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바다이자, 한반도 호랑이 꼬리에 위치한 구룡포는 지형적 특색에 맞게 풍부한 자원을 가진 곳이다.
지난 2009년에 호미곶 해맞이공원에 세워진 새천년기념관과 2000년 밀레니엄 해맞이 행사에서 2만 명분의 떡국을 만들었던 가마솥
호미곶 해맞이공원에는 상생의 손 조형물 외에 국립등대박물관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철강 산업의 메카에서 영일만 르네상스를 꿈꾸는 포항
거대 철강도시로 명성이 높은 경북 포항은 광복 이전까지만 해도 수산업의 중심도서이자 포도밭이 즐비한 고장이었다. 1970년대 갯벌 위에 이룩한 ‘영일만의 기적’을 일궈낸 포항은 이제 제2의 영일만 르네상스를 꿈꾸며 첨단과학도시로 발돋움을 준비하고 있다.
포항을 이야기하는데 ‘구룡포’를 빼 놓을 수 있을까?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바다이자,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유한다면 호랑이의 꼬리에 속하는 우리나라 최동단의 지역이 바로 구룡포(九龍浦)다. 지형적 특색에 맞게 풍부한 자원을 가진 포항 구룡포의 맛집으로 가을여행을 떠나본다.
할매는 없지만, 그 손맛은 고스란히 남아
아량 넓은 표정으로 손을 맞이해 주는 정혁 포항우체국장과 권명자 서무팀장과의 짧은 인사를 뒤로하
고 포항우체국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구룡포로 이동하는 동안 거대한 용광로들의 위용에 나도 모를 탄성이 입안에서 흘러나온다. 첫 만남의 어색함도 잠시, 구룡포로 향하는 30여 분 사이에 경상도 사투리의 묘한 매력을 느끼며 목적지에 도착하자 작은 어촌과 함께 시퍼런 동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구룡포 우체국 김태룡 국장의 안내로 찾아간 구룡포의 맛집, ‘할매전복집’에는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인데도 듬성듬성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바다를 음미하고 있다.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 주방과 홀을 오가며 할매를 찾아 봤지만, 그 연배에 보이는 우리네 어머니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김정희 주인장에게 그 연유를 물으니, 50년간의 물질과 30여 년의 식당을 겸하며 생계를 꾸렸던 어머니가 6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먹을거리 탐방을 하며 가장 마음 아프고 송구스런 대목이다. 해녀의 딸이어서일까. 난처한 표정이 역력한 필자를 어우르는 강단이 지난 세월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으리라 지레 짐작케 한다.
여름철 쇠해진 기력을 보충시켜 줄 신선한 해산물이 밑반찬으로 푸짐하게 나오는 할매전복집
할매전복집의 ‘할매’를 지금은 볼 수 없지만 그의 딸이 어머니의 손맛을 지켜가고 있다.
동해안 일대의 어촌계에서 공수한 100% 자연산만을 취급하는 할매전복집 의 메뉴들. 바다의 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영양가 많고 쫄깃쫄깃한 전복이 그대로 씹히는 전복죽은 다른 지역에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와 포장해간다.
한우물 파기에도 팍팍한 세상, 옹고집으로 살아라
주문한 전복회와 전복죽이 한 상 그득하게 차려진다. 출출한 상황인데다 뭍은 물론이고 해안가에서도 쉽사리 접할 수 없었던 ‘폐류의 황제’로 불리는 전복이 시야에 들어오자 평정심을 잃은 젓가락이 밥상을 헤집기에 바쁘다. 밑반찬으로 함께 나온 청어회(포항의 겨울철 대표 먹을거리인 과메기의 주재료)와 성게알, 돌미역, 문어 및 새우찜만으로도 여름철 기력을 잃은 입맛을 돋우기에 여한이 없다. 구룡포 항을 비롯한 동해안 일대(울진~양남)의 어촌계에서 공수한 100% 자연산만을 취급하는 전복은 오독오독 씹히는 맛이 일품으로 바다의 향이 입안에서 한동안 가시질 않고 맴도는 듯 하다. 주인장의 어머니에게서 전수 받았다는 전복죽의 구수함은 전복(내장 포함)과 찹쌀만을 넣고 불조정과 손맛으로만 끓여낸다 하니 바따라진 맛이 일품이 아닐 수 없다.
