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에세이 만남
그 날은 고교 동창회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친구들이 결혼을 한 상태라 대화는 자연히 '아이들 유치원은 어디로 보낼까?' '요즘 남편이 매일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 속상하다.' '우리 시어머니는 이런데, 너희 시어머니는 어떠니?' 등 등 '가정 상담'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결혼을 안 한, 아니 정확히 못한 나는 애꿎은 커피만 연거푸 마시면서 한쪽 구석에서 미소만 짓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나처럼 결혼을 안 한 친구가 한명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창회가 끝나고 '아줌마'들은 모두 집으로 가고 그 친구와 나는 영화를 보았는데, 그 뒤로도 우리는 자주 만났습니다. 솔직히 학창 시절엔 별로 친하지 않았는데, 단지 '솔로'라는 이유가 우리를 친하게 만들었던 거지요.
얼마 후 그 친구가 '올케 언니가 선을 보라고 해서 대구까지 간다.' 하기에, 바람 이나 쐬러 간다는 생각에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선을 본 친구는 그 다음에도 둘만 만나기 어색하다며 나를 끌고 나갔고, 그렇게 우리 셋은 자주 만났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는 2년 전 헤어졌던 남자친구와 다시 만나게 되었으며, 결국 그와 결혼을 했습니다. 믿었던 친구마저 결혼을 해버리고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홀로 외로움을 달래던 어느 날 친구와 선을 본 남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의 일을 위로라도 할 겸 함께 술을 마셨는데, 그는 그 자리에서 뜻밖의 말을 했습니다. '사실 전 처음부터 당신이 맘에 들었어요. 그땐 친구가 있어 차마 내 속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는데, 이제 그 친구가 결혼했으니 마음 편히 이 말을 해도 되겠네요.' 내게 청혼을 해온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했고 두 살배기 아들까지 두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창회 날 그 친구와의 만남, 그 친구가 2년 전 헤어졌던 남자친구를 다시 만난 것, 친구가 선보는데 따라갔다 남편을 만나게 된 일, 이 모두가 하늘이 내려준 '만남'이 아닐까 싶어 웃음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