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지훈아! 넌 엄마가 좋아, 친구가 좋아?' 얼마 전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내 아이는 당연히 엄마를 선택하리란 기대를 한 채 말이다. 그런데 이 녀석, 우물쭈물하면서 대답을 회피하는 게 아닌가. 순간 당황스러움과 서운함이 한 쪽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유치원 다닐 때만 해도 나 없인 못살 것 같던 아들이 이젠 내 품에서 떠나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십대였을 때, 가족보다는 친구와 함께 노는 것이 더 좋았다. 친척들이 모두 모인다고 어디 가지 말라는 말을 들어도 친구와 대학로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이 더 컸다. 그렇다고 대학로에 가서 얼마나 중요한 무언가를 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친구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 했던 시절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그다지 반항적이거나 흔히 말하는 '논다'는 학생이 아니었음에도 그 시절에는 어른들이 무섭지 않았다. 친구는 매일 만날 수 있고, 친척들은 몇 년 만에 오신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친구와의 약속은 미루고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우긴다. 무조건 우기고 이길 자신이 있었다. 산성비를 맞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굳이 우산을 가방에 넣고 비를 흠뻑 맞으며 다니고 그랬다. '출입금지' 라는 푯말이 있으면 어떻게든 들어가 보려고 했고, 하지 말라는 항목이 있으면 어떻게든 해보고 싶었던 그런 시절이 사춘기였던 것 같다.
시누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골목길을 따라 걸어가면 20분이면 갈 학교를 매일 버스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학교와는 반대 방향에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다시 학교까지 걸어가다 보면 40분이나 걸리는데도 말이다. 왜 굳이 버스를 타고 다녔느냐고 물었더니, 버스를 타면 멀리서부터 차례차례 그 버스를 타고 오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학교에 가는 버스를 기다린 게 아니라 친구가 탄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학교 가는 시간이 1시간 넘게 걸려 지각도 자주 했다는 것이다. 아니 어느 날엔 일부러 지각을 하기도 했는데, 교문을 지키는 총각 선생님 눈에 띄고 싶었단다.
이처럼 친구들과 어울리며 어른들을 무서워하지 않던 그 시절이 생각나면 살며시 웃음이 나오곤 한다. 내 모습이 잠시라도 안 보이면 금방 자지러지던 아들 녀석이 이제는 초등학생이 되었다고 '나도 혼자 할 수 있어. 나도 알아! 엄마는 꼭 그래!' 하면서 내 옆을 지나간다. 유치원을 졸업했으니 자기도 이제 어른이라는 식의 내 아이도 양파껍질을 한 꺼풀씩 벗어가며 사춘기를 맞을 테지. 이젠 아들을 위해 사춘기를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설마 지금 컴퓨터 게임을 못하게 한다고, 내 옆을 쌩하고 지나간 저 모습이 벌써 전쟁의 선포는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