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DEO 순천을 다시 바라보기
순천에 가신다고요?
순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고요?
바다가 아스라이 여인의 인조비단 치맛자락처럼 펼쳐져 있는 순천만에 가보세요.
갈대가 훌쩍 키를 넘고 있으니까요.
순천만, 송광사와 선암사, 낙안읍성, 주암호... 순수한 동심이 있는 우리 고향 순천 길이
그대의 발길에 위안을 주리라 믿습니다.
부디 가시는 걸음걸음마다 아름다운 풍광 두르소서
- 《눈을 감고 보는 길》, 정채봉
언젠가 순천 출신 정채봉 작가의 글을 보고 그가 묘사한 이 풍경이 궁금했었다. 사람에 치이고, 유독 마음이 분주하던 어느 날, 서울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순천으로 향했다. 자연이 사람을 위로하고, 풍경이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곳.
순천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순천만, 낙안읍성 그리고 선암사일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곳에는 특별한 공공 도서관이 두 곳이나 있다. 2003년 한 TV 프로그램과 시민단체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이 주최가 되어 만든 ‘기적의 도서관’과 우리나라 제1호라는 ‘순천시립 그림책도서관’이 그곳이다. 순천 출신의 작가도 여럿이고 순천이 품은 자연과 도서관을 놀이터 삼아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고 생각하니, 순천시는 정원을 가꾸고 도서관을 정비하며 보이지 않는 미래를 키워가고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순천에는 시내를 관통하는 ‘동천’이란 이름의 하천이 있다. 시민들은 퇴근 후 운동하기 위해, 벚꽃이 필 때엔 일부러 그곳을 찾는데 멀리 가지 앉아도 기분 좋은 꽃구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천에서 순천만국가정원까지는 자전거도로가 있어 물길 따라 자전거를 타기도 좋다. 이렇게 도시 속 하천과 정원, 얕은 산과 둘레길이 일상의 속도를 조절한다.
순천만 용산전망대 Ⓒ 순천시청
순천만 국가 정원 그리고 순천만
순천만국가정원은 2013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이후 현재의 이름으로 영구 개장했다. 매년 봄에는 다양한 봄꽃 축제가 열려 관광객을 맞이한다. 수목원, 습지센터, 세계정원 구역 등 다양한 정원과 산림 휴양의 공간이다. 특히 이곳의 ‘꿈의 다리’를 꼭 건너야 한다. 정원의 서쪽과 동쪽을 이어주는 다리인데 단순한 다리가 아니라, 세계 최초로 물 위에 떠있는 미술관이다. 2013년 설치미술가 강익중과 순천 시민이 박람회를 위해 만들었다. 순천시를 포함한 다양한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꿈 그림’을 받아 전시하고, 다리의 내·외벽에는 한글로 된 모자이크 타일을 붙였다. 타일마다 한 글자씩 적혀 있는데 앞뒤를 붙여 읽어보면 한 줄의 문장이 된다. ‘누구나 자기 우주의 대통령이다’, ‘인생은 기차여행 같아서 타고 내리고 만나고 헤어진다’…… 어른과 어린이 모두 형형색색 타일을 보고 그곳에 적힌 문장을 읽으며 다리를 건넌다.
순천만국가정원 입장권에는 순천만습지 입장료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시간과 일정에 쫓기며 이곳에 오기보다는 느긋한 마음과 걸음걸이로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국가정원에서 습지까지 가는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은 소형 무인궤도차인 스카이 큐브를 타는 것이다. 국가정원 안 정원역에서 습지 한쪽에 있는 순천문학관의 문학관역까지 약 10분이면 도착한다. 순천문학관은 이곳 출신의 작가 김승옥관과 정채봉관으로 나뉘어 있는데, 갈대밭에서 만나는 작은 한옥 문학관이 제법 운치 있게 느껴진다. 이곳에서 순천만의 용산 전망대까지는 느린 걸음으로 1시간 정도 걸린다.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은 160만 평의 빽빽한 갈대밭과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갯벌이 펼쳐진 도시로서 일상에 피곤한 우리를 위로한다.
