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에세이 나의 애창곡
얼마 전 충북 영동 산골짝에 있는 신선고을에 다녀오다가 옥천읍에 들르게 되었다. 메밀묵, 도토리묵 맛으로 유명한 집이 있다기에 늦은 점심도 할 겸 들르게 된 것이다. 도시에선 맛 볼 수 없는 토속적인 묵 맛을 즐기고는 곧 바로 출발 하기도 뭣하고 입춘 무렵의 청명한 햇빛이 좋아 주변을 산책하게 되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보니 우연히 가까운 곳에 시인 정지용 생가가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들러보게 되었다. 나지막한 초가 집 입구에는 그의 대표작 〈향수〉가 새겨진 시비가 서있고, 사립문 앞엔 시 구절에 나오는 맑은 실개천이 졸졸졸 흐르고 있었다. 주인 없는 툇마루에 걸터앉아 햇살을 즐기노라니 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 〈향수〉가 저절로 흥얼거려졌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얼룩배기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향수〉는 내가 즐겨 부르는 노래인데, 그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때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1991년 가을, 세계시인대회에 참석차 한국 시인들과 북유럽 몇 나라를 여행할 때였다. 스웨덴 스톡홀름 한국 식당에서 회식을 하게 되었는데, 그 식당의 한국인 사장과 종업원들은 고국에서 온 동포 시인들을 극진히 대접하며 일찌감치 장사를 걷어치우고 합석을 했다.
술자리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는데, 마침내 차례가 되어 〈향수〉를 불렀다. 솜씨도 별로 없는 노래를 반주도 없이 순전히 한잔 술의 감흥으로 열창을 했던 것 뿐인데, 마침 향수병에 걸려 있던 감성을 자극했던 것인지 한 여종업원이 그만 훌쩍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흐느낌이 어찌나 애절하던지 다른 이들까지 소매 끝으로 눈물을 훔치 더니 나중에는 소리 내어 울기까지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의 사무친 외로움이 우리 일행의 가슴까지 전해져 나중에는 다 같이 얼싸안고 울고 말았다. 노래란 묘한 힘이 있어서 부르는 동안 마음이 통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 후로도 도회의 생활이 팍팍하게 느껴질 때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려지는 노래 〈향수〉. 우연히 내 애창곡의 주인이 살던 집을 찾게 되어, 오래 전 만리타국 여행길에서 스치듯 만나 함께 울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인생살이의 인연에 대하여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