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안합니다’는 에티켓의 기본
일본을 여행한 독자들은 길거리에서 '미안합니다,'(스미마센) 하는 말소리를 많이 들어보았을 줄로 안다. 일본 사람들은 남과의 접촉에서 버릇처럼 입에 올리는 말이 ‘미안합니다' 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러면 일상생활에서 전화를 거는 일본인들의 화술을 잠깐 살펴 보자.
전화를 건 사람은 첫마디가 우선 “미안합니다. 000입니다만, OOO씨를 바꿔 주시겠습니까? ”라고, 상대방에게 ‘미안하다’는 첫인사와 함께 자기 자신이 아무개라고 먼저 신분부터 밝힌다.
이 경우 우리는 어떤 식으로 전화를 걸고 있을까? 필자의 경우는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고 나서는 대뜸 “김00 선생 님 계십니까? ” 하고 상대방을 찾았던 것이다.
실은 그와 같은 필자의 전화에티켓이 잘못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은 일본에 건너간 뒤부 터의 일이다
그들은 상대방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을 때는 또 어떤 식으로 전화를 받는가. 누구나가 전화 벨이 울리면 수화기를 들고는 반드시 다음과 같이 먼저 자신을 분명하게 밝힌다.
'네, 다나카입니다만…', '네, 경리과입니다만…” 이런 식으로 전화를 건 상대 방에게 자신의 신분이나 직장을 밝혀 줌으로써 상대방이 전화를 바르게 걸었는지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러므로 전화를 건 사람 이 이번에는 “미안합니다. 00 0씨를 부탁합니다.” 하고 통화 하고 싶은 사람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외도 있다. 자기가 전화를 걸어서 찾고 있는 상대 방이 손윗사람인 경우에는 '미안합니다' 대신에 '송구스럽습니 다만’ 또는 '죄송합니다만’ ‘큰 실례입니다만’ 등의 겸손한표 현으로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나서 상대방을 찾는 것이다.
상대방에게서 걸려온 전화에서 찾는 사람이 없는 경우, 전화를 받는 사람은 또 어떤 식으로 대답해 주고 있을까.
“공교롭게도 지금 자리를 비우고 있습니다만, 뭐라고 전해 드릴까요? ”
또는 상대방이 가정으로 그 집 주인을 찾는 경우. 대개 주부 들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주인은 지금 밖에 나가고 없습니다. 혹시 약속을 하셨는지요? ”
즉. 자기 남편이 상대방과 약속을 했는데도 그냥 나가지 않았는지, 걱정하는 마음으로 조심 스럽게 상대방에게 타진하는 것이다.
“아닙니다. 그냥 걸었습니다. 실례지만 언제쯤 귀가하실는지요? ”
“미안합니다. 아무 말이 없이 그냥 나갔습니다만 뭐라고 말씀을 전해 드릴까요? ”
“죄송합니다만, 내일 아침에 일찍 전화드려도 괜찮으신지요? ”
“부디 염려 마시고 걸어 주십시오”
일본인들은 남의 집에 전화를 걸 때는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 시간은 피하고 있다. 그래서 아침 9시 이전이나 저녁 7시만 넘어도 남의 가정에는 되도록 전화를 걸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른 아침에 전화를 걸 일이 있을 때는 미리 양해를 구하고 응낙을 받은 뒤에만 거는 것이다.
□남에게는 자기 아버지라도 낮추어 말한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은 앞에서 부인이 전화에서 남편에 관한 사항을 말할 때 ‘주인은 지금 밖에 나가고 없습니다’라고 자기 남편의 행동에 대해 경어를 쓰지 않고 낮 춰서 말하고 있던 점을 의아하게 여겼을 줄로 안다. 왜냐 하면, 한국에서는 남편이 밖에 나가고 없는 경우에. 흔히 다음과 같이 말하기 때문이다.
“지금 밖에 나가시고 안계시는데요.”
아마도 우리 주부들은 이런식으로 자기 남편에 대한 사항을 경어로 표현할 줄로 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주부가 자기 남편에 대해서는 존경 표현 대신에 低下 표현을 한다. 즉, 자기 집안 사람 또는 자기 회사 등 자신과 소속되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른이거나 상사이건간에 남에게 말할 때 반드시 저하 표현을 하고 있다.
예를 든다면,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찾는 상대방 어른에게도 자기 아버지에 대해 저하 표현을 한다.
“아버지는 나가고 없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어떤가. 어른으로부터 예절 없고 말버릇이 나쁘다는 꾸중을 듣기 십상이다.
“아버님(께서)은 나가시고 안계 십니다.”
대개 이런 식으로 존경 표현을 쓰는 게 한국의 경우이다. 그리고 일본의 회사에서 보면 여사원이 사장의 외출에 대해 서도 역시 상대방에게 다음과 같이 어김없이 저하 표현을 하고 있다.
“사장은 지금 나가고 없습니다.'
또한 예를 들어 누가 후지모토 과장을 찾는 경우, 여사원은 다음과 같이 흔히 말한다.
“후지모토는 출장중입니다만…'
자기 상사인데도 ‘후지모토 과장’이 아니고 그냥 ‘후지모토’라고 밝힌다.