낙안읍성 Ⓒ 순천시청
순천시 낙안면, 낙안 읍성과 낙안우체국
순천역에서 낙안읍성까지는 버스로 30분 정도 걸린다. 그 시간만큼 낙안읍성 주변의 풍경은 몇십 년 전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전기에 흙과 돌로 쌓은 성. 일부러 옛 모습을 꾸며 만든 민속촌이나 양반의 기와 가옥이 남아 있는 경우는 전국에 여럿이지만, 노란 초가지붕으로 마을을 이루고 일반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우리가 낙안읍성을 찾아야 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민속장터와 기념품점, 짚풀 공예와 도예 등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많다. 주민들이 직접 가꾸고 운영하는 민박집도 있어 이곳을 보다 깊이 느끼고 싶다면 하룻밤 숙박을 권한다. 단순히 몇 시간 그곳을 둘러보는 것과, 그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난 뒤 아침을 맞이하는 것과는 그 깊이와 느낌이 완전히 다르니까.
이른 새벽, 닭이 우는 소리에 눈을 떠 겉옷만 대충 걸치고 아침 산책을 나섰는데 그 공기에 남도의 봄이 느껴졌다. 성곽에 올라 초가지붕을 내려다보니 낙안읍성이 품은 과거와 내가 사는 현재, 두 곳을 시간여행 하는 기분이 든다. 읍성 안에는 조금 특별한 우체통도 있는데, 이곳에 우편물을 넣으면 낙안우체국에서 낙안읍성 관광 일부인을 찍어 보내준다. 일반 우체통과 연말에 한꺼번에 모아 보내는 느린 우체통이 있다. 여행지에서 보내는 편지 한 통은 전화나 문자 한 통이 전할 수 없는 것을 전달해준다.
“이곳의 지명인 낙안은 ‘즐거울 낙(樂)’에 ‘편안할 안(安)’을 씁니 다. 그래서 저는 이곳에 오시는 분들이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가시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오기준 낙안우체국장. 낙안우체국은 국장을 포함해 최미영 주무관과 이경종 주무관이 함께하고 있다. 1964년 개국해 원래 낙안읍성 안 오래된 은행나무 옆에 자리했지만 낙안읍성의 복원 사업이 시작되고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더불어 오 국장은 “십여 년 전에는 나만의 우표를 수없이 제작해 우체국에서 전시도 했었다.”라며 빙긋 웃었다. 낙안읍성만의 특징을 살린 우표, 예를 들면 ‘낙안읍성민속마을 설경’, ‘민속마을의 초가지붕잇기’처럼 풍경과 우표가 하나가 되어 그곳의 개성을 담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만들었는지 상상할 수 없지만, 분명 재밌는 경험이자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라는 말에, 가까이 있는 지역의 공간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전해진다.
배꽃이 피는 5월은 특히 멋들어져서 봄에 하얀 눈이 내린 것 같다는 오 국장의 말에, 나도 눈을 감고 그 풍경을 상상했다. 장소는 같지만 계절에 따라 1년 열두 달 피고 지는 꽃이 달라지고, 날씨에 따라 시기별로 더욱 특별해진다. 같음 속 다름을 발견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능력이다.
이튿날 읍성을 나서며 성 밖의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 에 들렀다. 1976년에 창간한 순우리말 잡지 <뿌리 깊은 나무>와 1984년에 창간한 여성 월간지 <샘이 깊은 물>의 발행인 고 한창기 선생이 소장한 민속 작품을 전시 중이다. 우리 전통문화와 민중의 삶을 고품격 잡지로 담아낸 소중한 유물을 어느 한 곳에 모아두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선암사 Ⓒ 순천시청
순천의 사찰, 봄꽃의 아름다움
순천의 선암사는 우리나라의 많은 절이 조계종인 것과는 달리 태고종 본산이 있는 절이다. 입구의 승선교는 아치형의 아름다운 돌다리인데, 이 이름은 다리를 건너면 신선이 되어 하늘을 오른다는 뜻을 갖고 있다. 선암사에는 오래된 매화나무가 무려 50여 그루 있고, 그중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도 있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가장 먼저 피는 꽃이기에 많은 이들이 봄을 기다리며 이 꽃이 피는 것을 지켜본다.
