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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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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직시 못다한 일
아쉽지만
성장하는 체신부 보면 호뭇하기만 할 뿐.

글. 우명빈(前 군산우체국장)

[나의회고]신생 공화국 체신의 동량임을 자부하던 시절
198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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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잡아 나의 체신부 경력은 주사 9년, 사무관 10년, 서기관 15년 둥 35년으로 1984년 군산우체 국장을 끝으로 정년퇴임을 하였다. 사무관 직급 까지는 주로 체신부 본부에서 근무하였고, 서기관 승진 후 대구에서 1년을 보내고 인천우체국장 으로 부임하여 우체국 업무에 열을 올리던 중 소속 체신청과 고용원 임용권을 놓고 갈등을 빚은 끝에 강릉우체국으로 유배(?)를 당하였다. 함께 떠났던 동료들은 1~2년에 모두들 상경하였는데, 필자는 다시 강릉전화국, 춘천전화국, 삼척우체 국을 거쳐 C모장관의 은고를 입어 실로 6년 4개 월만에 상경하였다. 집을 떠날 때 중학교 2학년 이던 큰아이가 대학교 3학년이 되었는지라 그간의 가정형편이 경제적으로나 자녀 교육상 목불인견이었다. 그럭저럭 직할관서의 한직에 눌러 있기를 3~4년. 이번엔 또 무슨 바람이 몰아쳐 전북 지방으로까지 날려 거기서 5년여를 지내고 옷을 벗으니 남가일몽이라 하되 이토록 허무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몸성히 전국을 주유하였다고 자위하면서 요즘 등산과 독서, 바둑 등으로 남은 세월을 낚는 중이다.


건고 초기의 어려움 상하가 함께 고생하며 극복

나의 체신인 생활은 평양 체신에서 같이 지냈 던 장두길씨(작고. 당시 보험국 장려계장. 환도 후 국내우편과장 등 역임)의 간곡한 권유에 따라 정부 수립초 4급을류(지금의 주사보)로 특채되면서 비롯한다. 당시의 보험국장은 김의창씨. 업무 과장은 고웅씨(얼마 후 서대문국장으로 전임). 이어 이의춘씨가 계셨다. 나라를 찾았다지만 좌익분자들의 도량이 끊일 사이 없어 치안이 어지러운 터에 산업은 보잘것 없었고 생필품이 크게 부족하여 잉여 미군복, 군화 등을 배급받아 착용 하기도 하고 식량 사정이 극히 어려워 수제비, 소금국, 밀밥, 고구마 따위로 끼니를 이었으며, 이런 어려움은 국장•과장급 간부직원이나 하급직원이나 매한가지였다. 상하가 더불어 고생하면서 신생 공화국 체신의 동량임을 자부하면서.맡은 일에 정성을 바쳤다.

그러던 중에 6.25전쟁이 터졌다. 삽시간에 38선이 무너지고 서울이 떨어지고 대전으로, 대구로, 부산으로 피난을 했다. 9.28수복도 잠시 다시 1.4후퇴(그때까지만 해도 세종로 체신부 청사는 말짱했었다) 3년을 두고 밀며 밀리며 혈전을 거 듭하였으나 아무 성과없이 휴전, 폐허의 서울에 환도하였다.

체신부는 서울시청 건너편 체신회관(현 소공세무서)에 자리잡고 피난 살림을 끌렀다. 세종로 청사 지하에 수북하던 각종 문헌•자료들은 고스란히 재로 변해 있었다. 사람도 달라져 있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더러는 안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거짓말장이가 생겼는가 하면 나라 돈 떼 먹은 사람이 있다고도 했다. 6.25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엄청난 변화였다. 전쟁의 참화,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 정치파동의 비리를 체험한 우리의 그때의 모습이었다.

