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재가 없는 이유
파격을 외치고 기업문화의 혁신을 외치지만 기본 나이와 직급을 맞추고 그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현실은 많은 병폐를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 잘 나가는 한 IT 회사가 있다고 하자. 차세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 유능한 엔지니어를 구하다 미국에서 일하는 28세의 엔지니어를 찾았다. 적임자였다. 좋은 연봉, 휴가, 복지 등의 조건을 제시하고 채용하게 된다. 그런데 인사팀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직급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실력과 능력으로 말하자면 경영자 수준의 이 직원을 팀장이나 부장쯤으로 대우해야 하나? 이제 스물 여덟 살인데?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회사 인사팀은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선후배 기수 따지고, 나이 따지는 조직이나 연공서열이 중요한 조직에선 거의 불가능하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유일한 단점은 나이뿐인데, 그 나이 하나 때문에 책임 있는 자리를 주지 않는다. 설령 준다고 해도 그 아래 사람들과 불화로 골치 아플 수 있다. 선후배 따지는 서열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한 우리나라 기업의 위기는 이처럼 글로벌 경영 경쟁력을 약화시키는데서 온다. 아무도 회사 내의 문제를 말할 수 없는 분위기, 좋은 의견이 있어도 아직 새파란 사원의 의견이라고 묵살하는 분위기에선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실종되기 쉽다.
작은 한 가지가 천리 길 첫 걸음
최근 삼성전자는 창의적이고 수평적인 조직문화 조성을 위해 연공주의 중심의 인사제도를 ‘직무와 역할’ 중심으로 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내년 3월부터 이름 뒤에 직급을 붙여서 부르는 호칭 대신 ‘OOO님’으로 부른다. 팀장, 그룹장, 파트장, 임원은 직책으로 부르고, 부서 내부에서는 업무 성격에 따라 ‘님’, ‘프로’, ‘선·후배님’ 등 수평적 호칭을 자율적으로 사용한다. 이밖에도 회의는 최소 참석, 최대 1시간, 전원 발언, 결론 도출 및 결론 준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또 빠른 의사 결정을 위해 직급 단계별 순차 보고 대신 ‘동시 보고’를 활성화한다. 올 7월부터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것도 허용한다. 고무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호칭이 문제가 아니고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작은 것부터 바꿔나가면 그게 시작이다.
방수는 되지만 공기가 통하는 신소재 고어텍스를 개발한 고어사는 ‘가장 일하고 싶은 100대 기업’에 선정될 만큼 남다른 조직문화를 자랑하는데, 직책이 없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전세계 30여 개국 1만여 명의 직원 모두 책임지고 있는 역할이 있을 뿐 직책은 없다. 이러한 수평적 구조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제품이 바로 ‘엘릭실’이라는 기타줄이다. 한 연구원이 전선 피복으로 사용되는 고어사의 재료를 자전거 바큇살에 실험하다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연구원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뜻을 펼쳐 타사 제품보다 음색이 오래 변하지 않는 기타줄을 개발해 냈다. 상사와 부하가 따로 없으니 모두가 평등한 동료이기에 수평적 구조에서 직원들 사이에서 보다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하고, 직원간의 활발한 소통은 창조적인 열정을 꽃피울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한꺼번에 다 바꾸기는 힘들다.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하나씩, 중간에 포기하지 말고 조직의 문화나 체질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실천한다면 그보다 더한 혁신도 해낼 수 있다.
나이 어린 상사, 나이 많은 부하
요즘 정말 유능한 직장인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이 상사가 되어도 비전 제시 및 업무 능력만 있으면 나이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나이가 많은 상사보다 능력 있는 상사 밑에 있어야 좋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어린 상사는 경험에서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젊음과 패기, 높은 추진력, 빼어난 업무수행력 등은 충분히 배울 만하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변화를 받아들일 적극적인 자세는 조직에 분명한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들의 긍정적이고 효과적인 역할을 조직이 인정해준 것이라고 보면 맞다.
따라서 젊은 나이지만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던 실력이나 열정을 인정하고 배우는 것이 부하직원의 자세다.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이 남아 무의식적으로 조언하거나 충고하는 행동은 조심해야 한다. 경험이 많음을 강조하기보다 자신이 확실한 부하직원이며, 상사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불가피하게 조언해야 할 경우 가급적 짧게 핵심만 이야기한다. 반면, 나이 어린 상사는 나이 많은 부하의 연륜과 경험을 존중해야 한다. 부하가 ‘내 경험으로는…’으로 시작하는 말을 고깝게 듣기보다, 부하가 그렇게 말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경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더 매끄러운 리더십이다. 자신의 직급을 믿고 아랫사람이라고 무시하는 태도는 가장 나쁘다. 자기도 모르게 나이 많은 부하를 자신의 수족 부리듯 함부로 대하지 않았는지 자주 살펴야 하고, 도움과 협조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겸손하게 감사를 표한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경험과 지혜를 가까운데서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은 어리석다.
현대 사회에서 나이가 직급의 일방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존중’이 가장 중요하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자존심을 세우기보다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공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자기 포지션을 재정비해야 한다. 서로 불편할 수밖에 없는 관계를 인정하고 공적인 문제에 사적인 감정을 개입시키는 일을 최소화하고 합리적으로 일처리를 해나가게 된다면 어린 상사를 모시든, 나이 많은 부하를 거느리든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회사사용 설명서
사회인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좀 더 활기차고 즐겁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함께 고민해보는 2016년 연중 캠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