전화가 아닌 보통의 대인관계에서 살펴볼 때도 마찬가지이다. 자기에게 소속된 사람에 대해 상대방에게 경어 표현을 하는 것은 부적당한 것으로 관례화되어 있다. 즉, 일본인들은 자기 소속의 사람에 대해 저하 표현을 하는 것이 상대 방에 대한 깍듯한 예절인 것이다.
그런데 굳이 자기 회사 ‘과장’이라는 직책을 남에게 표현 하는 경우에는 “과장인 후지모토는 출장중입니다.”로 표현한다. 왜냐하면, ‘후지모토 과장'으로 말하는 것은, 자기 회사 소속의 인물을 남에게 경칭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즉, ‘과장’의 長이라는 말은 직책을 표현하는 동시에 경칭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점은 한국의 관례에서는 생소하고 이해가 안갈 줄 안다. 그러나 일본의 대화 예절은, 자기 소속의 인물을 상대방에게 존칭 또는 경어 표현을 하지 않게 되어 있다는 점을 이 기회에 알아 두기 바란다.
따지고 보면, 일본인들은 남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존경 표현을 하는 대신에 자신에 대해. 또한 자기 소속 인물에 대해서는 어김없이 낮추어 저하 표현을 함으로써, 그것을 상대방에 대한 깍듯한 예절로 삼고 있는게 특색이다.
상대방에 대한 예절인 동시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본인들의 태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또한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전화의 대화를 예로 들기로 한다.
“오늘 저녁에 시간이 있습니까? ”
“예, 시간은 있습니다만…” “한 잔 마시지 않겠습니까? ’’ “그렇군요.”
“7시는 어떻습니까? ”
“좋습니다만…'
“장소는 어느 쪽이 좋으신가요? ”
“그렇군요, 어디가 좋을까요? ”
“지난번에 만났던, 역광장의 공중전화 앞은 어떨까요? ”
“좋습니다. 7시까지 나가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이와 같은 대화에서 볼 수 있는 두 가지의 큰 특징을 여러분은 느꼈을 줄로 안다. 그 하나는 상대방의 시간 사정 등을 이리저리 배려하면서,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는 일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상대 방에게 완곡하게 염려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결정을 상대방이 먼저 내리도록 의견을 맞춰 주는 일이다.
사실 일본 사람들의 입버릇의 하나로 ‘그렇군요’라고 하는 표현을 흔히 들 수 있다. 우리가 듣기에는 그 말이 단정적인 ‘그렇다'로 알기 쉬우나 사실은 전혀 단정이 아니고, 상대방의 의견이 옳다 그르다를 단정하기 전에 우선반쯤만을 받아들이는 표현이다. 대개 보면 ‘그렇군요’ 한 다음에 자기 의견을 개진하는만큼 성급한 대답을 하기 전에 생각하는 여유를 가지려는 세련된 화술이 아닌가 한다. 물론 구체적으로 지적한다면 애매모호하다는 비난도 살 만한 표현이다. 흔히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경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주장이 옳은 것 같지요?'
'그렇군요, 어떨까요?'
□이 핑계 저 핑계 많은 일본인
일본인들 스스로가 지적하는 일본인의 성격상의 큰 단점의 하나는 ‘구실’ 즉, ‘핑계' 이다. 스스로가 핑계가 많다고 하는 일본인들의 구실의 실례를, 일본인이 쓴 책에서 직접 인용해 보겠다. 다음 대화는 취직시 험을 보러 다니는 4학년 여대생 야마모토 요코(山本陽子)와, 야마모토양을 한 전기회사에 소개해서 취직을 시켜주게 된 이노우에(井上)씨가 나누는 전화 내용이다.
“아니. F전기회사의 취직을 그만두겠다니? 그게 지금 와서 무슨 얘기지? ”
'네. 진짜 저는 제멋대로입니다만, 사실은 F전기회사 이외에 다른 회사도 취직시험을 본 데 가 있었는데요 그 회사도 취직이 결정되었던 것이에요.”
“아니, 뭐라구?'
“사실은 선생님이 소개해 주셔서 F전기회사의 취직이 결정되었으니까, 다른 회사에는 제가 취직 결정을 거절했어야 합니다만, 저 자신 뜻밖의 일이었기 때 문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려고 했던 것이에요 그 때문에 이노우에 선생님한테는 큰 실례라고 생각했습니다만. F전기 입사는 그만두기로 했어요.”
“그렇다면 어째서 애당초 나에게 다른 회사도 시험을 치르고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지?'
“설마하니, 그 회사에 입사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않았거든요.”
“설마하니라지만, 그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서 입사시험을 치른 게 아니겠어? 그런 일은 애당초 나한테 사실대로 말해 주어야 했을 게 아니겠어. 정말 난처하군.”
“참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F전기회사에는 이 미 그만두겠다는 연락은 했나? ”
“아녜요 우선 이노우에 선생님한테 의논드려야 한다고 생각 했기 때문에 아직 연락 못했어요.”
“그럼 빨리 전화하여 용서를 빌어요 나도 얘기를 해두겠지만 그렇지만 말이지, 사회에 나가면 그런 일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해.”
이상과 같은 내용은 일본 도쿄의 실무교육줄판주식회사의 「전화활용법」에서 직접 인용해 본 내용이다 아무튼 핑계나 변명 치고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닌가 한다. 물론 한국인들이라고 해서 모두 핑계없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두드러지게 핑계가 많은 게 그들의 특징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