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을 서서 오르는 출구 너머로
모란역은 물론 평소에도 유동 인구가 많은 곳. 분당선과 8호선이 만나는 곳이다 보니 환승객도 많지만, 이곳을 목적지로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데다 매 4일과 9일에는 모란장을 찾는 사람들까지 한 데 몰려 역사 안은 말 그대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당연히 모란장으로 나가는 길은 이미 줄이 길게 서 있다. 시작부터가쉽지 않은데, 진짜 시작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출구에 나서는 순간 시작된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인파들이 도로를 온통 가득 채우고 있다. 그 걸로도 모자라 한쪽에는 좌판이 들어섰다. 대형 프랜차이즈 마트 앞에 반짝반짝 윤이 나는 사과들이 한 가득이고 커다란 통유리로 치장한 약국 앞에는 도시와 어울리지 않는 낫과 쇠스랑 같은 농기구들이 번쩍거리고 있다. 부조리극의 한 장면 같은 풍경 속에서 흙투성이 토란이 눈에 들어온다. 그 토란을 본 순간, 문득 기억은 아주 먼 곳으로 향했다.지금으로부터 대략 30여 년 전. 당시만 해도 명절 준비는 하루 이틀에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추석이 다가오면 일주일 전쯤, 멀리 떨어진 일산에까지 장을 보러 가셨다. 그곳에서 차례상에 올릴 제수용 과일과 음식재료를 손수 고르셨고 상인들과 쌀값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셨다. 김포에서 농사를 지으셨던 터라, 여든이 가까우셨는 데도 쌀값은 할아버지의 주요 관심사였다.
미로 같던 장에서 돌아오기 전 손자의 손에 이런저런 주전부리를 쥐어주는 것도 잊지 않던 다정한 할아버지께서 결코 빼놓지 않고 구입하셨던 게 바로 토란이었다. 어린 나이에 나는 토란국이 도대체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었다. 생긴 건 감자랑 비슷하지만 미끌거리고 맹맹한 식감 때문에 당시 나는 토란을 멀리했다. 그저 같이 끓인 소고기만 건져 먹을 뿐이었다.
토란국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추석마다 차례상과 밥상에 올랐다. 한참 동안 ‘추석엔 토란국’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왔다. 그리고 그 토란을 아주 오랜만에, 그것도 추석을 앞둔 시기에 성남모란시장에서 토란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제 막 접어든 모란시장은 바로 그런 추억의 장소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성남모란시장 info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 : 지하철 분당선, 8호선 모란역 (장날에는 될 수 있으면 대중교통 이용)
자동차 : 탄천IC – 신성대로를 따라 70m – 광주, 성남시청 방면 우회전 – 약 400m 직진 후 우회전
운영시간 09:00~19:00 / 문의 031-721-9905
시장 주변 관광지 남한산성, 율동자연공원, 코이카 지구체험관
국화가 반겨주는 가을 장터
모란장의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노란 국화였다. 장터의 입구를 지키는 게 꽃집이라는 사실도 이채로웠을뿐더러 추석을 앞둔 대목장을 찾은 사람들이 노란 국화를 보고 계절의 변화를 즐기는 재미도 있어 좋았다.
“우리야 계절마다 꽃이 바뀌니까, 그런 재미로 장사해요. 그래서 가끔 어떤 손님들은 우리 집 앞에서 한참 동안 이것저것 물어보고 구경도 많이 해요. 그런데 화분이라도 좀 몇 개 사 가면 좋을 텐데 그러지들을 않네. 삼촌, 맘에 드는 꽃 있으면 골라 봐요. 싸게 줄게.”
