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 바다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영동 지방은 언제 가 봐도 싱그러움이 넘쳐난다. 살아있는 자연의 기운이 온몸으로 전해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에 가면 바쁜 생활 속에서 미처 볼 수 없었던 진한 삶의 현장을 만날 수 있다. 바닷가 사람들의 거친 삶, 아니 부지런한 살이는 뭇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삶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저들보다 조금 편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죄스러운지를 느끼게 해 준다.
어미소 등처럼 듬직하게 뻗어내린 오대산 자락의 한 켠에 자리한 주문진항, 예전에는 자그마한 포구였던 곳이 어항 확장과 상가 시설이 들어서는 바람에 지금은 제법 항구다운 면모를 갖추었다.
오징어 잡는 밤바다 불야성 이뤄
겨울 깊은 이즈음, 주문진항은 생동감이 가득하다. 들고나는 고깃배들의 고동소리며 갈매기들의 날갯짓, 조선소에서 나는 망치소리, 어판장의 질퍽함. 이런 풍경을 접하노라면 추위는 느낄 겨를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맡긴 갯바위, 싯푸른 수평선의 아득함, 뱃길을 안내하는 등대, 방파제를 가득 메운 낚시꾼들...
이런 모습과 함께 갯내음을 물씬 맡을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어시장이다. 읍내를 관통하는 해안도로변에 널찍하게 자리한 어시장은 지역 사람들뿐만 아니라 외지인들이 즐겨 찾는다. 이곳에서는 싱싱한 수산물을 싼 값에 살 수 있으며, 요청하면 즉석에서 요리도 해준다. 어시장 한 켠으로는 건어물 상가가 쭉 늘어서 있다. 이곳이 널리 알려지면서 주말이면 관광버스를 타고 단체로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어시장 주변은 소란스러울 정도다. 이곳 어민들은 직접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기도 하지만 이렇게 관광객들을 상대로 해산물을 팔아 쏠쏠한 수입을 챙긴다. 하지만 어시장에서 만나 본 상인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부터 바다에 나가보았자 만선을 기대하기 힘들 뿐더러 거기다가 어장 축소까지 겹치는 바람에 이래저래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 요즈음의 형편인 것이다.
어시장과는 별도로 내항 안쪽으로는 5일마다 장이 선다. 신발전, 옷전, 채소전, 떡전, 반찬전 등 여느 장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모습이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업고 채소를 파는 아낙네의 입에서 하얀 김이 새나온다. 허리가 기역자로 굽은 할머니, 얼굴에 물결같은 주름살이 가득한 할아버지, 시장통을 찾은 어르신들의 모습은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다양하다.
시장 한 켠에는 횟집들이 몰려 있다. 저마다 깔끔한 치장을 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이곳에 번드레한 횟집촌이 들어선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주문진항이 관광지로 탈바꿈하면서 생긴 변화이다.
'아저씨, 들어오세요. 싱싱한 오징어회, 광어회 있어요.'
'오징어 6마리에 만원. 꽁치 사가세요. 한 바구니 오천원에 드릴께요.'
굳이 고기를 사지 않더라도 횟집촌을 한 바퀴 둘러보는 재미도 그만이다. 저마다 싱싱한 고기를 수조통에 가득 가둬놓고 즉석에서 회를 떠 준다. 회를 먹고 나면 얼큰한 매운탕이 나온다.
주문진항의 하루는 새벽 3~4시 경부터 시작된다. 바다가 희부옇게 트일 즈음이면 작은 어선들이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들어오는데, 이때부터 고기 수집상들이 몰려들고, 어부들은 밤새 잡은 고기를 배에서 끌어내린다. 어판장에 풀어 놓은 싱싱한 생선은 경매를 통해 상인들에게 팔려 나간다. 이 생선들은 현지에서 소비되거나 수조통에 실려 대도시로 운송된다. 일부 품목은 냉동창고에 보관되는데, 시간이 지난 후 얼린 채로 시장에 나온다.
주문진은 인근의 속초항, 동해항과 함께 동해안의 어업 전진기지이다. 출어기가 되면 이곳 주문진에는 동해안의 연안어선은 물론이고 남해안, 서해안의 배까지 찾아든다. 한 번 출어할 때마다 10톤 이상의 배 들이 10여명 이상의 어부들을 태우고 나가 작업을 하는데, 가장 많이 잡히는 것이 오징어다. 오징어잡이철이 되면 밤바다에 떠 있는 집어등이 불야성을 이루는데, 그 모습이 가히 환상적이다. 마치 작은 도시의 불빛을 보는 듯하다.
직접 손으로 낚는 꽁치잡이
요즘 들어서는 내수성 어종인 꽁치가 많이 잡힌다. 꽁치잡이는 명태처럼 유자망 어업이나 정치망 그리고 손꽁치잡이로 이루어진다. 유자망이나 정치망 어업은 어느 바다나 그 어법이 비슷하지만 특이한 것은 손꽁치잡이다.
산란기의 꽁치들은 알을 낳기 위해 제 몸을 다른 사물에 비벼대는 습성이 있는데, 이때를 이용하여 싱싱한 꽁치를 잡아낸다. 주로 잔잔한 마을 앞바다나 정치망 어장 부근에서 이뤄지는 손꽁치잡이는 먼저 꽁치떼가 숨을 만한 수면이나 정치망 주변에 거칠거칠한 모자반 따위의 해초를 띄워놓고 그 사이에 열 손가락을 펼쳐서 담그고 있다가 손가락을 해초로 착각한 꽁치가 끼어들면 그대로 잡아내는 것이다. 이런 작업은 어민들이 스스로 터득한 것으로 경험이 많을수록 더 많은 꽁치를 잡을 수 있다. 이 손꽁치는 그물로 잡은 것보다 맛이 좋아 어판장에 부려놓자마자 횟감으로 팔려나간다. 싱싱한 놈을 골라 배를 가른 다음 뼈를 도려내고 듬성듬성 썰어 소금물에 깨끗이 씻어 막장에 그냥 찍어 먹는 회맛은 여느 맛 좋은 생선과 다를 게 없다. 그러나 꽁치회 맛을 모르는 사람들은 통째로 소금 뿌려 숯불에 구워 먹는 방법을 택한다.
강릉시로 편입된 주문진읍은 지금 개발이 한창이다. 강릉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은 주문진항이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그네들의 모습은 펄펄 뛰는 생선만큼이나 활기차다. 주문진 어시장은 도시 사람들의 영원한 고향이다.
가는 길
강릉에서 7번 국도를 따라 속초 방면으로 가다 보면 주문진읍내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주문진읍에 이르면 항구로 이어지는 간선도로(해안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를 따라 조금 가면 배들이 가득 정박해 있는 주문진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