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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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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부대는 오랫동안 전쟁영화의 인기 소재였다. 그러나 여기도 세월의 그늘은 있다. 예전의 주인공은 특수부대라기보다는 특공대였고, 영화는 이들의 용기·헌신·희생을 강조했다. 요즘 영화에서는 첨단 장비로 무장한 프로페셔널들이 등장하다 보니 이들의 활약도 거의 SF급이다. 덕분에 액션의 비중이 훨씬 높아졌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인기를 끄는 영화를 보면 액션만으로는 역 부족이고, 역시 그들의 용기와 군인정신, 희생이 우러나는 영화가 감동을 준다.

글. 임용한 충북대 중원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조선시대에도 특수부대가 있었다
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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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역사 이야기


적정을 파악하는 체탐자, 정탐자

이 같은 특수부대원들은 우리 역사에도 존재한다. 역사 속에서 이들의 존재가 처음 등장하는 때는 세종 15년 여진 정벌이었다. 당시 조선의 북방은 국경도 애매하고 고려시대부터 오랫동안 여진족과 고려인이 혼거하여 왔다. 세종은 이 지역을 확실히 우리 땅으로 하고 가능하면 압록강, 두만강 너머로 영토를 확장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우리 역사에서는 참으로 드문 대규모 원정군이 준비되었다. 목표는 정해졌는데, 문제는 적정이었다. 여진족 쪽의 지형 파악도 문제였지만, 여진족은 조선과 같은 수도나 거점 도시가 발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적정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들을 '체탐자' 혹은 '정탐자'라고 불렀다.

이들의 임무는 크게 두 가지로 적의 지형·위치를 파악하는 것과, 적의 침략을 사전에 탐지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보통 두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움직였으나, 나중에는 5~10인이 한 조를 이루기도 했다. 이들은 잠입한 흔적을 남겨서는 안되었으므로 낮에는 산이나 숲에 은신하고 어둠을 틈 타 움직이는 매우 힘들고 위험한 임무를 수행했다. 한창 여진과 충돌이 심할 때는 강변의 기지마다 3명씩 체탐자를 두었다가 나중에는 10인 2조로 구성되었다. 평안도에만 540명의 체탐자가 있었다. 여진의 기습을 사전에 탐지하는 임무도 중요했으므로 이들은 주기적으로 침투했다. 보통 3~5 일 정도씩 잠복했다고 한다.



용맹한 특수부대원 이춘부, 유대수

이들의 활동이 많아지자 여진족도 이들의 존재를 알고 경계를 강화했다. 그리하여 세종 30년 전후해서는 이들의 교전 기록도 잦아진다. 팀이 몰살당하는 경우도 있고, 위치가 드러나 포위를 당하거나 기습을 당했다가 일부만 살아 빠져나오는 사례도 있다. 산지에서 낙오하거나 부상을 당했다가 짐승에게 해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실록에 이름이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대원으로는 애꾸눈 이춘부가 있다. 그 는 여연과 자성에서 활약한 군인인데, 세종 15년에 여진족 일부가 습격해서 그의 집을 불태워 버린 사건이 있었다. 평소 그에게 불만이 많아 그를 노리고 행한 습격이었다고 했다. 테러리스트에게 습격 당해 가족을 잃은 특수부대 용사의 이야기는 요즘도 영화의 단골 소재인데, 그 비슷한 사건 아니었나 모르겠다.

4년 후에 그는 적진에 들어가서 여진족 4~5백명이 조선을 기습하려는 움직임을 탐지해 냈다. 그리고 다음 달에 다시 여진 땅에 들어갔다가 적에게 탐지되어 8명의 부대원이 모조리 사로잡혔으나, 이춘부는 포위를 뚫고 살아 돌아 왔다. 실록은 국정문서라 이 정도 기록밖에 없지만, 실록에 실릴 정도라면 상당히 극적인 활약이었음에 틀림없다.

체탐자들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던 때라면 세종 19년 2차 여진 정벌 때였다. 조선군 사령부의 목표는 타격 목표로 삼을 적의 근거지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당시 조선에서는 유대수란 인물로부터 여진족의 근거지와 동향에 대한 꽤 정확한 첩보를 입수했는데, 이 정보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현장을 찾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압록강 너머로 여러 팀이 파견되었는데, 파견한 팀마다 여진족과 조우하며 전투를 벌여야 했다. 적의 침략을 사전에 탐지하는 통상적인 임무와 달리 적의 근거지를 찾아내는 임무였으므로 적진 깊숙이 침투한데다가 대규모 공격을 앞둔 시점이었던 만큼 이들도 그만큼 위험을 무릅 쓰고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세종 19년 5월에 파견한 팀들은 모두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돌아왔고, 이 때문에 평안도 도절제사로부터 심한 문책을 받았다. 결국 6월에는 더욱 위험하고 대담한 침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이 임무에 선발된 사람들은 체탐자 중에서도 최정예들이었을 것이다.

이 기대에 부응하여 김장(金將), 송세우(宋世雨), 이숙림(李肅林)의 팀들은 각기 제대로 된 성과를 가지고 돌아왔다. 특히 김장 팀은 여진족의 근거지며 요새였던 올라산성(오녀산성 :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첫 근거지로 알려진 곳)까지 잠입하는데 성공했지만, 정탐을 마친 후 적의 추격을 받아 대원 김옥로를 잃는 손실을 입었다.

'이 달 초3일에 이산(理山) 정탐꾼 김장 등 다섯 사람이 파저강을 몰래 건너서, 올라산 북쪽 모퉁이에 있는 오미부(吾彌府)에 곧장 이르러 보니, 물 양쪽 언덕에 큰 들이 모두 개간되어 농민과 소가 들에 흩어져 있었으되 말은 보이지 않았으며, 인가 18호가 물가 언덕에 붙어 있었는데, 산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것은 두루 보지 못하였다 하오나, 이것이 그 대개의 수이었습니다. 김장 등이 이 도적의 소굴을 보고, 도로 한 고개 위에 오르자, 도적 5기(騎)가 밀림 속에서 나와 고함을 치면서 쫓아 쏘기에 할 수 없이 나무에 의지하여 응사하였는데, 김유생(金有生)이 적의 왼쪽 빰을 맞히니, 그 뒤로는 모여 서서 쫓지 아니하므로, 몰래 도망할 즈음에 그 뒤를 돌아보고야 군인 김옥로(金玉老)가 없음을 깨달았으나, 사로잡힌 것은 아니고 반드시 떨어져서 홀로 나오다가 짐승에게 먹혔거나 또는 물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과거와 현재, 영화와 현실 속의 특수부대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언제나 그늘 속에서 활약하며, 그들의 공적과 희생은 잊혀지고, 때로는 버림받기 일쑤라는 사실일 것이다. 15~16세기에 압록강과 두만강변에서 영웅적이며 희생적인 활약을 펼친 이들의 이야기도 잊혀지고 사라졌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SAS나 네이비 씰은 알아도 체탐자는 모른다. 이들의 수고와 희생에 대한 보상도 정말 미미하였다. 이들이 작전에 투입되면 하루를 15일 근무로 쳐주고, 매년 우수자 몇 명을 선발하여 6품 이하의 산관직을 주었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포상이란 이들의 삶을 바꿀만한 큰 포상은 아니었다. 산관직은 수혜자도 적지만, 그런 관직은 받아도 진짜 양반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올라 산 정찰에 나갔다가 사망한 김옥로의 유족에게는 그 집에 부과하던 부세가 면제되고 쌀과 콩 2석이 지급되었다.

5인 가족의 한 달 양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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