또 ‘매화’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금전산의 금둔사다. 작은 사찰 경내에 여섯 그루의 매화나무가 있는데, 이곳의 매화나무는 ‘납월매’라고 불린다. 그 이유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음력 섣달을 ‘납월’이라 하는데, 바로 그때 꽃을 피우기 때문이라고. 이곳의 주지스님인 지허 스님은 일부러 이 납월매를 보기 위해 출사를 오는 이들도 많다며 대웅전 뒤편에 핀 꽃을 꼭 보고 가라고 말했다.
‘꽃 피는 봄날이 특히 반가운 것은 다른 철에는 그런 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철에 모든 꽃이 피어있다면 봄날은 이미 꽃 피는 봄날이 아닐 것이다.’ 생전에 한창기 선생은 이런 글을 남겼다. 봄에 피는 꽃, 그 꽃들에 눈을 빼앗기고 마음을 주며 이 계절이 깊어간다.
조정래 작가는 <태백산맥>에서 순천을 배경으로 우리 민족의 아픔을 다뤘고, 김승옥 작가는 제 고향 순천의 순천만에서 영감을 얻어 <무진기행>의 안개 낀 풍경을 그려냈다. 정호승 시인은 <선암사>라는 시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며 이 지역 사찰을 예술로 품었다.
여러 작가들이 글로 쓰고 남겨둔 순천. ‘순할 순(順)’에 ‘하늘 천(天)’을 쓴다. 어떤 인공적 풍경이나 손을 많이 댄 장소가 아닌, 드넓은 자연 속을 걷고, 오래된 성을 만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순천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 ‘하늘을 따른다’는 이 도시의 지명을 마음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여행 Note
기차역 앞 광장의 관광 안내소가 매우 잘 되어 있고 인터넷을 통한 정보도 다양하게 얻을 수 있다. 낙안우체국 직원들이 추천하는 식당과 둘러볼 곳, 발품 팔며 만난 순천의 먹거리와 볼거리를 정리했다.
미향식당
이 지역에서 꼬막은 매콤새콤한 양념에 무쳐먹는 건 기본, 굽거나 삶아서도 먹는다. 2인분이상 주문하는 꼬막 정식 한상차림은 반찬만무려 18가지. 낙안읍성 근처에서 식사하고 싶을 땐 낙안우체국 최미영 주무관이 추천하는이곳을 찾아보자.
순천시 낙안면 삼일로 73
061-751-7723
순천시청
와온 해변
순천시 해룡면 와온마을에 있는 해변. 특히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구불구불한 리아스식 해안선을 따라 드라이브를 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이 찾는다.
순천시 해룡면 와온길 133
061-749-3107
조훈모과자점
대한민국 제과기능장 조훈모과자점은 빵과 케이크, 초콜릿으로 가득하다. 1994년부터 순천시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봉화산 둘레길, 죽도봉공원 근처에 있고 각종 빵과 마카롱, 커피와 음료를 즐길 수 있다.
순천시 봉화로 46
061-755-3822
청춘창고
순천역에서 도보 10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양곡창고를 청년들 주최의 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1층에는 식당, 커피 및 디저트 가게 등이 있고 2층에는 작품 전시와 공예체험 등을 할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순천시 역전길 34 순천농협
061-746-9697
순천 로컬푸드
순천시 내에서 생산된 제철 농산물을 순천시민이 소비하는 로컬푸드 직매장이다. 국가정원 내 레스토랑과 카페도 이곳의 농산물로 요리한다. 여행 중 순천에서 판매하는 먹을거리와 특산품도 구입할 수 있는데 특히 낙안우체국 직원들은 ‘몽실이’란 이름의 매실 보리떡을 강력 추천했다.
순천시 국가정원1호길 162-11
061-741-8879
운영시간 동절기(11~2월) 09:00~20:00
하절기 09:00~21:00 / 명절 당일 휴무
한옥글방
순천 시내 문화의 거리 안에 거점 역할을 하고 있는 한옥글방. 순천시 문화관광과에서 운영하는 작은 한옥 도서관이자 문화공간이다. 이 거리의 숍과 골목길에 대한 안내가 필요하다면 이곳을 찾자. <천천희>란 순천문화의 거리지도도 볼 수 있으며 주변 소상공인들을 위한 크고 작은 세미나도 열린다.
순천시 금곡길 28
061-749-4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