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딴짓, 안 하는 직원 찾기가 더 어려워
잡코리아의 ‘좋은일연구소’가 전국의 직장인 남녀 6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설문참가자의 97.1%에 해당하는 593명이 업무 중 딴짓을 한다고 답변했다. 응답자 중 불과 2.9%인 18명만이 딴짓을 전혀 하지 않고 업무에만 매진한다는 셈인데, 과연 일상에서 2.9%에 해당하는 천연기념물 직장인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직급별 설문 결과 과차장급이 하루 평균 1시간 2분, 대리급 1시간 1분, 사원·주임급 57분, 부장급 55분 동안 딴짓을 한다는 설문결과다. 아무래도 층층시하에서 눈치 볼 일이 많은 일반사원에 비해 대리나 과장, 차장급이 눈치도 덜 보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개인 시간도 많아진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딴짓의 최고봉, 메신저
직장인 딴짓의 우선순위는 메신저(39.6%, 복수응답 가능)와 스마트폰(39.0%)이 근소한 차를 보이며 1, 2위를 이루고 있다. 적막한 사무실에 다다다다, 키보드 소리만 울려 퍼지는 순간이 있다. 컴맹 상사는 ‘열심히 일들을 하고 있군’이라고 안심을 하겠지만 눈치 빠른 상사는 곧바로 암행에 나선다. 직장인이 불꽃 같은 속도로 타이핑에 열중하는 이유란 기획안 제출시안이 임박했거나, 친구들과의 메신저에 빠져버린 순간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이어 월을 통해 프로그램 설치와 인터넷 접속을 통제할
수 있는 일부 대기업들은 메신저 사용을 원천봉쇄해놓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클라이언트가 메신저를 쓰는 등 업무상 메신저가 꼭 필요한 경우, 일일이 직원들의 컴퓨터를 체크할 여력이 없는 곳,
혹은 그렇게까지 사원들을 통제하는 것에 회의를 품고 있는 자율성 강한 회사들은 메신저 사용을 눈감아주곤 한다.
간단·편리한 전천후 딴짓의 동반자, 스마트폰
메신저 사용은 회사에서 통제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은 제아무리 엄한 회사, 무서운 상사일지라도 통제할 수 없다. 어느 대기업 부장님이 경험했다는 사무실 이야기 중 하나다. 자기 자리에서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을 쭉, 둘러보다 보면 이상한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고. 직원의 시선이 모니터도, 전화도, 책상 위 서랍도 아닌 애매한 각도에 꽂혀있는 것을 발견하고 뭔가 수상쩍은 느낌이 들어 가까이 다가가면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모니터를 보면서 업무에 집중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잘못 봤나, 하며 멋쩍어 자리로 돌아가 보면 직원은 다시 아까의 그 애매한 각도로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고.
그런 일을 몇 번을 겪고 난 다음에서야 그 애매한 각도의 시선 끝에 스마트폰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어 그다음부터는 꼭 필요한 전화통화 외엔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도록 당부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마도 그 부장님의 당부는 지켜지지 않았을 것이다. 업무시간에 스마트폰을 포기하는 일은 실현 불가능한 미션 임파서블의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사실 스마트폰 안에는 직장인의 딴짓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 친구들과의 수다를 위한 메신저, 초단위로 달라지는 정보를 전달하는 SNS, 모바일쇼핑, 주식, 항공, 호텔 등 여행을 위한 각종 예약, 사적인 메일 확인, 은행 업무 등 회사 PC로는 하기 어려운 온갖 딴짓들이 스마트폰에서는 가능해진다.
뉴스검색, 인터넷 쇼핑은 업무 딴짓 중에 해야 제맛!
그 뒤를 이은 3위의 딴짓은 뉴스검색(33.7%)이 차지하고 있다.
