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의 중요성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또한 그것의 중요성도 많은 사람 들에 의해 주장되어 왔다. 그러나 미래 우리 나라에서 품질의 중요성은 과거의 그것과 판이하게 다르다. 이번 경영 혁신 시리즈에서는 「전사적 품질관리 (Total Quality Management: TQM)」에 대해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우리 나라 모든 기업들은 지금까지 품질의 중요성을 그 무엇보다 강조하였지만, 사실 그들의 품질 향상에 대한 노력은 구호만큼 그렇게 심각하게 추진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까지 우리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은 우리 나라 기업끼리의 제한된 경쟁이었기 때문이다.
UR 때문에 경쟁 의미 달라져
텔레비전의 예를 들어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LG · 삼성 · 대우 · 아남 등 우리 나라 TV 메이커들은 자사의 품질을 높이려고 많은 노력들을 하였었다. 그러나 그들의 경쟁 대상은 서로간 TV 제조기술 능력에 큰 차이가 없는 국내 기업끼리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편안한 경쟁이었다. 우리 나라 국민들 대부분이 아마 가전 4사간의 품질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된 경쟁관계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 경영 혁신 시리즈에서 여러번 강조한 바와 같이 우루과이라운드. 즉, UR 때문이다. UR의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면 UR이란 ‘외국의 기업들이 우리 내수 시장에서조차도 해외 시장에서와 똑같이 그들의 제품을 그들이 정한 가격과 판매 조건으로 판매하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실례를 들어 보기로 하겠다.
UR 이전에도 우리 나라에서 소니 TV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니 TV는 우리 나라 가전업체들에게 심각한 경쟁 대상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소니 TV는 유사한 크기의 국내 TV에 비해 월등히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소니 34인치 300만 원. 국산 180만원) 99% 이상의 우리 국민들은 일제 TV 품질이 좋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구입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 기업들은 품질이 더 우수한 소니가 국내 시장에 존재하였지만, 소니의 품질을 경쟁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마음 속으로는 두려워하였겠지만). 우리 나라 TV들의 품질을 경쟁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1997년 하반기부터 미국산 소니 TV의 수입이 자유로워지면서, 소니 TV의 가격은 300만원에서 국산보다 저렴한 120만원으로 하락하였다(그러나 지금은 환율 인상으로 다시 상승하였음). 120만원의 소니 TV가 국내 시장에서 자유스럽게판매될 때 우리 나라 TV의 품질 경쟁력은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더욱이 우리 나라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게 됨으로써 일본 제품의 국내 유입을 막고 있었던 ‘수입 다변화' 정책이 1999년 1월 1일이 되면 풀리게 되었다. 일제 가전제품들이 자유스럽게 국내 시장에 수입되는것이 1년밖에 남지 않게 된 것이다. 과연 그 때가 되면 지금까지 우리 나라 기업끼리 경쟁하던 품질과 미래의 품질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국제 수준의 품질은 이제 생존의 문제이고, 그것도 코 앞에 닥친 문제인 것이다. 이것은 비단 가전제품에 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통신시장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 시장에서의 통신사업은 우리 나라 기업끼리의 경쟁이 었다. 그러나 이것도 내년이면 해외업자들의 영업이 자유로워진다. 정말로 AT&T가 또는 인터샛이 우리 나라에서 사업을 하게 될 때, 과연 통화의 품질과 서비스 제공 가격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995년 UR 이전의 품질에 대한 우리의 자세와 그 이후의 자세는 확연히 구분되어야만 한다.
TQM이 바라는 품질
우리 기업들의 이러한 품질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하는데, 전사적 품질관리 (TQM) 아이디어는 대단히 중요한 사고의 전환점을 제공하리라고 생각된다. 전사적 품질관리가 주장하는 중요 포인트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품질의 적정성 여부는 규격이나 사양에 대한 일치 여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고객 만족의 달성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둘째, 또한 품질은 기능적 품질을 만족시켜 주는 단계가 아니라, 감성(Feeling)을 만족시켜 주는 품질 수준이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주장은 우리 나라 기업들의 품질에 대한 개념에 커다란 변화를 요구 한다. 우리 나라 기업들이 생각하는 품질은 100PPM 운동 또는 QC 운동 등이 말하는 바와 같이, 기능 또는 사양을 만족시켜 주는 품질이다. 그러나 TQM이 요구하는 품질은 그것을 훨씬 뛰어넘을 것을 요구한다.
