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어디까지 해봤니?
거짓말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무엇이 나을까? 당연히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고단한 직장 생활은 직장인이 마냥 솔직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안타깝고도 슬픈 직장인의 거짓말,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살기 위해 하는 웃픈 거짓말
상사나 선배가 업무를 열심히 설명하는데,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거 질문할 분위기가 아니다. 이럴 때, 당신이 하는 말 혹은 행동은 무엇인가? 벼룩시장 구인구직은 최근 20~60대 직장인 448명을 대상으로 ‘직장인의 새빨간 거짓말’을 주제로 조사했다. 그 결과 직장인이 상사에게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무조건 대답하는 ‘네, 알겠습니다(33%)’였다. 업무 파악이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행위도 거짓말에 포함된다. 상사에게 하는 거짓말 2순위는 ‘집에 일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로 25.9%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지각할 때 심심찮게 써먹는 ‘몸이 안 좋아서 늦었습니다’가 16.1%, 업무 독촉을 받았을 때, ‘거의 다 됐습니다’가 10.7%, 영혼 없는 찬사인 ‘아, 역시 훌륭하십니다’가 8.9%를 기록했다. 회식 자리에서 써먹는 ‘저 술 약해요’도 5.4%로 직장인이 잘 하는 거짓말로 꼽혔다. 조사 결과를 보면, 많은 직장인은 생존형 거짓말을 주로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점잖은 거짓말로 애써 자신의 상태를 포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두가 살아남기 위한 몸짓이라는 사실.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면, ‘집에 빨리 보내줘!’ 라든가, ‘피곤해서 늦잠 좀 잤다고!’, ‘시간을 그렇게 주고 독촉하냐’, ‘아 술 좀 그만 줘!’ 등의 솔직 발랄한 커뮤니케이션이 난무할 것이다. 물론 후탈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겠지만.
상사도 거짓말을 한다
같은 설문조사에서는 ‘직장 상사가 부하직원들에게 많이 하는 거짓말’도 소개됐다. 직장상사는 부하 직원에게 주로 허세형 거짓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업무 지시를 하면서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 일, 1시간이면 다하잖아’가 29.7%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얼른 끝내고 퇴근해’가 25.7%, ‘나중에 연봉 많이 올려줄게’가 13.4%, ‘오늘은 간단하게 1차만 하고 끝내자’가 12.5%였다. 즉, 많은 상사들은 자신의 능력을 후배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경력을 과시하거나 후배를 갈구는 데 주로 거짓말을 활용하고 있는 것. 또한 후배의 능력과 충성을 끌어내기 위한 조삼모사형 거짓말도 즐겨 쓰고 있었다. 허나, 조금만 지나면 들통이 나고 마니, 이 거짓말들 또한 애달픈 거짓말이 아닐 수 없다.
거짓말, 꼭 나쁜 걸까?
거짓말을 않고 살기란 쉽지 않다. 특히 직장인이라면 종종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는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직장인들이 거짓말과 꽤 친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 직장인 거짓말 횟수, 하루 평균 2회
취업포털 커리어는 직장인 1,028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에서 거짓말을 해본 적이 있는가’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71.6%가 ‘있다’고 답했으며, 직장 내에서 하는 거짓말 횟수는 ‘1~2번’이 88.6%로 가장 많았고, ‘3~5번’은 9.3%, ‘11번 이상’ 1.3%, ‘6~10번’은 0.8%였다. 거짓말을 했던 이유로는 60.3%가 ‘원만한 대화 진행을 위해서’를 꼽았다. 이어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51.9%), 이미지 관리를 위해(22.4%),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13.5%),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9.1%) 순으로 조사됐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란 질문에는 ‘선의의 거짓말이나 가벼운 거짓말 정도는 괜찮다’가 74.1%로 가장 많았고, ‘직장생활에 있어 거짓말은 필요하다’는 19.6%, ‘어떤 거짓말이든 절대 안 된다’는 6.3%였다.
