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에세이 만남
명장면은 영화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하는 순간 한두 가 지씩은 갖고 산다. 오래 남는 기억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성 이전에 감성, 생각 이전에 느낌이 먼저 움직인다. 사람에 관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왠지 모르게 끌렸던 사람,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던 인물이 오래 간다. 꼭 이성이라야 그런 것도 아니다.
대학 수업 첫날 그분을 처음 만났다. 신입생과 교수진과의 상견례 자리였다. 새하얀 은발에 형형한 눈빛,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노교수. 지금은 고인이 되신 지산(智山) 배종호(裵宗鎬) 선생님, 유학(儒學)을 전공한 동양철학자였다. 첫 만남에서 별 이유없이 '저런 선생님 밑에서라면 유학이든 뭐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었다.
4년 뒤 결국 대학원에 갔다. 이미 명예 교수 신분이 된 분이라 자주 뵐 수는 없었지만 1주에 한번 있는 강의를 마치고 선생님을 모시고 찾던 콩국수, 아바이순대, 설렁탕집이 지금도 생각난다.
몇 장면이 더 떠오른다. 선생님이 주례를 보신 어느 결혼식 피로연에서였다. 떡·과일·홍어무침 등 요리와 갈비탕이 나왔다. 갈비탕 한 숟가락을 떠먹으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헛기침을 하시며 나지막히 말씀하셨다. '어 이, 요리부터 먹어. 밥은 맨 나중에 먹는 거여.' 그렇게 솔직하고 소탈한 분이었다.
공군 장교로 복무할 때 주례를 부탁드리러 찾아갔다. 그러나 선생님은 세브란스병원 환자실에 누워계셨다. 암이었다. '내가 자네 주례는 꼭 봐줄게.' 그러나 일어나시지 못했다.
아내가 큰아이를 낳던 밤 학교 선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갈 수가 없었다. 아이를 낳고는 초상집에 가는 게 아니라고 들었던 기억이다. 그리고는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선생님이 없는 학교로 돌아갈 이유가 별로 없었다. 나는 방향을 바꿔 신문기자가 됐다.
기자 3년차 시절 문학을 담당할 때 소설가 이인화씨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가 〈영원한 제국〉이란 소설을 발표했을 때인데, 조선 유학에 대해 상당한 식견이 있는 것 같아 어찌 그리 잘 아느냐고 물었다. 그때 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이인화씨는 '아, 조선 유학이요? 정말 좋은 책이 있어요. 한국유학사라는 책인데요. 배종호 교수님이 쓰신 책이에요.' 내가 그 분의 마지막 제자라는 말을 했는지 못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눈앞이 흐릿해져서 말을 잇기 어려웠다. 자랑스럽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다.
피하려 하지도 않았지만 피할 수도 없는 것이 인연의 끈이다. 언론사 일을 하면서 책도 몇 권 썼는데 조선 유학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조광조, 이율곡을 들먹이며 선비정신에 대해 끄적이기도 했다. 그분이 여전히 내게 남아 있는 모양이다.
내게는 대학 신입생 시절 선생님과의 그 만남이 이후 인생의 방향을 좌우하는 결정적 계기였다. 이제 누군가에게 그런 만남을 당해야 하는 나이가 됐으니 조심스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