그 맛과 영양을 알고 늙은 노모의 보양을 위해 찾아오는 대구의 효자손님이 있는가 하면, 대전의 임산부 입덧을 걱정해 한걸음에 달려온 신랑이 있을 정도로 할매전복집의 전복죽은 그 유명세가 유별나다. 그도 그럴 것이 전복은 심장질환 예방식품이며 간기능 회복과 폐결핵에 특효가 있으며 면역기능향상과 여성미용 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게다가 단골이다 싶으면, 한 가족처럼 대하는 주인장의 큰 씀씀이와 정성의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푸짐한 한 끼를 뒤로 하고 나서는 길, ‘이 맛, 이 정성 그대로 서울에 진출해 보고 싶다’는 작은 꿈을 내비치는 주인장을 보며 약삭빠른 서울생활을 잘 지탱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다가도 이내 그만의 성실함과 어머니 맛을 지키기 위한 순박함이라면 어디에선들 부족함이 없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픔의 세월을 견뎌낸 상생의 땅, 구룡포 호미곶
경북 포항의 어촌마을 구룡포에는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우리네 삶의 아픔이라 할 수 있는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조용하고 평화로웠던 구룡포는 일제강점기 시절, 최적의 어업기지로 떠오른 곳이다. 조선총독부의 승인아래 구룡포에 축항하게 되면서 큰 배가 정박할 곳이 생기자 수산업에 종사하던 일본인들이 대거 구룡포로 몰려들어왔고, 현재의 구룡포우체국 뒷쪽 골목에 ‘일본인 가옥거리’를 만들었다.
‘왜색일소’를 외치며 일본 침탈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비문과 석탑에 시멘트를 부어 일본말을 지운 것하며, 세월의 흐름 속에 낡고 허름해진 건물 모양새가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모습이다. 우리네에게는 아픔의 역사가 그들에게는 번영의 역사가 되었던 현장인 것이다. 가을이 익어가는 구룡포항을 지그시 바라보는 늙은 아비의 모습이 더욱 애처로워 보인다.
영일만 호미곶은 한반도의 최동단에 위치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돋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겸 지리학자였던 고산자 김정호 선생은 대동여지도를 제작하면서 이곳을 7번이나 답사한 끝에 우리나라의 가장 동쪽임을 확인하였다 한다.
또한 16세기 풍수지리학자 격암 남사고 선생은 호미곶을 천하제일의 명당이라 하였고, 육당 최남선 선생은 일출제일의 이곳을 조선십경(朝鮮十景)의 하나로 꼽았다.
빼어난 경관 이외에도 호미곶 해맞이 광장에는 ‘상생의 손’ 조형물과 한국 최초의 국립등대박물관, 그리고 국내 최대의 가마솥(떡국 2만 명분, 약 4t 용량) 등의 이색적인 광경을 접할 수 있다.
‘꿈과 희망의 도시, 글로벌 포항’을 기치로 더 많은 성장과 더 나은 삶을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포항은 지금 ‘제2의 영일만 르네상스’를 꿈꾸고 있다.
(좌)등대박물관(관광통신일부인)
일부인번호 1196
발행일 2002. 6. 01.
사용우체국 호미곶우체국
사용기간 2002. 6. 1.
(우)화합의 시대(기념통신일부인)
일부인번호 1972
발행일 1999. 12. 30.
사용우체국 포항우체국
사용기간 2003. 4. 10.
Tip 할매전복집
메뉴 전복회, 전복구이(각 7~13만 원), 전복물회, 전복회국수(각 3만 원), 전복죽(1만 5천 원), 해삼, 해삼무침, 성게알(각 3만 원), 멍게, 과메기(각 2만 원)
예약 054) 276-3231, 276-9022,
011-9571-9022
휴무 연중무휴
좌석 100여 석
주차 건물 주차장 및 포구 주차장 이용가능
소재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 6리 20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