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훈한 의미 vs 잔인한 지출
경조사비의 잔혹한 이미지와는 달리 그 의미는 훈훈하다. 경조사비의 유래는 잔칫집 혹은 사업하는
집에 돈이나 물건, 일손을 보태주던 데에서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이의 정을 확인하는 용도인 점은 같지만, 현재는 오직 ‘돈’으로 굳어졌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랄까. 이렇게 아름다운 의미의 경조사비에 직장인들이 한 해 소비하는 금액은 얼마일까.
1 경조사비 지출, 한 해 평균 144만원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9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 금액은 자그마치 한 해 평균 144만원. 또한 직장인들은 한 달에 두 번씩 경조사에 참석하고 1회당 평균 6만원씩 지출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취업포털 커리어의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직장인 6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경조사 비용으로 지출하는 금액은 ‘5만원 이상 10만원 미만’이 68.2%로 가장 많았다.
‘3만원 이상 5만원 미만’을 낸다는 응답자는 24.1%로 그 뒤를 이었다. ‘10만원 이상’은 1%에 불과했다. ‘다른 동료들과 조금씩 모아서 낸다’는 응답자는 5.2%였다. 한 달 기준으로 경조사 참석 횟수에는 응답자의 61.5%가 ‘1~2회 정도 참석한다’고 답했다. ‘3~4회 정도 참석’은 3.5%, ‘4회 이상’은 2%의 응답률을 보였다. ‘경조사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대답도 있었는데 18.5%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참석은 하지 않지만 경조사금으로 대신한다’는 답도 14.5%가 나왔다.
2 꼭 반갑지만은 않은 남의 결혼식
경조사비로 가장 많이 지출되는 행사는 단연 결혼식. 같은 기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결혼식’은 44.8%(복수응답)로 경조사비의 최대 수혜주이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5월, 10월이 되면 어깨를 움츠리기 마련. 나들이 비용으로 월급의 상당 금액이 나가는 현실인데, 여기에 지인과 선후배의 결혼식까지 줄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혼식 다음으로 경조사비가 많이 나가는 행사는 장례식으로 31.5%를 차지했다. ‘돌잔치’도 19.8%로 무시할 수 없는 수치를 기록했다. 바쁜 시간 쪼개, 없는 돈 쪼개 애써 경조사에 참여해도 결과는 씁쓸하다. 반드시 기브 앤 테이크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경조사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경조사에 참석했던 동료가 자신 경조사에도 참석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몇 명만 오는 편’이라는 가슴 아픈 답이 45.2%로 가장 많았다. ‘거의 모두가 오는 편’이라는 응답자는 36.4%였다. 이어 ‘오지 않는 편(9.7%)’, ‘아직 내 경조사가 없어서 잘 모르겠다(8.7%)’ 등의 쓸쓸한 답이 뒤따랐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기쁜 마음으로 가야할 경조사와 기꺼운 마음으로 내야 할 경조사비는 직장인에게 다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많은 직장인이 이미지 관리에 신경을 쓰느라 이런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감히 입 밖으로 표현하지는 못하고 있다. 겉으론 웃으며 경조사비를 선뜻 내놓는 듯이 보여도 마음속으로는 감정의 바이브레이션이 격하게 울려대고 있는 것이 직장인의 현실이다.
1 88.6% 경조사비 부담스러워
그렇다면 직장인들은 경조사비에 대해 얼마만큼의 부담을 느끼고 있을까.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이지서베이가 직장인 58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조사비 지출에 대해 27.5%가 ‘많이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61.1%는 ‘약간 부담스럽다’고 답해 전체 응답자 가운데 88.6%가 경조사비에 부담을 갖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경조사비를 내는 이유에 대해 45.1%가 ‘순수하게 축하하거나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상대와의 관계 때문에 억지로 낸다’는 답은 33.8%로 2위였고
‘언젠가 받으려면 내야 한다’는 응답자도 16.6%에 달했다.
2 대체 얼마를 내야 할까
이쯤 되면 경조사비는 진심보다는 형식적인 목적으로 변질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직장인 중 상당수는 경조사의 참여 여부와 금액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정답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은 이 사안은 직장인 스스로의 기준이 정립되어야 비로소 해결될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KBS의 개그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애정남은 다음과 같은 처방전을 일러주기도 했다. 경조사를 성수기와 비성수기로 나눠 성수기인 4, 5, 9, 10월에는 3만원씩, 비성수기에는 5만원을 내는 것이 적당하다는 것. 애매하게 친한 친구일 경우, 친구의 부모님이 내 이름을 모르면 5만원, 안다면 10만원을 내면 된다는 처방이다. 물론 이 또한 완벽한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약간의 위로가 된다는 건, 그 만큼 경조사비가 직장인의 머리를 아프게 하기 때문이리라.
3 경조사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
경조사비가 부담이 된다는 진리만큼, 경조사를 피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진리다.
프로 직장인이라면 이 점에 유념을 두고 경조사를 대해야 할 것이다. ‘슈퍼 갑이나 중요한 거래처 담당자의 경조사는 반드시 참석한다’, ‘카톡으로 경조사를 알리는 사람은 카톡으로 답변하고 끝낸다’, ‘결혼식과 장례식이 겹칠 때에는 장례식에 참석한다’는 식으로 나름의 기준을 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4 소탐대실 NO, 군자대로 OK
경조사비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보자. 휴대폰 어플리케이션 중 경조사비를 관리해주는 어플을 이용해도 좋다. 엑셀 파일을 이용해 인맥 관리와 경조사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추천할 만한 방법이다.
이렇게 관리를 해놓으면 상대방에게 실수를 할 확률도 줄일 수 있다. 경조사비의 본래의 취지를 살리는 훈훈한 방법도 있다. 경조사비는 반드시 금액으로 승부해야만 정답이 아니다. 돈을 넣은 봉투 안에 정성스럽게 작성한 손 편지를 동봉한다든가,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할 때에는 작은 선물을 따로 챙겨주는 것도 센스 있는 자세다. 자신의 경조사에 참석해준 사람의 고마움을 잊고 경조사 초대 문자를 무시한다거나, 경조사비를 챙긴 후, 퇴사와 동시에 잠적하는 파렴치한 행위는 인간관계의 맥을 끊는 중대한 과실이다. 돈 몇 푼 더 챙기려다가 인간성까지 의심받지 않도록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자세를 피하고, 본전 생각은 과감히 접는 군자대로(君子大路)의 미덕이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