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한가운데에서 맞는 바람, 청사포
올가을 우정사업본부에선 전국 각지의 여행명소와 그 지역의 먹거리를 담아 <집배원이 전하는 가을, 그리고 여행이야기>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그중 이달에는 다양한 축제가 열리는 부산으로 떠난다.
청사포는 해운대와 송정 사이에 있는 작은 포구다. 난류와 한류가 섞이는 곳에 있어 예부터 물고기가 많이 잡히고, 좋은 횟감이 많았던 곳이기에 이곳엔 해녀도 많았다. 몇 해 전부턴 조개구이집이 하나둘씩 문을 열어 외지인들이 일부러 차를 타고 드라이브할 겸, 조개구이도 먹을 겸 찾아왔다. 그런데 해운대에서도 끝인 이 청사포에 최근 들어 더 많은 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바로 지난해 개장한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 때문이다. 해수면에서부터 높이 20m, 길이 72.5m 규모의 전망대인데, 바다 위를 걷는 스카이워크가 멀리서 볼 때부터 아찔하다. 가까이 다가가서 전망대 안쪽까지 걸어보면 그야말로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다.
청사포
우리가 바다에 가는 이유는 바람을 맞으러, 파도 소리를 들으러, 1년 365일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늘 움직이고 변화하는 에너지를 받으러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에너지가 좋은 곳, 바로 청사포다. 대중교통으로는 오직 해운대 2번 마을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영도대교 야간 도개축제 Ⓒ영도구청
송도의 지금, 해상케이블카와 송도구름산책로
송도는 옛날부터 소나무 숲이 많이 우거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소나무 숲이 많은 섬에 바다 위를 오가는 케이블카가 생겼다. 바로 송림공원에서 암남공원까지 1.62km 구간의 ‘송도 해상케이블카’다. 이 케이블카는 에어크루즈와 크리스탈 크루즈, 두 가지로 나뉘는데 크리스탈 크루즈는 케이블카의 바닥이 강화유리로 되어 있어 발아래로 바닷가가 넓게 펼쳐진다.
눈에 거슬리는 장애물 하나 없이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 위를 건너는 경험은 속이 뻥 뚫린다. 늘 가까운 것, 눈앞의 일들에 피곤하고 치여 살았다면 이 케이블카를 타고 저 먼 바다를 바라보며 한 템포 쉬어보자. 바다 한가운데 정박한 배들도 눈에 띄고, 맞은편의 영도와 암남공원이 펼쳐져 사방으로 푸르른 자연에 눈이 부시다. 유독 푸른 가을 하늘, 송도의 이 자리에서 부산을 기억할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20년 만에 이곳을 찾았다는 황유진 씨는 “직접 수영복을 입고 물 안에 들어가지 않고서도 충분히 물과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많이 달라졌지만 또 여전한 풍경을 찾는 것도 재밌어요”라며 오랜만에 송도에 온 소감을 전했다.
송림공원 케이블카 정류장 앞에는 송도구름산책로가 있다. 청사포 다릿돌 전망대처럼 높이가 높지 않고, 가까이에 있어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아 아이들과도 길 끝까지 가볼 수 있다. 물 위를 걷고 싶은 인간의 욕망, 부산에선 몇 번이나 그런 마음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다누비 열차 Ⓒ영도구청
반짝이는 부산을 만나는 영도
영도는 섬이다. 그래서일까 부산을 수차례 찾았지만 영도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최근 들어 해운대와 광안리 너머의 부산을 바라보고 싶은 이들이 찾기 시작한 곳, 영도는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도개교 영도대교를 통해 건너올 수 있고, 부산항 대교는 송도까지도 이어진다. 1934년 개통된 영도대교는 영도라는 섬과 육지를 이어주는 핵심 역할을 했다. 십여 년 전 다리를 복원한 뒤 오후 2시마다 영도다리가 열리는데 그 시간에 맞춰 그 모습을 보러 오는 이들도 여전히 있다. 영도우체국의 관광우편날짜도장에도 다리가 열리는 영도대교가 담겨있다. 태종대와 가까운 부산동삼동우체국에는 태종대 등대가, 영도우체국에는 영도대교가 있다.