30년이 흐른 오늘의 상황은 어떤가? 이제 다시 전쟁이 난다면 어떻게 될까? 이땅에 누가 승자가 되며 무엇이 남을까? 오늘의 우리는 전쟁의 재발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다. 전쟁을 막기 위해, 살아 남기 위해, 민족을 보전하기 위해, 남북대화를 착실히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먼저 남쪽이 화합하고 힘을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


말로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차라리 말도 않고 가만히 있는 것만 못해

역대 체신부장관 중에 이광씨(작고)의 인상이 깊다. 그분의 취임사의 요지는 “내 독립운동 한다고 좀 따라다닌 것뿐 별로 아는 것도 없어요. 체신부 일은 더더욱 생소하니 여러분들이 잘 알아서 해 주시오. 지금 나라 일이 매우 어려운데 내가 부정을 하면서 여러분한테 부정하지 말라고 하면 여러분들이 따르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이 문제도 각자가 알아서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할 것으로 믿소.”라는 줄거리였다고 기억된다. 1년 남짓 재임하고 떠나셨는데 재물을 탐하지 않고 술을 잘하셨다는 후일담이다.

이광씨의 후임으로 이응준 장군이 7대 장관으로 오셨다. 장관에게 현황 설명을 차트로 해야 한다 하여 차트 만들기에 체신부 전체가 밤샘을 하면서 법석을 떨었었다. 그 몇년 뒤에 5.16혁명이 나면서 운영계획제도가 도입되고 제로디펙트며 퍼트시스팀 등 관리기법이 등장하고 최근에

최순달 장관 때 전국에 퍼졌던 품질관리운동은 일과성으로 그치고 만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새 기법, 제도 등은 꾸준히 축적해 나가야 되리라 본다.

이응준 장관은 3년이나 재임하면서 특히 통신 시설의 복구•확장에 많은 업적을 남기셨으나 재임 중 공교롭게도 차관 이하 국장급 모두가 본의 아니게 교체되는 불운도 따랐다.

차트는 상황을 파악하고 또는 판단하는데 있어서 문장보다 유리하다. 하지만 오류에 빠질 위험도 크다. 어떤 제도나 시책을 바꾼다고 할 때 현행의 단점과 개정안의 장점을 비교한다든지 과장 또는 과소하게 표현함으로써 판단을 흐리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5.16 후의 숱한 시행착오라고 하는 것과 무관할까?


윗자리 앉은 사람은 부하의 능력과 적성을 살펴 적소에 배치하고 키워줄 책임있어

1957년경에 체신부에서 처음으로 고등전형 예비전형을 실시한 적이 있다. 승진 후보자를 선발 해서 총무처로 보내어 전형시험을 치러 임명하게 되어 있는데 시험에 떨어지는 사례가 많아 자체에서 예비시험을 치러 선발하도록 한 것이었다. 나는 본디 승진에 관심이 없었는데 웃분들이 강권하다시피 해서 마지 못해 응시를 했는데 결과는 뜻밖에 내가 수석으로 합격을 했다. 시험문제를 최재호 차관이 내셨는데 주로 법률 문제였다. 나는 수험준비는 하지 않았지만 평소 법률책을 가까이 하고 있던 터라 대강의 요점만은 적을 수 가 있었다. 문제의 뜻도 잘 이해 못한 친구들이 많았으므로 상대적으로 내가 점수를 받았던 모양이다. 구술시험에서 최건 우정국장이 시관석에 앉아 물었다.

시관 : 공무원은 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읍니다. 행정공무원과 사법공무원의 법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면 ?

필자 : 행정공무원은 법의 집행을, 사법공무원은 법을 적용, 판단하는 기능상 차이가 있어도 법을 성실히 준수해야 함에 경중이 없다고 봅니다.

시관 : 행정공무원은 법을 창조적으로 다뤄야 합니다. 해석에 있어서 그러하고 맞지 않게 되면 개정을 하고 해서.

최건씨는 또 이런 말도 덧붙여 주었다. “공무원은 윗자리에 있는 자는 부하들 개개인의 능력과 적성을 잘 파악해서 적재적소에 배치를 하고 키워 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그러나 세태는 자기 피알(“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리는)은 자기가 해야 하고 필요하면 남을 모함하고 싸들고 다니는 쪽으로 바뀌고 있었으니.


