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에세이 단골집
필자는 빼빼 마른 사람이다. 성격도 예민한 편이어서 작은 일도 무덤덤하게 잘 넘기지를 못한다. 음식도 남들 보기에 '먹음직스럽게' 먹지를 않을 뿐더러, 누군가가 맛있는 집을 찾아 몇 시간을 달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속으로 비웃기까지 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물론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좋아하는 음식도 생겼고, 자주 다니는 단골 식당도 몇 군데 두고 있다. 가능하면 맛난 음식을 멋진 분위기에서 즐기면서 먹고자 애쓴다. 이렇게 된 데는 좀 거창할지 몰라도 필자의 '음식철학'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음식이라는 것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인데, '먹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할수 없다' 는 생각이 새삼스럽지만 절실하게 든 것이다. 이러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음식에 신경을 부쩍 쓰게 됐는데, 평소에 좋아하는 된장국을 더 맛나게 먹기 위해 저 멀리 강원도에서 된장을 사다 먹을 정도가 됐다. 자연스레 입맛도 변했는데, 생전 먹지 않았던 스파게티의 달면서도 짭짤한 맛도 알게 됐고, 과음한 다음날에는 베트남 쌀국수의 시원한 육수가 아른거리기까지 한다.
올 봄이었던가. 전북 부안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귀경길에 「곰소쉼터」라는 젓갈백반 집에서 맛본 꽃게장은 지금까지도 잊지를 못하고 있다.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 미루나무 그늘로 숨어들었는데, 슬며시 옷깃으로 파고드는 산들바람 같다고나 할까. 서울의 집까지 돌아오는 동안 나도 모르게 입가에 피어난 웃음꽃이 지지를 않았다. 아~ 음식의 힘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들리는 횟수와 관계없이 「곰소쉼터」가 필자의 단골집 리스트에 올랐음은 물론이다.
경상도 봉화 땅에서 태어난 필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생선이라면 그저 간고등어가 유일했다. 생선회 맛을 안 것은 전라남도가 고향인 아내를 만나고서부터다. 처갓집을 방문하면 빠지지 않는 음식이 생선회였던 것이다. 생선회를 즐기게 되면서 서울에서도 단골집이 생겼는데, 서린동의 「신성」과 광화문의 「도원」이 그곳이다.
이외에도 주인아줌마의 깔끔한 손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장충동 앰버서더 호텔 건너편의 한정식집 「전원」, 짜릿하면서도 달콤한 육수 맛이 강점인 서소문의 베트남쌀 국수집 「호따루」 등이 언뜻 떠오른다.
도자기로 유명한 광주요의 조태권 회장은 '좋은 레스토랑은 음식, 술, 그릇, 분위기가 좋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필자는 사람들도 좋아야 한다고 보탠 기억이 난다. 사람들이란 레스토랑의 사장과 종업원은 물론, 자리를 함께한 이들이다. 특히 어색한 사람들끼리 식사하는 자리라면 아무리 음식이 좋아도 즐겁지 않을 것이다. 반면 사랑하는 사람끼리 함께 한다면 허름한 포장마차일지라도 행복하지 않을까.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곳이 야말로 진정한 '단골집'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