뉴스검색의 장점은 일부러 다가와서 모니터를 체크하지 않는 한 일을 하고 있는지, 딴짓을 하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려우며 만약 걸리더라도 ‘트렌드 조사’, ‘신문 보는 중’이라고 둘러대면 큰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뤄지는 뉴스검색의 대부분은 시간 때우기 식의 뉴스 열람으로, 뉴스검색에서 시작해 결국엔 온갖 핫한 키워드들에 대한 폭풍 검색으로까지 이어져 인터넷 속 가십 수집으로 끝을 낸다는 점이다. 뉴스검색 못지않은 인기 딴짓 항목에는 인터넷 쇼핑이 있다. 사실 인터넷 쇼핑에 열광하는 쇼퍼들은 ‘사무실이야말로 인터넷 쇼핑을 하기 최적의 장소!’라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하고 있다. 사무실에서 인터넷 쇼핑을 즐기는 쇼퍼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한 가지 품목에 대해 오랫동안 비교, 연구한 후 신중하게 구입하는 꼼꼼함을 찾아볼 수 있다. 구입을 원하는 물품에 대해 신중하게 서핑을 해서 모델을 고르고, 여러 쇼핑몰을 둘러보면서 가격비교를 하고 쿠폰이나 적립금을 모아 보다 저렴하게 최종구매를 하는 알뜰, 신중파 쇼퍼들이 대부분이다. 이 같은 쇼핑이 가능한 것은 바로 사무실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기인한 탓이 크다. 인터넷 쇼핑몰 창을 업무용 창 사이에 띄워놓고 업무 딴짓 중 틈틈이 기회가 될 때마다 인터넷 쇼핑몰을 클릭해 둘러보다가, 상사의 업무지시나 주위에서
눈치가 들어오면 다시 일을 하고, 딴짓이 되면 다시 쇼핑몰 창을 둘러보는 식으로 몇 날, 며칠에 걸쳐 쇼핑을 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충분히 알아보고 고민하면서 쇼핑을 할 수 있게 된다.
야금야금 딴짓, 연간 44조원의 경제가치
하루 일과 중 딴짓에 쓰는 시간이 만만치 않은 만큼 직장인의 딴짓에 너그러울 수만은 없을 듯하다. 딴짓으로 날아가는 경제적인 손실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업체인 언스트앤영 한영은 한국갤럽에 의뢰해 직장인 3,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하루 정규 업무시간 9시간(점심시간 포함) 중 22.4%에 달하는 1시간 54분이 딴짓에 소요되고 있다고 한다. 매일 평균 1시간 54분이 동료와의 잡담, 메신저, 인터넷 검색 등 개인 활동에 소요되고 있다니, 사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하루 임금의 20% 이상이 딴짓으로 날아가는 셈이 된다. 설문조사는 이처럼 하릴없이 버려지는 시간을 모아 생산적인 일에 투자하면 GDP(2012년 기준)의 3.5%에 이르는 연 44조원의 경제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결론도 친절하게 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직장인의 딴짓은 생산성을 갉아먹는 비생산적인 시간낭비일 뿐일까? 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것이다. 언스트앤영 한영의 설문조사를 보면 직장인은 하루 일과의 약 38%에 달하는 2시간 30분 동안 불분명한 지시에 따른 중복작업, 불필요한 회의 등 비효율적인 업무에 종사한다고 한다.
이는 딴짓에 쏟는 시간보다 월등히 많은 시간이다. 이를 통계청이 발표한 ‘2011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포함된 5인 이상 사업장의 근로자 수와 직장인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83조의
경제적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으로 나온다. 딴짓으로 사라지는 금액의 배에 가까운 수치다. 직장인에게 근무시간은 엄연한 약속이다. 정해진 시간만큼 일을 하지 않고 많은 시간을 딴짓에 쓰는 것은 분명 비난을 받아 마땅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올바른 고용주라면 직장인이 왜 딴짓에 많은 시간을 쏟는지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할 것이다.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부적절한 업무 환경, 불합리한 업무 지시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삭히고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직장인 나름의 활로모색이 딴짓이라는 일탈행동으로 표출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