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 있는 여행
주전골 용소폭포 주변의 화려한 단풍
바야흐로 본격적인 단풍 시즌이 시작되었다. 해마다 단풍철에 들어서면 설악산 단풍의 진행 속도가 거의 날마다 언론 매체에 보도되곤 한다. 사실 이맘때쯤의 주말과 휴일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차량과 인파의 행렬로 인해 적잖은 홍역을 치르는 곳이긴 하지만, 설악산은 역시 우리나라 최고의 단풍 명소이다. 설악산의 여러 골짜기 가운데서도 기암절벽과 맑은 계류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천불동, 가야동, 수렴동, 백담사계곡 등의 단풍이 특히 아름답다.
그러나 이들 계곡은 등산로가 제법 긴데다가 노약자나 아이들에게는 힘에 부치는 코스이기 때문에 온 가족과 함께 단풍나들이를 즐기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더욱이 구름처럼 몰려든 행락객들로 인해 여유 있게 단풍을 감상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같은 설악산권이면서도 비교적 여유 있고 편안하게 단풍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남설악 주전골이다.
주전골은 한계령 중턱의 용소폭포와 오색약수터 사이의 골짜기를 가리키는데, 옛날에 불법으로 엽전을 주조하던 무리들이 숨어살던 골짜기라 해서 주전(鑄錢)골이라는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주전골은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의 남쪽 골짜기이자 점봉산의 북쪽 골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골산(骨山)인 설악산의 섬세한 아름다움과 육산(肉山)인 점봉산의 웅장함을 두루 갖추었다는 평을 듣는다. 게다가 외설악의 천불동이나 내설악의 가야동 못지 않게 단풍 빛깔이 화려하다. 또한 산행 코스의 길이가 짧고 평탄하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단풍 구경을 겸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미천골의 어느 이름 없는 폭포
단풍이 절정에 이른 미천골을 찾은 관광객들
단풍이 곱게 물든 구룡령 고갯길의 가을 풍경
주전골 산행
주전골의 산행은 아래쪽의 오색약수보다도 한계령 고갯길 중간쯤의 도로변에 자리한 용소폭포 매표소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그리 되면 코스의 대부분이 내리막길로만 이어져서 산행이 훨씬 수월해진다. 게다가 매표소 옆에는 승용차 20~30대를 주차시킬 수 있는 간이 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매표소를 지나서 조금만 비탈길을 내려서면 곧바로 주전골의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여기부터서는 잠깐만 걸어도 용소폭포, 십이폭포, 여심폭포, 선녀탕, 망경대, 만물상, 금강문 등의 절경들이 줄지어 나타나기 때문에 잠시도 한눈 팔 겨를이 없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용소폭포 아래에서 십이폭포 쪽으로 들어가는 길을 보지 못하고 곧장 오색약수 쪽으로 내려가 버린다. 그러나 '진짜' 주전골은 바로 이 골짜기다. 이곳의 마지막 비경인 십이폭포까지 오가는 데는 1시간쯤 걸리는데, 그 아름다움을 가슴속에 담지 못한 채 돌아오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십이폭포를 포함한 주전골의 모든 절경을 다 돌아본 뒤에 오색약수로 내려서기까지는 느긋하게 잡아도 2~3시간이면 충분하다. 그처럼 짧은 시간 안에 그토록 현란한 단풍을 구경할 수 있는 길은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주전골의 단풍이 가장 보기 좋은 시기는 대략 10월 10일 ~20일 사이이다.
한계령 고갯길에서 바라본 주전골의 암봉과 울창한 숲
자연림이 울창한 56번 국도
양양 남설악의 주전골을 오가는 길에 적어도 한번은 56번 국도를 이용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가급적이면 주전골 산행을 마치고 나서 귀로에 이 국도를 이용하는 게 좋다. 이 56번 국도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나라에서 자연림이 가장 울창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양양군 서면과 구룡령(1,100m), 그리고 홍천군 내면 일대는 관통한다는 점이다. 숲이 울창하다는 것은 곧 산이 험하고 골짜기가 깊어서 여태껏 순결한 자연미를 간직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백두대간의 험산준봉과 구절양장 같은 구룡령을 넘고, 울울한 활엽수림과 깊숙한 골짜기를 가로지르는 56번 국도를 타고 가는 것만으로도 산높고 골 깊은 강원도 산수의 진면목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다.
양양에서 56번 국도를 타고 홍천 방면으로 가다가 맨 먼저 들러볼 곳은 양양군 서면의 송천마을. 흔히 '떡마을'로 불리는 이곳에서는 손수 떡도 빚고 떡메도 쳐보는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 물론 기계로 만든 떡과 는 확연히 다른 맛의 각종 떡도 맛볼 수 있다. 단, 떡 만드는 작업은 오전 중에 끝나므로 떡메치기를 체험해 보려면 아침 일찍 찾아가는 게 좋다.
떡마을 입구를 지나 10여 분쯤 달리면 양양 제일의 심산유곡인 미천골 초입에 이른다. 이 골짜기는 울창한 숲과 깨끗한 계류가 어우러진 계곡미도 일품이거니와 선림원지, 미천골자연휴양림, 토봉단지, 불바라기 약수 등을 품고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더군다나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은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산책로로 제격이다. 하지만 얼마 전 태풍 루사로 인해 길의 일부 끊기고 무너진 것을 응급 복구한 상태이기 때문에 일반 승용차로는 이 골짜기의 깊숙한 곳까지 진입하기가 어렵다.
56번 국도를 타고 가는 드라이브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양양군과 홍천군의 경계를 이루는 구룡령 구간. 미천골 초입에서 차로 5분쯤만 달리면 구룡령 고갯길이 시작된다. 갈전곡봉(1,204m)과 약수산(1,306m) 사이의 백두대간 주맥(主脈) 위에 자리잡은 구통령은 국도가 지나는 고개로는 가장 높고 험하다. 해발 고도로는 한라산의 1100도로(99번 국도)가 조금 더 높지만, 험하기로는 구룡령에 견줄 바가 못 된다. 이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높고 당찬 설악산의 연봉들이 거침없이 시야에 들어온다. 뿐만 아니라 해마다 10월 중순이면 산자락과 골짜기마다 붉게 물든 단풍이 온통 불바다를 이룬다.
여행 쪽지(지역번호 033)
숙식
주전골 입구인 오색약수에는 오색그린야드호텔(672-8500), 오색온천산장(672- 3636) 등의 숙박 시설과 남설악식당(산채 전문, 672-3159), 오색식당(산채 전문, 672-3180) 등의 음식점이 많다. 오색약수 부근의 44번 국도변에는 오색설악펜션(672-2588)과 한계령오색펜션(672-3700)도 있고, 송천 떡마을 내에는 양양펜션(673-5030)이 있다. 56번 국도변의 미천골 입구에 자리한 산울림펜션(1588-7330) 과 미천골 내의 미천골자연휴양림(673-1806), 불바라기펜션(673-4590)도 권할 만하다. 하지만 단풍철의 주말에는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이용하기 어렵다.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주문진 종점(7번 국도)→양양(44번 국도)→오색약수 입구→용소 폭포 매표소→주전골 산행→오색약수리→논화 삼거리(56번 국도)→송천 떡마을→미천골 입구→구룡령→창촌 삼거리→홍천 신내 삼거 리(44번 국도)→홍천→양평→서울
문의 설악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오색분소(672-2883), 승천 떡마을(673-8977, www. songchu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