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가끔 등산을 한다. 높은 산을 땀 흘려 올라가는 것도 좋아하지만. 어린 아름다운 경치이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모습들이 귀엽게도 보이고 때로는 안타깝게도 보인다. 그런데 낮게 돌린 머리를 들어 멀리 바라보면 끝없는 산들이 겹겹이 파랗게 쌓여 있는 것들을 볼 수 있다.
궁금한 것은 과연 무엇이 저렇게 높은 산들을 줄줄이 만들었을까 하는 사실이다. 격렬한 화산의 분출일까. 아니면 조물주의 역작일까? 과거라면 이런 엄청난 힘의결과는 신의 작품이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의 느낌마저도 화학물질의 작용 결과라고 밝히지 않으면 성이 풀리지 않는 현대 과학은, 이런 엄청난 조산운동을 지각을 형성하는 板들의 운동 결과(판 구조론)라고 간단히 설 명해 버린다. 경영 혁신을 설명하면서 웬 갑작스러운 자연과학 이야기냐고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잠깐 더 들어보기로 하자
'판 구조론’ 이란 지구상의 造山운동, 지진, 화산활동 등의 지구 껍데기를 형성하는 판들이 서로 이동하면서 생기는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육지와 바다 밑바닥, 즉, 지구 껍질(지각)은 약 17개의 넓은 땅의 판으로 나뉘어 있고, 이 판들은 돌이 녹은 물인용암 위에 두둥실 떠있다는 것이다.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용암은 푸른 강물이고, 땅의 껍질은 물 위에 떠 있는 뗏목과 같은 것이다. 물이 흐를 때 그 위에 떠있는 뗏목이 움직이듯이, 용암이 움직일 때 그 위에 떠있는 땅의 껍질은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이때 땅의 껍질은 서로 밀기도 하고 당기기도 한다. 서로 당겨서 두 판이 부딪히면 그 부딪히는 면이 위로 서서히 올라가게 되고, 그 올라간 면이 산맥이 된다. 서로 밀게 되면(멀어지면) 그 사이가 점점 꺼지게 되고, 그 꺼진 면이 곧 바다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판들이 서로 밀고 당기는 속도가 1년에 약 2.5cm 정도밖에 안된다는 사실이다. 그 높고 높은 산맥들이 바로 이런 조그만 운동의 집적된 결과이고, 그 넓고 넓은 바다도 바로 이런 운동의 집적이라고 생각할 때, 이 조그만 운동의 지속적인 결과가 얼마나 큰 것인지 그저 놀랄 뿐이다.
개선이란 바로 매년 2.5cm를 움직이는 판의 운동과 같은 것이다.
지속적인 개선의 결과는 태산보다 높아
개선이란 그렇게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커다란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속된 개선의 집적된 결과는 태산 보다도 높고 바다보다도 클 수 있다. 많은 경영 혁신 아이디어들이 급작스런 변화와 커다란 결과를 주장하고 있다. 리스트럭처링(구조조정)이 그렇고 리엔지니어링도 그렇다. 그러나 경영 혁신을 진정으로 완성시키는 것은 눈에 크게 띄지는 않지만, 조금씩 꾸준히 변화해 나가는 개선인 것이다. 백두산, 한라산은 엄청나게 높고 큰 산이지만 백두대간 전체의 크기에 비하면 극히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己 히말라야의 높은 봉우리들에 비하면 그 3분의 1의 높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백두산 없는 백두대간을 생각할 수 없고 한라산 없는 제주도를 생각할 수 없듯이, 경영 혁신도 리엔지니어링 없는 개선을 생각할 수 없고, 리스트럭처링 없는 개선도 생각할 수 없다. 이 혁신 아이디어들은 상호 보완적이고, 서로의 완성을 위해 서로를 요구하는 것이다.
개선이란 말은 특별한 정의가 필요없는 말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바 그대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행동방식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고쳐 나가는 행위”인 것이다. 우리가 변화하는 환경에 끊임없이 게으르지 않게 지속적으로 변화하였다면 아마 급격한 경영혁신운동은 필요없을 것이다. 또는 변화의 속도가 과거처럼 크게 빠르지 않았다 해도 급격한 변화는 필요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였고, 변화의 속도 또한 너무 빨랐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부족했던 변화 부분을 빠르게 따라잡기 위해 급격한 경영 혁신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지속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러한 급속한 변화를 지속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을까. 그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일 것이다. 그 이유는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급격한 경영 혁신을 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한번의 급격한 경영 혁신 후 그 급격한 변화의 날카로운 효과를 가다듬기 위해, 또는 급격한 경영 혁신 후 변화하는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를 미세조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조정작업이 바로 ‘개선'인 것이다.
