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
5년여 전, 대학을 졸업하고 시간이 꽤 흘러도 일자리를 잡지 못해 방황하던 나는 더 이상 집에 신세지기가 부담스러워 서울로 무작정 상경을 하기로 했었다.
서울이라고 해봐야 아는 사람이 전무한 나에게 고등학교 동창인 L의 도움이 무척이나 컸었다. 숙식을 해결하기도 마땅하지 않은 나에게 L은 기꺼이 자기 숙소에서 같이 잘 것을 권유했고 식사 대접도 섭섭지 않게 해주었다.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냐. 내 빨리 취직해서 배로 갚아줄게.”
“임마, 나 고등학교 다닐 때 너의 어머니께서 대신 도시락 싸주시고, 수업료도 보태주신 거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아, 언제 그랬던 적이 있었던가? 오래된 일이라서 가물가물할 뿐이다. 그걸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L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게 서울 생활을 하면서 일자리를 알아보기를 두어 달이 지나 아버님 생신이라 고향에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겼다. 텅 빈 지갑에 차비도 L에게 신세를 져야했기에 아버님 선물 마련은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었다.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L은 역까지 배웅해 준다며 동행할 것을 권유했다. 기차시간까지는 약간 남아 쇼핑이나 하자며 근처 백화점으로 나를 데려 갔었다. L이 주류 선물 세트를 하나 구입했다. 그때까지도 왜 L이 그걸 샀는지 알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었다.
쇼핑을 다하고 백화점을 내려가기 위해 승강기 앞에 우리는 섰다. 내가 먼저 타고도 한참이 지났는데, L은 탈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야, 뭐해?”
순간 L은 방금 전 구입한 주류 선물 세트를 승강기 안에서 내려놓더니 “아버님 갖다 드려라. 고향 잘 갖다오고.”하면서 닫히는 승강기 문 사이로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핑 도는 눈물에 뜨거워지는 가슴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승강기 밖에 비춰지는 도심의 야경을 바라보니, 어딘가를 향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차량의 헤드라이트 불빛들. 힘겨운 시절이었지만 그렇게 친구를 배려하는 L의 도움과 승강기 밖으로 비춰진 도심의 역동적인 모습에 순간 힘들었던 과거를 털어버리고 다시 마음속으로 재도약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같다.
나에게 그런 친구가 있다는것, 어려울 때 진정으로 도와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나에게 큰 횡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