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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사내들이 각목을 휘두르는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며 또 조직폭력배가 설치는 이야기냐고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마냥 부수고 찌르는, 이른바‘조폭영화’는 한국영화 가운데 네 편에 한 편 꼴로 간판을 올린다. 조폭들의 안식처는 유흥가가 아니고 스크린이라는 우스개가 나올 지경이다.

글. 박평식(영화평론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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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아비의 피로와 궁상을 아는가

<우아한 세계>


비애와 궁상! 막막한 하루를 버텨내는 중년 남성이라면‘경험의 보편성’, 다시 말해 저것이 나의 삶이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터이다.





사내들이 각목을 휘두르는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며 또 조직폭력배가 설치는 이야기냐고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마냥 부수고 찌르는, 이른바‘조폭영화’는 한국영화 가운데 네 편에 한 편 꼴로 간판을 올린다. 조폭들의 안식처는 유흥가가 아니고 스크린이라는 우스개가 나올 지경이다. 의리와 음모, 배신을 드라마의 공식으로 삼는 조폭영화가 최근엔 청승에 가까운 슬픔을 곁들여 폭력성을 누그러뜨린다. <우아한 세계>는 단락마다 연골 부러지는 소리 요란하지만, 이전의 잡스런 폭력들과는

다르게 문패도 번지수도 확실한 주먹을 내지른다.

퇴근길의 꽉 막힌 도로. 졸고 있던 강인구(송강호)는 힘겹게 차를 몰아 어느 한적한 골목의 청과물 도매상에 도착한다. 사무실안엔 피투성이의 사내가 쓰러져 있다. 인구는 부하들의 도움을 받아 사내의 손을 비틀어 억지로 건설공사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한다. 폭력 조직의 중간 보스는 그렇게 피 묻은 하루 일과를 마감한다. 가정은 인구에게 쉴 만한 곳이 되어주질 못한다. 늘 피멍든 남편에게 신물 난 아내는 바가지나 열심히 긁고, 여고생 딸은 깡패아빠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대들고, 캐나다로 유학간 아들 녀석은 손만 벌린다.

인구는 그야말로 생계형 조폭이다. 그래서 광고 문안도‘생활누아르’라는 조어를 내세운다.‘ 검다’는뜻의프랑스어‘누아르’에서 나온 필름 누아르(Film Noir)는 범죄와 폭력의 세계를 냉소적인 시선으로 그린 영화를 가리킨다. 인구가 발을 디딘 세계는 결코 우아하지 않다. 집구석은 수도가 자주 끊길 정도로 칙칙하고, 집 밖은 조폭들의 칼날이 부딪치는 살벌한 곳이다. 41살의 가장은 밥줄 때문에 질퍽한 늪에서 몸 전체로 허우적거릴 뿐이다. 하지만 그는 비록 현금지급기 신세가 되었어도 가족만은 우아한 세계로 올려주고 싶은 꿈을 버리지 않는다. 

<우아한 세계>는 이전 조폭영화들이 겉멋과 치기로 빚어낸 낭만성을 철저하게 깨부순다. 밥벌이의 서글픔을 전시하는 단락마다 중년 건달의 피로가 짙게 묻어나온다. 신선하고도 우울한 로맨스 <연애의 목적>으로 데뷔한 한재림 감독은 중반부에 상투성의 함정을 슬쩍슬쩍 뛰어넘더니 막판엔 관객들의 의표를 찌르는 장면을 마련한다. 비애와 궁상! 막막한 하루를 버텨내는 중년 남성이라면‘경험의 보편성’, 다시 말해 저것이 나의 삶이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터이다. 고단하도록 바쁘게 조폭과 소시민을 오간 송강호의 다양한 표정 연기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에 충분하다.



누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흩어지는 장미꽃과 얼룩진 코피, 쓰레기가 까마귀 떼로 변해 날아오르는 장면도 놀랍거니와 용서와 화해를 강조한 결말부는 무릎을 치게 한다. 무엇보다 마츠코를 가련한 희생양으로 그리지 않은 점이 훌륭하다. 좋은 영화는 언제나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싱거운 퀴즈 하나.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과 토머스 하디의 <테스>, 한국영화 <영자의 전성시대>와 <별들의 고향>의 주인공이 지닌 공통점은? 정답은 기구한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운명의 희롱인지 아무튼 지긋지긋하게 복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한 일본 여자를 추가해야겠다. 카와지리 마츠코(1947~2002). 교사에서 창녀를 거쳐 살인범이 되었고 끝내 맞아죽은 시체로 발견된 여자. 동거하던 남자의 자살, 동거남의 친구와 불륜, 기둥서방 때문에 자살미수, 야쿠자가 된 제자와 동거, 옥바라지 등 수난의 연속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끔찍할 정도로 폭력을 당했다.

과연 마츠코는 악취 나는 일생을 살았을까? 도쿄에서 2년째 백수생활을 하는 청년 쇼(에이타)는 아버지로부터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고모 마츠코(나카타니 미키)의 유품을 정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얽히고설킨 사연은 두 갈래로 나뉘어 풀려나간다. 주변 인물들을 통해 고모의 비밀스런 과거를 추적하는 쇼와 파란만장한 마츠코의 생애가 번갈아 드러나는 것이다. 인생에서 선한 의도는 얼마나 많이 빗나가는가. 성실한 고교 음악교사였던 20대의 마츠코는 절도 혐의를 받은 학생을 감싸려다 오히려 누명을 쓴다. 실직

과 가출로 뒤틀리기 시작한 그녀의 인생은 빠르게 곤두박질친다.

마츠코의 불행은 알고 보면 아버지의 사랑을 갈구한 소녀 시절에 싹 튼 것이다. 아픈 동생과 우울한 아버지 사이에서 그녀는 어릿광대였다. 세상은 비정하고 사내들은 매정하건만 수렁 속에서도 마츠코는 미련하도록 착하다. 정 주고 마음 주고 몸을 주려고 애쓸 뿐이다. 수많은 남자의 품을 옮겨 다니며 사랑하고 배신당하고 다시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그녀의 삶이 아프도록 슬프다.

그렇다고 신파조의 드라마로 빠지는 영화는 아니다. 파멸을 끌어안은 백치 같은 사랑, 누가 이런‘방탕한 성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불티나게 팔린 야마다 무네키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감독의 만화적 상상력과 파격적인 형식이 빛난다. <불량공주 모모코>로 우리에게 친숙해진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화사한 화폭에 노래와 춤, 애니메이션으로 촘촘히 수를 놓는다. 흩어지는 장미꽃과 얼룩진 코피, 쓰레기가 까마귀 떼로 변해 날아오르는 장면도 놀랍거니와 용서와 화해를 강조한 결말부는 무릎을 치게 한다. 무엇보다 마츠코를 가련한 희생양으로 그리지 않은 점이 훌륭하다. 좋은 영화는 언제나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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