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애독자
강릉우체국장 시절 '강릉8경' 선정
1998년 강릉우체국장으로 부임한 나는 강릉우체국 100주년 개국 기념행사의 하나로 강릉우체국 주관, 강릉시(시장 심기섭)·강릉상공회의소(회장 김진환) 후원, 아시아나항공(지사장 전인성) 협찬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강릉8경의 우편엽서를 제작했다. 당시 강릉시는 강릉8경의 선정을 높이 평가하고, 나에게 강릉시 의회의 의결을 거쳐 명예시민증서(제10호)를 주었다.
강릉8경 선정 이후 매스컴의 좋은 반응이 있자, 강원도 시·군 들이 연이어 춘천비경8선, 속초8경, 인제8경, 동해8경을 선정하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이에 나는 강원 관광에 기여한 공로로 도지사 표창을 받았다.
강릉시는 지난해 6월 11일부터 22일까지 2004 강릉국제관광민 속제를 국내외 70여개 공연단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한 바 있다. 강릉8경 공모 당시 전국의 응모자 8,770여명 가운데 84.9%가 오죽헌과 경포대에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인 강릉 단오제를 강릉8경으로 꼽을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축제가 되었다.
당시 강릉우체국에서 무형 자산인 강릉단오제를 강릉8경으로 선정하자 의외라는 반응과 참신한 아이디어라는 평가가 있었는데, 이렇게 전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으니 나름의 보람이 무척 크다.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등록을 앞두고 있는 강릉단오제는 한국인의 자랑만이 아닌 인류의 자랑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나는 지난해 6월 중순 최종만 강릉우체국장 초청으로 2004 강릉국제관광민속제에 다녀왔다. 전 강릉우체국장 부부 12명이 참석한 이 행사를 계기로 '강릉을 생각하고 주변을 살찌우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강심회」를 결성, 재직시 강릉과 맺은 인연을 아름답게 가꿔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의정부시 왕실 행차의 재현과 의돌이 탄생
의정부우체국장으로 재직할 때는 의정부 3정승을 비롯 6조판서 등 각 대신들이 한양보다 지금의 의정부에서 정무를 논의한 역사적 지명 유래를 감안해 〈조선복식도감〉에 나오는 정승모를 각인한 도자기 그릇을 제작해 각 기관은 물론 우수 고객에게 배포했다. 특히 우편물 수취함에 정승모를 각인하는 반짝 아이디어는 역사 속 충절과 효성의 도시인 의정부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도록 만드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또한 조선시대 정승의 모습을 귀엽고 친근한 어린아이 형상으로 바꿔 의정부시 이미지 캐릭터로 정하기도 했다.
의정부시는 1999년 10월 8일 역사 속 의정부를 재조명하기 위해 태조와 태종의 왕실 행차를 재현했으며, 그 행사는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나의 의정부 사랑은 퇴직 후에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2000년 5월 당시 함께 의정부에서 재직한 임승길 교육장, 권성진 노동부사무소장, 이재욱 소방서장 등 전·현직 기관장과 기업인 등 15명으로 「정승마을 사람들」 모임을 만들었다. 「정승마을 사람들」은 비록 몸은 떠났지만 의정부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말자고 사무실까지 마련, 연말에는 불우이웃을 챙기면서 친목을 돈독히 이어오고 있다.
'송도삼절'과 '정읍3절'을 아십니까
요즘 내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재경정읍시민회(회장 김원기) 부회장단 모임인 「정읍 사람들」 제2기 회장 역할이다.
'송도삼절'에 견줄 만한 정읍3절이 있는 것을 아십니까? 송도에 황진이, 서화담, 박연폭포가 있는 것처럼 정읍에는 갑오동학혁 명의 전봉준 장군, 내장산의 단풍, 백제시대의 유일한 현존 가요 〈정읍사〉가 그것인데, 송도삼절이 부럽지 않은 정읍3절을 자랑하고 다니고 있다.
또한 재경고부면민회장으로서 매년 「고부면민의 날」엔 빠짐없이 출향인사들과 고향을 찾아가 화합의 한마당을 만들고 있다. 특히 재작년 말 고부 출신 탈북 국군포로로 50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온 한재복씨(70세)를 위해 재경 회원 30여명과 함께 파티를 열고 고향 쌀 한 가마를 집에 보내주는 등 고향의 훈훈한 인정을 나누기도 했다.
이제는 좀더 고향을 사랑하고 싶다. 경로당에 냉장고를 기증하고 식량을 자주 보내며, 작년 봄 일산꽃박람회 때는 서울나들이 차량을 제공하기도 했다.
나는 오랫동안 단독주택에서 살다가 재작년 6월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아파트 생활이 처음이라 적응이 쉽지 않았으며, 단절된 공간에 살다보니 이웃간에 대화가 없고 교감이 되지를 않았다. 아파트에서 실시하는 컴퓨터 교육에도 나가보고, 반상회에도 참석하면서 안면을 텄다. 그러면서 슬로건을 만들어 봤다. '우리이웃 가족처럼, 우리단지 내집처럼' 하고 말이다.
나아가 전현직 부녀회장들을 중심으로 우리 아파트단지는 물론 밖까지 주변 환경을 깨끗이 정리정돈 하는 데 나서고 있다. 이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서울 길음동 래미안아파트의 한 주부는 '그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던 풀이 보이게 되고, 저절로 뽑게 된다.'며 '이런 캠페인은 우리 단지뿐만 아니라 다른 아파트촌까지 확산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내기도 했다.
정년퇴임은 끝이 아니다. 현역에서는 물러났지만 지금도 내 주변, 내 고향, 우리 사회에서는 내 작은 정성과 손길을 기다리는 곳이 많다. 정년 후의 즐겁고 보람찬 인생, 나 스스로가 가꾸고 추스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