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고3 담임을 할 때였다. 반 아이가 조용히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말인즉, 이과수업을
받고 있는데 이과가 자기 적성에 맞는지도 모르겠고 또 대학은 어떤 과를 선택해야 할지 도무지 방향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성적도 좋고 학교생활이나 친구들 관계도 모범적으로 해왔던 터라 그런 고민을 깊게 하고 있었는지 그동안 눈치를 채지 못했었다. 이제라도 고민을 내게 이야기해 준 것이 고마웠다. 아이는 자신이 진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다고 했다. 수능이 코앞이었지만 함께 고민하고 찾아주고 싶었다.
이후로도 몇 번의 진로상담이 있었다. 다행히 오래 방황하지 않고 제자리를 찾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일단은 학교수업을 더 충실하게 받겠다고 했다. 아이는 이후 광고홍보학과로 진학을 했다.
광고홍보학과 진학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다. 성적이 좋았기에 부모님은 의대나
법대를 생각하셨다. 교사로서도 반 아이가 소위 말하는 일류대학의 의대나 법대에 진학시키는 것은
큰 자부심이다. 그럼에도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꺼이 아이와 함께 부모님을
설득했다. 결국 부모님이 아이 뜻을 따라 주셨다.
부모가 혹은 교사가 ‘이 방향으로 가, 너는 이 방향이 맞아’라고 해서 따라가는 것과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해서 가는 길에는 큰 차이가 있다.
더 적극적이고 더 열심이고 그러다 보면 더 잘하고 더 즐길 수 있게 된다. 적어도 자기 일을 즐기는
사회인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기대가 있었다. 학교에 있다 보면 진학문제로 부모와 교사, 교사와 학생,
학생과 부모가 종종 갈등을 겪는 과정을 보게 된다.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 이해가 되고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를 살게 될 학생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혹은 교사가 원하는 대학, 과에 입학을 해서 허송세월을 보내는 학생들도 많다.
따라는 왔는데 흥미도 없고 그러다 보니 하기도 싫은 것이다. 실패를 거듭하다 현실과 타협해 적당한
직업을 선택하는 학생들도 많다. 될 수 있다면 그런 학생들이 적길 바랄 뿐이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하며 사회인으로 성장하는데 괜찮은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다. 예전처럼 교사의 권위가 높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교사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은 아니다. 삶의 방향을, 삶의 깊이를 잡아주고 가르치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