“마, 영도에서 봐야 진짜 부산이 보입니더. 특히 야경은 여기만한 데 못 봤습니더. 반짝이는 게 꼭 다이아몬드 같지 않습니꺼”라며 영도 출신의 택시기사 최경진 씨의 영도 야경 예찬은 자신이 사는 곳을 잠시 떨어져 바라볼 때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흰여울길 Ⓒ부산문화관광
Ⓒ손목서가
Ⓒ손목서가
흰여울문화마을의 작은 서점
흰여울길은 예전 봉래산 기슭에서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바다로 굽이쳐 내리는데 마치 흰 눈이 내리는 듯 빠른 물살의 모습과 같다 하여 ‘흰여울길’이라 불렸다고 한다. 2011년부터 흰여울문화마을로 조성되어 이곳에 작은 갤러리, 서점, 문화공간 등이 자리를 잡았다. 바다를 마주하고 조용히 걷는 시간- 천천히, 느리게 걸으며 하늘과 구름을, 해와 바다를 바라보게 된다. 마을이 무언가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보다 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풍경을 보러 간다는 생각으로 마음의 여유를 갖고 가보자.
영도에 꼭 가고 싶었던 이유가 되어준 서점이 있었다. 바로 흰여울문화마을의 손목서가(영도구 흰여울길 307). 오전 11시에 문을 열고 일몰 후 완전히 어두워지면 문을 닫는 서점. 시인인 주인장이 직접 읽고, 추천하는 책들이 간단한 이유와 함께 서가에 꽂혀 있다. 비정기적 공연과 낭독회를 여는 이 바닷가 서점의 1층은 서점, 2층은 카페다. 계단을 올라 2층에 앉으면, 바다가 펼쳐진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엔 물이 반짝이는 윤슬이, 저 멀리 보이는 정착한 배가, 휴식의 풍경이 되어준다. 카페 메뉴 중에선 글뤼바인(Glühwein: 과일을 넣고 끓인 와인)과드립커피, 매실차 등의 인기가 높다. 혼자 오든 누군가와 둘이 오든 이곳에선 조용히 창을 바라볼 수 있다.
송도해수욕장 Ⓒ부산서구청
배들의 묘박지, 영도
송도와 영도의 바다에는 어디론가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정박해있는 배들이 많다. 중·대형 선박들이 바다 위에 점점이 떠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많은 배들이 이곳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여기가 바로 부산 남항 외항의 묘박지(錨泊地)이기 때문이다. 묘박지란 ‘선박이 계류 혹은 정박하는 장소’를 뜻한다. 부산항에 들어오는 화물선이나 원양어선, 선박 수리나 급유를 위해 찾아오는 선박들이 닻을 내리고 잠시 머문다. 일거리가 없어 장기 대기 중인 빈 배들도 있다고 한다. 조류의 흐름에 따라 닻을 내린 탓에 뱃머리가 일정한 방향을 향하고 있는데 그 모습 또한 장관이다. 우리가 부산에 오더라도 굳이 영도를 찾지 않는다면 볼 수 없는 부산의 진풍경이다. 한 해의 끝인 12월 31일 자정에는 이 배들의 뱃고동 소리가 장관이라고 한다. ‘뱃고동 교향악’이라고 표현하는데 과연 어떤 소리가 들릴지, 눈을 감고 잠시 상상해본다.
부산불꽃축제 Ⓒ(사)부산문화관광축제 조직위원회
축제의 도시 부산, 10월에 들썩거리는 이곳
1년 열두 달 중 사람들이 부산을 가장 많이 찾을 때는 물론 여름이겠지만, 이때를 제외하고 외지인의 발걸음이 가장 많이 닿을 때는 축제 시즌 10월이다. 다양한 축제의 도시 부산에서 올해도 부산국제영화제(10/4~13)와 부산불꽃축제(10/27), 그리고 부산비엔날레(9/8~11/11)가 열린다.
올해로 제14회를 맞는 부산불꽃축제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이라는 테마로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열린다. ‘멀티미디어 해상쇼’라는 취지대로 매년 다양한 불꽃놀이뿐만 아니라 테마에 맞는 음악에 맞춰 화려한 레이저쇼 등을 선보이며, 특이한 모양의 불꽃은 물론 초대형 불꽃도 선보이는 축제로 유명하다. 호텔을 비롯한 근처의 다양한 숙박업소들은 축제 기간의 특수도 톡톡히 보고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백사장에서 불꽃축제를 관람하지만, 동백섬, 이기대, 황령산 등지에서도 불꽃쇼를 볼 수 있다.