노조의 발전은 종업원의 자질 향상,생산성 향상을 통하여 사업의 발전을 가져와

1958년에 사무관에 임명되어 군사우편과 공군 본부분실장이 되었는데, 한달도 안돼 총무과 기획계에 계장외에 겸직정원 1명이 생겨 내가 들어갔다. 계장인 김형태씨를 도와 일했는데 부수감투가 체신관계 대일채권확정•상환대책위원회 전문위원, 체신법규편찬위원회 전문위원, 단체협의위원회 간사, 체신용어제정위원회 위원, 체신 사업사편찬위원회 간사 등이었다. 그중에서 내가 매듭지은 것은 단체협약 하나뿐이었다.

바로 이해 봄에 전국체신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최초의 단체협약 체결 문제가 대두하였다. 조합측에서는 먼저 결성된 철도노조 등의 협조를 얻어 단체협약안을 내놓았다. 체신부측에서는 각 국의 관계과장 등을 위원으로 하고 노동3권 관계 법령, 자료 등을 배포하고 회의에 임했다. 지금 기억에 남는 쟁점은 노조측이 노조 가입 대상 직원의 범위를 「4급 이하 일반직과 고용원직」으로 들고 나왔고, (당시 철도노조에는 4급이 들어 있었다. ) 체신부측은 이를 반대, 고용원직만으로 하도록 했다. 또 하나의 쟁점은 “甲(체신부)은 을(체신노조)이 조합원을 대표하는 유일한 교섭 단체임을 인정하고 모든 단체교섭은 을을 통하여서만 행한다”는 조항이었다. 체신부측 위원 중에 이 조항에 이견을 말하는 분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조합측은 이 조항이야말로 어용조합의 출현

을 미리 막을 수 있는 것이라 보아 고수하여 마지 않았다. 나는 노사간의 원만한 협조를 위해서나 또는 대노조 지원(사무실, 집기 제공 등)문제 등을 감안하여 노조 안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일부 위원 중에 “우사무관은 노조측이구만” 하는 핀잔인지 우스개 소리인지를 말하는 가운데 원만하게 타결이 되어 체신노조가 명실공히 발족을 한 것이다.

체신노조의 발족과 그 활동으로 말미암아 조합원 대상인 직종뿐만 아니라 전체 종업원의 근로 조건 개선과 처우 및 권익 신장에 크게 이바지하였음은 여기 적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정사업 활성화의 요체는 인력을 유효하게 활용하는 것

5.16이 나고 혁명정부가 도입한 제도 중에 인력감사가 있었다. 모든 인력 소요를 계량화해서 적정인력을 적정부서에 배치한다는 것인데, 나는 인력감사단(단장 윤탁중 준장)에 차출되어 교육을 받고 반(반장은 현역 육군중령•소령)으로 나 뉘어 몇달 동안 교통부, 서울시청, 한국전력 등 인력감사에 따라 다녔었다. 어느 수감기관 할 것 없이 인력 인정을 받지 못하면 감원문제에 부딪힌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인력소요 설명에 혈안이었다.

그런데 우스개 한 토막을 소개하면, 한국전력 회사의 단위업무에「적산전력계검정」이라는 것이 있기에 “이 일은 체신부에서 하는 일이지요?”하고 물었다.

“아닙니다. 그 양반들이야 검정인(봉인용 압착 철인)만 갖고 나와서는 술집에 들어 앉고 일은 모두 저희가 합니다.”

그 대답에 내가 체신부에서 왔다고 했더니 한전 직원은 얼굴이 빨개져 어쩔 줄 몰라 했고 감사반 일행은 폭소를 터뜨렸다.

인력감사기법은 단순반복적인 업무는 몰라도 좀 고급한 두뇌업무에는 적합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각 부문의 인력배치 기준 책정 등 인력관리 개선의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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