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는 주거지역이 1번지와 2번지로 나뉘어 있다. 1번지는 소록도병원에 종사하는 직원 거주지역이고, 2번지는 소록도 주민 거주지역이다. 2번지에 사는 주민들은 대부분 나이 든 사람들로 파 · 마늘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살고 있다.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5분이면 국립나병원이 있는 소록도에 닿는다.
소록도 갯벌
고흥반도 서남쪽 끝에 있는 녹동항에서 약 600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떠 있는 소록도는 둘레가 14km 정도 되는 작은 섬이다. 나병 환자들이 모여 살아 음침한 기분을 전해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섬 안쪽에 들어가면 동 화 속에 들어온듯 평온하다.
섬의 모양이 사슴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소록도는 일부만 빼놓고는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다. 나 병 환자들의 관리를 위해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소록도에서 관광객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중앙공원과 소록도해수욕장뿐이다. 그만 큼 문명으로부터 오염이 안 된 섬이라는 의미도 있겠다.
가을 기운이 무르익은 이 맘때, 소록도는 울긋불긋한 산 색깔과 바다 내음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소롯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노라면 온갖 나무 향기와 탁 트인 갯벌, 그리고 푸른 바다가 손짓한다.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풍광들은 처음의 좋지 않은 기분을 걷어가 버리고 색다른 분위기를 전해준다.
일찍이 시인 한아운은 이 섬에 요양하면서 「보리피리」라는 시를 남겼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억덕/ 피-닐리리/ 보리피리/ 꽃 청산/ 어릴 때 그리워/ 피-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한아운은 1919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한태영이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시를 썼지만 문단 활동을 한 것은 1949년에 「신천지」에 「전라도길」등 시 12편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그 해에 첫 시집 「한아운시초」를 냈고, 1955년과 이듬해에 「보리피리」와 「한아운시선집」을 냈다. 1960년대부터는 거의 시를 쓰지 않 았으며 1975년에 세상을 떠났다.
한아운의 시는 나병 환자라는 절망적 상황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감상이나 원망으로 빠지지 않고 한국시사에 기록될 만한 서정적 가락으로 생명과 건강한 삶에 대한 염원을 노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소록도는 흰 모래밭과 푸른 솔밭이 어우러진 바닷가와 속이 말갛게 보이는 쏙빛 바다, 그리고 황금편백이나 실편백 · 히말라야삼나무 · 동백 · 매화 · 진달래 · 영산홍 같은 꽃들이 철마다 고운 꽃망울을 터뜨린다.
소록도 2번지에 있는 중앙 공원은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지역으로 갖가지 꽃나무들이 질서정연하게 심어 져 있다. 6,000여평에 이르는 이 공원은 대부분 소록도 병원 4대 원장 슈호가 재임하던 기간(1993〜1942년)에 이루어졌다. 일제 때 소록도 병원이 생기면서 시작된 「천국가꾸기사업」은 환자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섬 일주도로를 뚫게 했다. 일의 강도가 어찌나 셌던지 환자들 가운데는 나무 토막이나 물통을 안고 바다에 뛰어들어 도망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공원 한가운데는 완도에서 끌어다 놓은 커다란 바위가 있다. '메도 죽고 놓아도 죽는다'라는 별명이 있는 이 바위를 옮기느라 다치거나 죽은 사람이 수두룩했다는 말이 전한다.
갖가지 수목과 바위로 공원을 꾸미고 자신의 동상까지 세운 슈호는, 그러나 1942년 자신의 동상 앞에서 환자들의 사열을 받다가 한 환자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손가락이 모두 떨어져 없어진 그 환자는 주운 쇳조각을 갈아 만든 칼을 자신의 팔뚝에 붕대로 동여맨 채 슈호를 찔렀다.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이 기막힌 사연을 잘 묘사하고 있다.
소록도 병원
지금 슈호의 동상이 있던 자리에는 구라탑(救幅塔)이 들어서 있고 '메도 죽고 놓아도 죽는 바위‘에는 한아운의 보리피리가 새겨져 있다.
1916년에 자혜의원이라는 간판을 걸고 첫발을 내디뎌 이듬해에 정식으로 개원한 소록도병원은 초대 원장이던 일본인 아리카와 도루 이래 대대로 나환자들을 동원하여 섬가꾸기사업에 열을 올렸다. 섬 가운데에 벽돌공장을 세우고 거기서 만든 벽돌로 예배당 · 회관 · 치료실 등 각종 건물 50여 동을 지었으며, 진도 · 완도 · 대만 등지에서 보기 좋은 관상수와 바위들을 옮겨왔고 섬 일주도로까지 닦았다.
1번지에 있는 소록도해수 욕장은 즐비한 소나무숲이 뿜어내는 송진 냄새와 때묻지 않은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섬에서의 숙박과 야영은 금지되어 있다.
소록도를 둘러보는 데는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섬의 기운을 좀더 느끼려면 한적 한 곳에서 새소리를 벗삼아 주변 풍경을 감상하면 된다. 섬 일주도로를 따라 소록도 병원 쪽으로 가다 보면 개펄에서 소라며 고둥을 캐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현재 이른바 한셋병(나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900여명 정도. 한때 1,600여명을 헤아리던 환자 들과 비교해 본다면 많이 줄어든 숫자이다. 환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자 보건복지부에서는 국립소록도병원의 규모를 축소한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섬이 오랜 세월 동안 나병 환자들의 안식처가 돼왔다는 것에 대해 얘기들이 분분하다. 앞으로 좀 더 진지한 논의를 통해 섬다운 섬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소록도 중앙공원
가는길
녹동항→소록도(소록도→녹동항). 관광객 출입 가능 시각 09:00〜17:00 수시 운항. 10분 소요. 왕복 9백원.
0666-844-0562 〜 7(소록도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