청사포일출 Ⓒ해운대구청
바다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는 부산
부산 바다를 즐기는 법은 다양하다. 직접 물놀이를 하러 바다에 들어가는 것, 해상케이블카로 건너가며 바다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흰여울문화마을의 한 서점 창가로 보이는 바다 앞에 앉아있는 것, 해변가에 인접한 해안산책로를 걷는 것…. 부산에 오면 바다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오래 바라보고 오래 머물러 있는 그 시간 안에 이곳의 진정한 매력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부산의 송도와 영도, 기장과 청사포를 통해 그동안 수없이 다녀간 부산과 완전히 다른 부산을 만나고 돌아왔다. 도시의 속살과 섬의 매력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 올가을엔 한 발 더 깊이 부산을 만나러 가자.
여행 Note
부산은 넓다. 기장부터 송도까지 둘러보며 부산의 매력에 흠뻑 젖었던 취재 시간 동안 보다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장소, 함께 읽고 싶은 잡지를 소개한다. 우리는 어쩌면 아직도 부산을 잘 모르니 더 읽고, 더 가보면서 이곳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느껴보자.
Ⓒ기장군청
기장 아홉산숲
부산 기장 철마면 아홉산 자락에 위치한 숲.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생태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수령 100~300년 되는 금강송 등을 포함한 천연림이 아홉산숲을 구성하고 있다. 약 400년의 세월을 지켜온 사유림이다. 생태문화체험, 숲산책 프로그램도 있으니 참고할 것. 매주 월요일 휴무.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480번지
www.ahopsan.com
051-721-9183
Ⓒ기장군청
기장의 등대
기장 해안가를 걷다보면 이색적인 모양의 등대가 많다. 출산율 최저 도시인 부산의 고민을 반영해 다산과 풍요의 메시지를 담은 ‘젖병등대’ 부터 ‘월드컵 등대’, ‘장승등대’, ‘야구등대’ 등이 볼거리다. 그중 야구등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우승을 기념해 세운 것으로, 방망이 형태의 등대 옆에 글러브, 야구공이 설치돼 있다.
젖병등대: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 297-5
야구등대: 기장군 일광면 칠암리 어항방파제
Ⓒ영도구청
영도 절영해안산책로
부산 전역에 조성된 갈맷길(총 길이 263km)의 3-3구간으로 영도지역 구간. 남항 외항을 끼고 태종대까지 해안길과 산길로 이어져있다. 산책로 우측으로는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고 왼쪽으로 절벽을 따라 나란히 집들이 서있는 모습은 영도와 부산의 자랑거리다.
영도구 절영로13번길 58-1
영도 신기산업과 신기 잡화점
1987년 방울 공장으로 시작한 신기산업. 영도에서 신기산업은 큰 주축이 되어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2016년 말 사옥을 준공해 ‘신기산업’이라는 동명의 카페를 열었는데, 여기서 보이는 풍경이 좋아 단숨에 핫플레이스가 되어 영도를 찾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 되었다. 카페 지하에는 ‘신기잡화점’이라는 가게가 있는데 영도를 담은 기념품과 신기산업이 만든 방울 등 추억을 부르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신기잡화점: 영도구 와치로51번길 4
051-417-2598
노이베이커리
해운대 해리단길
시장과 옛날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있는 해운대시외버스터미널 뒷길에 하나둘씩 작은 가게들이 모여들었고, 사람들은 이곳을 ‘해리단길’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파운드케이크를 파는 모루과자점, 구운 도넛 카페 노이베이커리, 유부초밥 맛집 호키츠네 등이 인기다.
모루과자점, 호키츠네: 해운대구 우동1로38번길 11노이베이커리: 해운대구 우동1로20번가길 25
Ⓒ박나리
부산을 다루는 잡지 - <다시, 부산>, <비밀영도>
<다시, 부산>은 부산에 대한 다채로운 단상과 부산 사람들도 잘 모르는 부산 구석구석 이야기, 한적한 골목에 자리 잡은 맛집과 카페를 소개하는 잡지다. 무엇보다 부산의 지금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비밀영도>는 부산에서도 특히 영도를 사랑하고, 영도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이들을 두루두루 소개한다. 영도의 바이블! 두 잡지 모두 올겨울 전에 다음 호 발행을 앞두고 있다.
<다시, 부산> 구입: www.dasibusan.com 부산 내 독립서점, 신기잡화점 등
<비밀영도> 구입: (사)삼진이음(051-418-8532, 8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