2 악의 없는 거짓말은 직장생활의 필요악
이 같은 내용은 잡코리아가 직장인 517명을 대상으로 한 ‘직장 내 흔한 거짓말’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난다. 설문에 참여한 남녀 직장인들에게 ‘악의 없는 거짓말’이 직장생활 및 인간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지 질문한 결과, 94.8%가 ‘그렇다’고 답한 것. ‘악의 없는 거짓말’을 자주 하는 대상에 대해 먼저 알아본 결과, 남녀 모두 ‘직장 상사(30.8%)’에게 그런 거짓말을 자주한다고 답했다.
다음으로 남성들은 ‘연인 및 배우자(22.4%)’에게, 여성들은 ‘부모님(22%)’에게 악의 없는 거짓말을 종종 한다고 답했고, 이 외에도 직장 동료(19.5%), 친구(8.5%), 거래처 직원(4.3%) 등에게 이러한 거짓말을 한다는 의견이 뒤를 이었다. 자주 사용하는 거짓말의 종류로는 남성의 경우 ‘언제 밥 한번 살게’가 응답률 34.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반면 여성들은 ‘오늘 너무 예쁘다 또는 멋지다(45.7%)’란 말을 흔히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뿐만 아니라 남녀 직장인들은 ‘역시 우리 회사는 ◦◦없으면 안 돌아간다(25.1%)’, ‘다 ◦◦씨 덕분이죠(24.2%)’, ‘부장님 정말 존경합니다(13.3%)’, ‘동안이시네요, 어려보이세요(17%)’ 등의 거짓말을 흔히 한다고 답했다. 직장 내에서 ‘악의 없는 거짓말’이 필요한 순간으로는 단연 ‘회식자리(45.5%)’가 꼽혔다. 이어 ‘평상시 틈틈이 할 필요가 있다(43.3%)’가 뒤를 이었다. 이 외에도 연봉협상 및 인사고과 시즌(23%), 지각했을 때(21.9%) 등의 순간에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또한 설문에 참여한 직장인 10명 중 7명(76.2%)은 ‘정직해도 너무 정직한 직장동료로 인해 힘든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쯤 되면 거짓말은 그 의미대로 ‘거짓된 말’이 아니라 직장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 ‘효과음’으로 등극됐다고 봐야할 것이다.
3 소박한 바람이 만든 직장인의 거짓말
다른 거짓말들과 비교해 볼 때 직장인의 거짓말이 재밌는 사실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또 듣는 사람도 서로 거짓말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상대방을 속이고자 작정하고 하는 사기꾼의 거짓말과는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그저 ‘순탄한 직장생활’을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것은 상사도 부하도 마찬가지다. 단지 일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작은 열정, 집에 좀 더 일찍 가고자 하는 소박한 바람, 선배 혹은 후배가 날 조금만 더 인정해줬으면 하는 희망사항 등이 그 같은 거짓말들을 만들고 있다. 그렇기에 직장인의 거짓말은 다소 귀엽기도 하다. 이 귀여운 거짓말들은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능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4 거짓말을 잘 하는 것도 능력
독일 최고의 긍정심리학자이자 100만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짓말의 힘>을 펴낸 우테 에어하르트는 “진실만이 정답은 아니다. 회사에서 성공적인 커리어와 인간관계를 만들고 싶은 직장인이라면 이제는 거짓말이 주는 불편한 감정에서 벗어나 거짓말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비즈니스 분야에서 성공한 이들은 유머와 찬사를 적절히 조화해 상대방과의 적극적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낸다. 기발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거짓말로 보느냐, 매끄러운 윤활유로 보느냐는 보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상대의 거짓말이 눈에 훤히 보일 때, 이를 대놓고 면박을 주느냐 아니면 ‘좀 더 창의적으로 거짓말 좀 해봐’라고 웃으며 넘기느냐에 따라 직장생활의 분위기도 달라질 수 있다. 직장 내에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받아들이는 사람도 좀 더 유연해진다면 서로 보다 즐거운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거짓말이 먹히게 하려면 평상시 진실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매일 밥 먹듯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양치기 소년처럼 신뢰도 제로의 허울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동료에게 신뢰를 못 받고 상사에게 존중받지 못하면, 직장생활은 괴로워질 수밖에 없다. 고로, 우리는 어쩌다 하는 거짓말로 최대의 효과를 보기 위해, 매일의 일상 속에서 최고로 정직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직장인의 거짓말이 전하는 유쾌한 아이러니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