예를들어, 어느 자동차 회사의 자동차 문이 잘 여닫힌다면 QC적 사고하에서 그것은 충분히 합당한 품질이다. 그러나 TQM하에서의 그러한 품질은 기본적인 품질일 뿐이다. TQM이 바라는 품질은 그 자동차의 문이 얼마만큼 부드럽게 여닫히느냐, 그리고 여닫힐 때의 “찰카닥” 하는 소리가 얼마나 경쾌하게 들리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우리가 기성복을 만들 때, ‘빨간색 원단에 얼룩이 없는가', ‘단추가 튼튼히 달렸고, 실밥이 터져나온 곳은 없는가'를 따지는 것은 QC 적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TQM은 그러한 품질을 기본으로 생각할 뿐이다. TQM이 요구하는 품질은 ‘그 기성복의 빨간색은 얼마만큼 아름답고 세련된 빨간색인가', '그 단추의 색깔과 디자인은 옷감과 얼마만큼 어울리고 세련되었는가'를 분석하는 품질인 것이다. 이러한 요구는 일견하면 무리한 요구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 나라 옷끼리 진열되었을 때와 해외 브랜드와 우리 나라 옷이 함께 진열되었을 때 우리 국민들의 비교 안목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를 예상하면 쉽게 짐작이 될 것이다.
사양(스펙)도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품질이라면 그 기업은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다. 사양을 만족시켜 주는 품질이라면 그 기업은 당분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닐 것이다. ‘감성'을 만족시켜 주는 품질이어야만 그 기업의 생존은 어느 정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품질에 대한 책임은 경영자에게 있다
셋째, 품질은 생산공정에서 결정되는 것이아니라, 제품 디자인에서부터, 그리고 그 후 관련되는 모든 프로세스에 의해 결정된다.
넷째, 품질에 대한 일차 책임은 생산자에게 있지 않고 오히려 ‘경영자’에게 있다.
이 두 가지 주장 또한 우리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나라에서의 품질은 아직까지도 사양을 맞춰 주는 품질이고, 당연히 그렇기 때문에 생산공정에서 품질이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TQM적 사고는 그렇지 않다. TQM은 품질이란 매우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우선, 기업의 ‘문화’가 얼마만큼 품질을 중히 여기는 문화인가, 최고 의사 결정권자가 품질의 중요성을 얼마만큼 강조하고 그것을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업적 평가시 고품질 유지 노력이 얼마만큼 반영되고 있는가, 제품 설계시 얼마만큼 제조 품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고려되었는가, 물품 구매는 제품 품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이루어졌는가 등등. 이 모든것이 종합된 결과가 최종 품질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품질이 생산공정에서 이루어진다는 고정관념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품질이란 디자인부터 그 후 모든 프로세스에 의해 영향을 받고, 이 모든 프로세스에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경영자이고, 그 중에서도 최고 경영자인 것이다.
TQM은 필연적인 과제
다섯째, 불량품에 의한 비용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크며, 품질 향상은 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절약하는 것이다.
여섯째, 품질 만족의 대상이 되는 고객은 최종 소비자인 외부 고객뿐만 아니라 내부 고객(종업원 인접 연관 부서) 그리고 협력업체까지를 포함한다.
이러한 주장도 여러분이 어떻게 물건을 구입하는가를 살펴보면 쉽게 짐작될 것이다. 어떤 제품을 샀는데 그 제품이 불만족스러웠다고 하자. 다음에 그 제품을 사겠는가. 아니면 다른 제품을 사겠는가. 그리고 친구들에게 그 제품에 대해 무어라고 말하겠는가. 이 모든 손해를 다 고려한다면, 물건을 조금 나쁘게 만듦으로써 얻어진 이익보다는 손해가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시장이 개방된 1995년 이후의 품질은 결코 1995년 이전의 품질과 같을 수 없다. 우리 나라 내수 시장에서조차 세계 최고 기업들과 직접 경쟁하게 된 지금, 전사적 품질관리(TQM)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필연의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