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 난국을 야기시킨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보다도 국제수지 적자의 악화를 들 수 있다. 물론 왜 국제수지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가를 파고들면 저 효율 경제, 즉, 낮은 부가가치 구조가 시정되지 않는 것을 생각할 수 있으나 이는 다분히 중장기적인 이슈이다. 단기적으로는 교역조건의 악화, 특히 반도체, 석유화학 및 철강 제품의 수출가 하락과 원자재 및 부품의 수입가 상승으로 대외부문의 요인 때문에 국민소득의 감소를 가져온 것이다.
올 들어 9월까지의 누적 적자액은 150억달러에 달했는데 연말까지는 200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무역 적자액의 반 이상은 반도체가격의 하락에 따른 교역조건의 악화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지난 8월의 경우 수출단가를 수입단가로 나눈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87.7을 기록했다. 이같이 순상품교역조건지수가 90 이하로 떨어진 것은 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8월의 102.5보다 무려 14.8 포인트가 감소한 것이다. 최근 들어 반도체가격이 다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반도체 경기도 회복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무역수지 적자 폭의 확대 추세는 다소 주춤해질 것으로 보여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수출이 안되고 여행 등 해외 소비가 늘어 국제수지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판에 달러가 초강세를 보여 원화의 환율이 급등(원화가치의 하락)함에 따라 외채의 이자 부담마저 크게 늘고 있다. 한 마디로 미국과 일본이라는 거대한 고래 싸움에 낀 새우처럼 죽을 맛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원화는 주로 달러화에 연동되어 있는 구조적인 요인 때문이다. 즉,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 상승 폭이 원화 환율 상승 폭보다 크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기대하는 원 화 환율 상승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는 없고 외채 이자 부담만 늘어난 것이다.
최근 언론에서 당장 큰일날 것처럼 보도한 「외채 1천억달러一환율 상승一국제수지 적자 확대」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는지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당장 나타난 현상간의 인과관계는 무엇인가를 알아야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나온다. 외채는 나쁜 것이고 수출 증대를 위해서는 꼭 환율 조정이 필요한 것인가와 같은 의문은 상식만으로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대외부문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관심사를 차분한 자세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달러화 강세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다음 네가지 요인을 들고 있다. 첫째, 일본이 실시하고 있는 초저금리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일본의 저금리가 오래 지속됨에 따라 막대한 엔화가 미국으로 유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금융기관이 올해 매입한 달러화베이스 외국채 규모는 사상 최고 수준인 3조엔에 달할 전망이다. 셋째는 미국이 최소한 선거가 끝나기 전까지는 달러 강세를 방임할 전망이고, 일본 통화 당국도 엔저를 용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는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엔저가 되면 수출이 늘고 경상수지 흑자가 늘어 엔저가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게 하는데, 최근에는 엔저에도 오히려 경상수지 흑자가 줄어들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8월 중의 무역 흑자는 같은 기간에 비해 29% 가까이 줄었는데, 그 이유는 일본이 수입을 늘리고 내 수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최근 몇달 동안 국제수지 적자 걱정으로 취한 환율정책에 다소 문제 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우리가 굳이 원화 환율을 올리려 하지 않아도 달러화 강세는 추세였기 때문에 차라리 가만히 시장에 맡겨야 했었다. 최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수 출과 환율 동향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환율이 변해도 수출이 그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제수지라는 한쪽 면만 보고 무조건 환율을 조정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한 일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외채가 1천억달러에 육박하고 그 중에서 단기채 비중이 늘어나는데 대해 심각한 우려가 있는데. 이것도 다소 과장되어 전달되고 있다. 물론 OECD 회원국이 되면서 개방한 자본시장과 금융시장 때문에 핫머니로 인한 경제 교란에 대한 위험에 대비해야 하지만, 늘어난 단기 채의 대부분이 우리 기업의 세계화. 즉, 해외 투자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환율 상승과 맞물려 이자 부담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나 기업이 불필요한 환차손을 피해야 한다는 점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이렇게 보면 국제수지 적자 확대와 외채 증가간의 인과관계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팔 상품이 없거나 파는 물건 값이 내려 수출이 줄고, 그 결과 국제수지 적자가 늘고 그 격차를 메우기 위해 외국 자본이 유입되고 그래서 외채가 늘어난다. 여기에 물론 기업의 해외 투자를 위한 자금이 가세하고 있다. 따라서 인과관계의 고리를 끊으려면 우선 경쟁력이 강화되어 수출이 늘어나야 한다. 여기서 문제 해결의 단서를 찾아야 하며. 환율의 무조건적인 조정은 답이 아니다.
따라서 국제수지 적자의 확대나 그 결과로 나타나는 환율의 불안정은 결국 여하히 경쟁력을 회복시키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다만 최근 전사회적으로 강도 높게 추진되고 있는「경쟁력 10% 높이기」의 주된 추진 방향에 문제가 있다. 즉, 이 운동은 생산요소의 비용을 낮추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비용 측면만 강조하다보니, 나무를 보고 숲의 모양을 잊어버리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비용을 낮추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효율을 높여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 버린 것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한 · 일간의 제조업 생산 효율성에 관한 보고서는 이같은 지적의 타당성을 입증하고 있다. 즉, 제조업의 생산 효율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부가가치율(생산액 대비 부가가치)이 1994년 현재 29.1%로. 같은 기간의 일본의 37.3%에 비해 크게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수준은 일본의 1980년 그것과 비슷한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부가가치율을 구성하는 다른 지표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 제조업의 생산 효율성이 일본에 비해 10여년 이상이나 수치상으로 뒤지고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물론 고비용 구조도 중요한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다른 이유로 생산기술이 낮고, 과학적인 생산관리시스템이 부족하고, 자동화 등 합리화 투자가 부족하고, 설비가 노후하다든지 다른 요인도 생각 해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현재 처한 경제 난국의 진정한 원인이 저효율에 의한 경쟁력 취약이라는데 동의한다면. 그것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야 올바른 처방이 나올 것임은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