경제대국 일본의 저력은 개선중시 정신
그러나 명목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의 탓인지, 우리는 무언가 멋있게 보이고 커다란 효과를 얻는 경영 혁신 아이디어는 대단하게 보는 반면, 자그마한 효과를 지속적으로 얻으려는 경영 혁신 아이디어(개선)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여기에서 필자는 일본의 시스템과 우리나라 시스템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서로 경쟁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면 대부분의 경우 우리나라 시스템이 아이디어면이나 독창성의 면에서 일본을 앞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면 일본 시스템이 우리나라 시스템을 앞지르는 경우가 흔하다. 그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번 개발한 후 그것을 다시 돌보는 노력이 부족한 반면, 그들은 끊임없이 그 시스템의 운영 결과를 피드백 받아 그것을 개선한 결과,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 시스템보다 현격히 앞선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다
일본 품질 경영의 대가(불행히 이름이 기억나지 않음)가 우리나라 품질 개선 모임에서 한 연설 내용을 옮겨본다.
“한국에서 품질 관리를 하시는 분들에게 중요한 조언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저에게 전후 일본의 폐허에서 오늘날 경제대국을 가능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하나의 요소를 묻는다면, 저는 주저함이 없이 일본 기업의 최고 우두머리로 부터 최하위 직급 사람들의 머리속까지 철저하게 박혀 있는 ‘개선 중시’ 정신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개선 중시 정신이 일본의 품질을 얼마나 좋게 만들었는지 이루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급격한 경영혁신운동을 성공적으로 실행하였을지라도, 개선을 통해 그것을 끊임없이 미세조정해 나가지 않는다면, 급격한 혁신의 성공은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없거나, 성공의 효과를 빠른 속도로 상실할 것이다.
우리 기업들에 긴요한 현장중시 정신
그런데 이러한 개선 중시 정신과 꼭 맞물려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또 하나의 요소가 있다. 그것은 곧 ‘현장 중시’ 정신이다. 진정한 개선은 현장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고, 또한 현장을 떠나서는 개선 자체를 생각할 수 없다. 개선과 현장 중시는 자동차의 앞바퀴와 뒷바퀴의 관계이다. 이러한 ‘현장중시형 개선’ 정신이야말로 IMF 체제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이 가져야 할 가장 긴요한 사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현장중시형 개선 정신으로 금방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예로 우리나라의 교통신호 체제를 들고 싶다. 우리나라의 교통이 막히는 원인 중에는 분명히 자동차가 많고 길이 좁다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 때문만으로 길이 막힌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서울 강남의 도로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넓고 곧게만들어진 길이다. 그러나 우리가 운전을 하다 보면 거의 매 신호등마다 정차할 때가 많다. 내가 지금 서있는 신호등은 빨 간등인데. 그 앞길은 달리는 자동차도 없는데 파란불이다. 서있는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어 다음 신호등 근처에 도착하면 어쩌면 그렇게 알맞은 순간에(? ) 빨간불로 바뀌어 다시 정차하게 만드는지 신기 할 정도이다. 십자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십자로 양방향의 교통량이 비슷할 때 양 방향 진행 시간을 비슷하게 하면 좋으련 만, 누가 보아도 서너배 이상 차이가 나는 교통량인데도 양방향 진행 시간이 비슷한 경우가 태반이다.
등하교 시간이 아닌데도 동일 간격으로 움직이는 신호등, 경기가 있는 날이든 없는 날이든, 낮이건 밤이건 같은 간격으로 움직이는 올림픽경기장 출구 앞 신호등 … 그 예는 수없이 많다. 잠시만이라도 교통량의 변화를 관찰하고 난 후 신호등 점 멸 시간을 조정하였던들, 또는 추후에라도 점멸 시간을 조절하는 성의를 가졌던들 우리는 훨씬 더 안락한 운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간단하게 이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 그것은 곧 신호 등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지금 강남에는 수많은 곳에서 지하철 공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지하철을 깔고는 그 위를 흙으로 바로 메운다는 사실이다. 지하철 위에 직진 지하차도를 만든 후 흙으로 메운다면 그 수많은 직진 차량들은 신호등에 막힘없이 얼마나 잘 달릴 수 있을까. 우리가 지하철을 한두해 만든 것도 아닌데. 왜 이러한 간단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지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