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친한 사람’은 엄연히 다른 말이란 생각을 해본다. 친구는 친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긴 하지만, 친한 사람이 곧 친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교(私交)’나 ‘신의(信義)’는 친구보다는 오히려 친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 필요한 단어일지 모른다. 친구는 물론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 ‘동료’나 ‘동지’와도 다르다.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귀는 사람’이란 사전적 정의도 친구를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
친구는 우리로 하여금 우정이라는 특별한 여행을 경험하게 만드는 존재다. 이 여행이 특별한 이유는
연인과의 사랑처럼 뜨거운 열정이 가득해서가 아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처럼 근원적이고 운명적이어서도 아니다. 친구와 함께 우리는 우정이라는 긴 여행길에 오른다. 이 여행이 어디에 가 닿을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우정이라는 여행이 흥미진진한 모험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정이란 여행은 이를테면 이런 것들을 경험하는 것이다. 낯선 도시의 미로 같은 골목길을 헤매다 마주친 작은 이정표, 여행자의 고단한 몸을 편안히 받아주는 허름한 숙소의 따뜻한 침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이방인의 미소와 친절, 갈증을 달래주는 시원한 물 한 잔, 이색적인 풍경에 한껏 고무되는
감성, 외면할 수 없이 들려오는 내면의 목소리, 예상치 못한 행운, 우연히 발견한 아름다움. 물론 여행에 그런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만난 소나기, 지루한 기다림이나 자잘한 낭패, 피로와 향수.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추억이 되는 여행, 그것이 우정이다. 우정의 여행은 어두운 결핍이나 간절한 바람 같은 것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결핍으로 인해 상처받고 바람으로 인해 불안할 때, 우정은 우리를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 편안한 벤치로 이끈다. 우정이라는 여행이 삶이라는 여행에 지친 우리를 조용히 달랜다. 인간에게 연인과 가족 외에도 친구가 존재한다는 것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