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이랑 놀다가 저녁 먹을 때쯤 들어선 내게, “너는 시험이라면서 공부는 안 하고 허구한 날 놀러만 다녀?”하는 엄마 말씀에, 뭐라 대꾸를 하기도 전에 “내버려둬, 지 일 지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아버지 말씀에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그런데 이런 내게 엄마가, “반에서 10등 안에만 들면 네가 사 달라고 하는 운동화 사 줄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에 귀가 솔깃했다. 당시에 한창 유행하던 나이키 운동화가 있었다. 남들 다 신고 다니는 그 운동화 하나만 가지면 소원이 없겠는데 엄청 비싼 그 운동화를 사 줄 형편이 안 되는 엄마는 평소 들은 척도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그걸 사 준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엄마한테 몇 번의 확인을 받고서야 안심하고 죽도록, 코피가 나도록 보름동안 공부했다. 그리고 성적표를 받아든 순간, 내 성적이 7등이라는 사실보다는 그토록 갖고 싶었던 운동화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서 미칠 지경이었다. 나이키 운동화를 품 안에 그리면서 부모님께 성적표를 내밀었더니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 것 아닌가. 너무 놀라셔서 그러시나? 혹 내가 성적표를 조작했다고 생각하시나?
“아니, 나는 네가 진짜로 이런 성적을 받을 줄 몰랐다. 네가 하도 놀기만 하고 밖으로 쏘다니니까, 그러면 안 된다 싶어서 집에 잡아두려고 그런 것인데… 정말로 네가 공부해서 받은 성적이야?”라며 몇 번이고 의심을 하며 성적표를 확인하는 엄마.
하긴 애초에 믿은 내가 잘못이었다. 매번 등록금도 밀리고 밀려서 이웃집에 꿔야 하는 판인데 그 비싼 운동화를 내 주제에 무슨…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락방에 올라가 잤다. 얼마나 잤을까? 무어라 소곤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엄마가 이웃집 할머니한테 내 자랑을 하시면서 돈을 꾸는 소리였다. 엄마와 아빠가 내가 시험 잘 본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속으로는 무척이나 기쁘셨지만 그 비싼 운동화 때문에 내색을 하지 못하셨다는 것을 알았고, 그 때문에 마음 아파 하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비록 엄마나 나나 애초의 의도와는 달랐지만 그 사건 이후 내 태도도 많이 달라져서 성적이 나날이 올라 상위권을 유지했으니, 성적표를 받아온 날이면 이를 어떻게 해서든지 이웃들에게 티내지 못해 안달을 하셨다. 그리고 어렵게 마련한 돈을 들고 엄마랑 운동화 사러 갔을 때, “아휴 우리 애가, 이번에 시험을 잘 보면 이 운동화를 사 준다고 했더니 떡하니 7등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사주네요.” 하며 어찌나 자랑을 하시는지 민망해 죽을 지경이었지만, 엄마는 상관이 없는 듯했다. 그러고 보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모가 자식의 성적표에 대해 갖는 관심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나 또한 아들의 성적표를 들고 울었다 웃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