환한 얼굴로 화분을 정리하던 아주머니의 화술은, 역시나 꽃처럼 밝고 친근했다. 아주머니에게 미안함이 섞인 인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한 걸음씩 걸으면 걸을수록 나는 그 옛날 일산장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규모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작아진 일산장과 달리, 모란장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끝에서 끝까지의 거리가 무려 300m에 이를 정도니, 어지간한 상설시장과 맞먹을 정도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모란장이 형성된 게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 시장이 만들어진 지 겨우 40여 년이 지났을 뿐이란다. 더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시장을 만든 사람의 이름까지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모란장은 홀어머니를 평양에 두고 남쪽으로 이주했던 김창숙이라는 사람이 만들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시장이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특이한 점이다. 어쨌든, 군인으로 한국전쟁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그는 대령으로 예편한 후 황무지인 모란장 주변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고 살만한 터가 완성되자, 어머니가 계시던 평양을 상징하는 ‘모란’을 지명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생활을 이어가고자 오일장을 열었던 게 모란장의 시작. 어머니를 잊지 못 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시장이니, 이곳에서 할아버지를 떠올린 내 감상 역시 영 맥락이 없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후 80년대에 접어들면서 서울 시내는 물론 수도권까지 개발이 진행되면서, 갈 곳을 잃어버린 오일장 상인들에게 모란장은마지막 보루와 같은 장소가 되었다. 수도권에 여전히 북적거리는 오일장이 있다는 사실을 신기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나들이 겸 쇼핑 명소가 되었다. 분단과 전쟁, 이산가족, 서울의 급성장과 그로 인한 수도권 개발 등 한국의 현대사가 오롯이 투영되어 있는 곳, 바로 성남모란장이다.
대목장에는 모두가 흥겹다
때는 바야흐로 추석을 코앞에 둔 장날. 모두가 일 년 내내 기다렸던 대목장이다. 그러다 보니 장터는 그 어느 때보다 북적인다. 상인들이 내놓은 물건들은 반짝반짝 윤이 나고, 온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낼 준비를 하기 위해 시장에 나선 고객들은 번쩍거리는 눈으로 상품들을 꼼꼼히 살핀다. 똑같은 사과 하나 잡곡 한 되라도 햇것인지 아닌지, 국내산인지 수입산인지 몇 번이고 확인을 한다. 상인들도 그런 손님에게 싫은 내색 없이 정성껏 대답을 한다. 그런 정성이 하나하나 모여 차례상을 만들고 자녀와 손녀를 먹이는 음식이 될 터이다.
하지만 정성 어린 음식이 꼭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장터에 빠질 수 없는 먹거리들이 모란장이라고 없을까. 특히 그 자리에서 직접 반죽을 하고 면을 잘라내는 칼국수는 모란장만의 자랑거리 중 하나. 국물 역시 멸치를 비롯한 재료를 아끼지 않고 듬뿍 넣고 우려내 그 맛이 깊다. 칼국수집 주인아저씨는 밀대로 밀가루 반죽을 밀며 “그래서 장날이 되면 다른 거 제쳐두고 우리 집 칼국수 먹으러 장터 찾는 손님도 많다”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한쪽에서는 커다란 파전이 노릇하게 익어가고 있고 그에 따라 막걸릿잔이 오가는 속도가 빨라지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불콰하게 술이 오른 어르신들은 추석에 찾아올 자식들 자랑에 여념이 없어 옆 사람이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든 말든 상관이 없어 보인다. 그런 어르신들 뒤로 사람들은 여전히 빠르게 지나다닌다. 누군가는 어물전으로, 누군가는 정육점으로, 누군가는 채소가게로 빠른 듯하면서도 여유롭게 걸으며 장터의 이곳저곳을 살핀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애드벌룬이 두둥실 떠오르고 잘 가다듬은 사회자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진다. 이제 곧바로 옆에 있는 행사장에서 축제가 시작되니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는 내용이다. 그러자 ‘축제’라는 말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웃는 얼굴이 된다. 가을 하늘만큼이나 맑고 밝아진 마음들이 하나 가득 천막 아래로 모여든 대목장의 모습이다.
더 활기찬, 도심 속의 전통시장을 만들겠습니다. (전성배 | 모란시장 상인회장)
모란시장은 전국의 다른 유명 전통시장에 비해 역사가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곳보다 크고 유명한 곳이라 자부합니다. 그만큼 상인도 많고 고객도 많고, 무엇보다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정과 이야기는 도심 속의 시장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입니다. 모란시장은 현재 커다란 변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제 막 조성이 끝난 새로운 시장 터로 이전을 하는 것인데요, 평소에는 주차장으로 활용되지만 장날인 4일과 9일에는 장터로 변신할 겁니다. 그래서 10월 29일에는 새로운 장터에서 첫 장이 서게 됩니다. 시장을 찾는 고객 여러분과 상인들 모두에게 훨씬 더 쾌적한 환경이 될 것이라 자신하니, 새롭게 변모한 저희 모란시장을 꼭 찾아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