 저가 공세에 상주 곶감도 어쩔 수 없이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 농산물 시장의 현실이다.
상주 남장동에 곶감만 있는 건 아니다. 곶감마을 위로는 우리나라 범패(불교음악)의 전래지로 알려진 남장사가 있다. 남장사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절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곳에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목각탱 문화재가 두 점이나 있다는 것이다. 보통 법당의 불상 뒤에는 천이나 종이에 돌가루로 채색한 탱화가 놓이게 마련이지만 목각탱은 나무에 조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그림 화(畵)’자가 빠진‘목각(木刻)탱’이다. 목각탱 두 점은 보광전과 관음전에 모셔져 있는데 현재 보광전의 목각탱은 개금불사(改金佛事) 중이라 볼 수가 없고, 오른쪽 산길로 조금 걸어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관음전에서나 볼 수 있다. 목각탱을 자세히 뜯
어보면 다양한 표정의 불신장들이 숨어 있으니 대충 보고 나올 일이 아니다.
그 외 보물로 지정된 비로자나 철불 좌상이나 절 입구의 소박한 돌장승 등도 남장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게다가 남장사를 품고 있는 노악산의 계곡은 돌장승만큼이나 소박하고 수수하여 친근감이 간다. 번잡하지도 않고 시끄럽지도 않다. 오붓한 오솔길을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과 함께 걷다 보면 절로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니 오래도록 가슴 속에 묻히게 되는 교감의 길이다.
자전거의 도시
곶감농가들 밑으로 내려가면 남장동 입구에 이색 박물관이 하나 서 있다. 자전거 도시 상주의 특성을 담은 자전거박물관으로 건물 외양조차 자전거 바퀴 모양을 하고 있다. 이곳은 ‘드라이지네’라고 불리는 세계 최초(1810, 독일)의 자전거를 비롯하여 우체국집배원의 자전거, 옛날 술통이나 쌀가마니를 날랐던 추억 속의
자전거, 5층짜리 자전거 등 여러 가지 종류의 자전거들이 전시되어 있고, 자전거의 역사와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소개되어 있다. 동력의 원리를 배울 수 있는 체험 활동 코너도 준비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열심히 페달을 밟으면 빛이 들어오기도 하고 물건을 움직이게 할 수도 있다.
상주는‘1인당 0.65대’라는 우리나라 최고의 자전거 보급률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 평균이 1인당 0.14대 임을 감안하면 자전거 이용에서만큼은 최고 장원감이다. 이 수치는 자전거 왕국 네덜란드(1.11대)나 덴마크(0.9대)에 비하면 적은 수치지만 자전거를 많이 탄다는 이웃나라 일본(0.58대)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자전거를 타면 환경오염이 되지 않아 공기가 좋아지고 운동이 되니 몸도 건강해진다. 경제성과 편리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시청 조직에 자전거계가 있고 시내 중심부에 차도와 분리된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을 정도로 상주의 자전거 사랑은 특별하다. 그런 사랑이 낳은 자전거 박물관. 자전거 박물관에서는 여러 가지 이색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주기도 하니, 아이와 함께 커플 자전거를 타고 곶감마을로 해서 남장사까지 한번 휑하니 돌아보면 어떨까?
가을은 자전거 타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상주 문화 체험
곶감마을 중간에 위치한 전통한방곶감농원에서는 매년 곶감 작업 철에 곶감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아직은 단체 관광객에 한해 운영되고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즐길 수 없는 특별한 체험 프로그램이다. 곶감체험은 감 깎기부터 시작된다. 예전에는 감을 손으로 깎았지만 요즘은 기계에 의존해서 깎는다. 빠른 시간에 많은 양의 감을 깎기 위해서인데 완전 자동화는 어려운 모양이다.
기계는 감을 돌려만 주고 칼을 둥그렇게 대주는 일은 일일이 사람들이 한다. 체험객들은 감 깎는 일에 도전을 해보지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칼을 너무 깊숙하게 대면 감 과육이 너무 많이 깎여 나가 먹을 것이 없어진다. 그렇다고 너무 얕게 대면 껍질이 제대로 깎이지 않기 때문에 적당한 요령이 필요하다.
곶감은 대기 오염에 아주 민감하다. 날씨에도 예민하여 수분이 많고 온도가 높으면 쉽게 부패한다. 정성껏 깎은 감을 집에 가져가 아파트 베란다에 걸어 놓았는데 상했다는 뒷이야기가 들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전국의 곶감 명산지는 대부분 산간지대나 오지마을에 위치해 있다. 시골 할머니께서 일 년에 한두 번 놀러오는 손자들을 위해 처마 밑에 매달아 놓았던 곶감,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을 하나 둘 빼 먹던 추억은 공기 맑고 깨끗한 농촌이나 산촌마을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어 버렸다.
경북 상주는 도로망이 좋아져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일일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그렇지만 좀 더 넉넉한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아무래도 1박 2일 이상의 일정을 잡아야 할 것이다. 자전거 박물관에는 남장예술원이라는 목공예 공방이 붙어 있어서 장승 깎기 체험도 즐길 수 있으며, 근거리에 상주 제일경 경천대가 자리 하고 있어 연계 관광지로 추천할 만하다. 낙동강 줄기에 우뚝 솟은 경천대에는 임진왜란 당시에 활약했던 정기룡 장군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도 말 먹이통으로 쓰였다는 바위가 남아 있다.
우리 소리를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상주 민요마을에서 상주 노래를 한수 배워보는것도 특별한 문화체험이될 수 있으리라.‘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줄게 우리 부모 섬겨 다오’하며 시작하는 상주의 대표적인 민요 <상주 모심기> 노래는 듣는 이의 가슴을 애잔하게 흔들어 놓는다. 상주 모심기 노래 속에 등장하는 공갈못은 옛날에 비해 규모가 많이 축소되어 지금은 황량한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나 관광지로의 종합개발안이 계획되어 있어 새로운 변신을 꾀하고 있다. 고대사에 관심이 있다면 전(傳)사벌왕릉과 전(傳)가야왕릉도 빼놓을 수 없겠다. 고령가야의 세력이 이곳 상주까지 미쳤음을 알 수 있는 유적지들이다.
여행 쪽지
●곶감마을 찾아가는 길(지역번호 054 공통)
영동고속도로로 여주까지 간 후 중부내륙고속도를 이용한다. 상주나들목으로 진출하여
보은 가는 25번 국도를 타면 시내 벗어나서 오른편으로 상주 자전거박물관 입간판이 나
온다.
●전통한방곶감 농장(534-5948) / 자전거박물관(534-4973) / 남장사(534-6331) / 경천대(536-7040) / 상주 민요마을(011-539-4539)
●업소 메모
- 남장동에는 숙소가 없다. 성주봉 자연휴양림(530-6350)
- 나무향기(533-4512 / 자전거박물관 앞의 통나무 카페. 산채비빔밥)
- 기와식당(533-3300 / 자전거박물관 인근. 오리 샤브샤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