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부터 여름까지 빛으로 살아온 나무들은 가을바람 불어오자 먼저 열매를 돋웠다. 차분하지만 한해 중 어느 때보다 옹골찬 몸짓이다. 너나할 것 없이 모든 나무들에 조롱조롱 열매가 맺혔다. 아직 온전히 익지 않은 채 매달린 열매의 초록에서 시작한 빛깔은 가을의 걸음걸이를 따라 빠른 속도로 표정을 바꾼다. 노란 빛에서 붉은 빛, 혹은 영롱한 보랏빛에서 칠흑처럼 검은 빛까지 나무들은 제가끔 저마다의 빛깔로 열매를 키운다.
열매보다 먼저 빛깔을 바꾼 건 잎이다. 단풍이다. 이 땅에 가을바람이 스며들면서 창졸간에 잎 위에 떠오른 빛깔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은행나무 잎은 노랗게 물들고, 갈참나무와 굴참나무 잎은 붉은 갈색이 또렷하며, 단풍나무 잎은 새빨갛다. 흙먼지 뒤집어쓰고 지난 계절을 살아 온 도심의 플라타너스 넓은 잎에도 갈색 단풍 빛깔이 선명하다.
시골 마을 동구 밖 느티나무는 붉은 빛으로 수천의 잎사귀를 물들였다. 느티나무는 같은 종류 사이에서도 잎 위에 오른 단풍 빛깔이 사뭇 다르다. 느티나무만의 유별난 특징이다. 붉은 빛으로 단풍 드는 느티나무가 있는가 하면 환하게 밝은 갈색으로 가을을 보내는 느티나무도 있다.
하루가 다르게 나무들이 피워 올리는 빛깔의 변화가 축제처럼 흥겹게 사람의 마을에 파고든다. 봄 꽃 못지않게 아름답다. 열매에서 잎까지 모두 그렇다. 속내까지야 알 수 없지만, 하나하나 돌아보자니 필경 모든 나무들에게 이 가을은 여느 계절 못지않게 분주해 보인다.
까닭이 있다.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려는 건 물론 아니다. 나무 스스로 고행의 계절인 겨울을 단단히 채비해야 하는 때문이다. 에멜무지로 가을을 보낸다면 곧 닥쳐올 북풍한설을 견뎌내는 게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나무들이 부르는 생명의 노래
봄부터 나무는 제 존재 이유인 씨앗 맺기에 온 힘을 기울였다. 처음엔 저마다 제 몸에 어울리는 빛깔과 향기를 담은 꽃을 피우고 벌 나비를 불러 모았다. 깊은 설렘과 긴 기다림 끝에 애면글면 이룬 혼인으로 나무들은 서서히 씨앗을 담은 열매를 키웠다. 이 정도면 한해 농사는 거뜬히 치른 셈이다. 꽃 피고 열매 맺는 데에 꼭 필요한 양분을 짓느라 애쓴 노동의 수고를 내려놓고 긴 휴식에 들어가도 될 법하다.
때마침 가을바람 불어오고, 뒤이어 눈보라 몰아치는 겨울이 다가올 참이다. 겨우내 이어질 긴 휴식을 위해서 나무에게는 아직 재우쳐 준비해야 할 일이 남았다. 무엇보다 매운 겨울바람에 대비해야 한다. 대를 이어 수천 번의 겨울을 이겨낸 나무들이 이 가을에 펼쳐낼 가을나기 전략이다.
본능적으로 겨울의 조짐을 눈치 챈 나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잎사귀와 나뭇가지를 잇는 잎자루의 안쪽에 떨켜층이라는 새로운 조직을 키워낸 일이다. 떨켜층이 돋은 자리는 뿌리에서부터 잎 위에 가늣이 펼쳐진 잎맥까지 물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통로다. 하늘빛을 받아 지어낸 양분을 나무의 몸통으로 옮겨주는 생명의 통로이기도 하다.
떨켜층은 미세하지만 단단하게 몸피를 키웠다. 떨켜층으로 생명의 통로를 막고 물을 끌어올리지 않는 건, 더 이상 광합성의 노동으로 양분을 짓지 않아도, 충분히 열매를 키워나갈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을 드러낸 나무 특유의 표현이다. 한 해 동안 지어온 노동과 갈무리에 대한 자신감을 안고 나무는 다가오는 겨울 동안 여느 짐승들처럼 겨울잠에 들 태세다. 드디어 잎자루 안쪽에 키운 떨켜층이 물과 양분이 드나드는 통로를 완전히 틀어막았다.
물은 더 이상 올라오지 않는다. 사람의 핏줄 못지않게 촘촘히 뻗어있는 줄기와 가지의 물관에 남아있던 물기는 목적지를 잃고 허공으로 빠져 나간다. 물은 나무의 몸통 바깥의 기온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줄기 껍질 부분의 물관을 타고 오르내리는데, 이 물관에 남아있던 물을 모두 덜어내려는 전략이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전에 물을 모두 덜어내야 한다. 물관 속의 물이 얼면 물관이 터져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황홀 찬란한 한해살이의 마무리
시나브로 잎이 마른다. 햇빛과 이산화탄소, 그리고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광합성을 이제는 할 수 없게 됐다. 그러자 세상의 모든 생명을 먹여 살리는 광합성을 담당했던 초록빛의 엽록소는 활력을 잃고 스러진다. 엽록소의 초록이 아닌 다른 빛깔들이 드러나는 건 자연스러운 순서다.
나무들이 단풍 든 잎으로 빛깔의 축제를 벌일 차례다. 나무마다 성분에 차이가 있어서 노랗거나 붉거나 갈색 등 가지각색이다. 은행나무나 아까시나무처럼 노란 색이 강하게 오르는 나무는 카로티노이드 성분을, 단풍나무와 화살나무 같이 빨간 색이 화려하게 오르는 나무는 안토시아닌 성분을 많이 포함한 때문이다.한해 내내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쉼 없이 양분을 지어왔던 나무들이 이제 노동의 수고를 내려놓고 겨울잠에 들어갈 참이다. 나무는 무수히 많은 열매를 허공에 남긴 채 한해살이를 마무리할 채비를 마쳤다. 나뭇잎에 오른 단풍 빛은 그래서 단순한 빛깔이 아니라, 생명의 애옥살이가 빚어낸 황홀 찬란한 생명의 축제일 수밖에 없다. 바라보는 사람과 더불어 즐기기 위해 나무가 벌이는 큰 잔치다.겨울잠에 평온히 들기 위해 아직 마무리해야 할 일이 남았다. 빛깔의 축제를 지내며 나무들은 화려하게 물들었던 단풍잎을 땅 위에 가만가만 내려놓는다. 바짝 마른 채 붉게 물든 나뭇잎으로 뿌리 근처의 땅을 소복이 덮어야 한다.
여러 빛깔의 단풍 가운데에 안토시아닌이 지어낸 붉은 빛깔로 단풍 물을 올린 잎들의 전략은 더더욱 놀랍다. 땅에 떨어져 뿌리 부분의 흙을 살며시 덮었던 붉은 낙엽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붉었던가 싶을 정도의 회갈색으로 바뀐다. 잎 위에 올라왔던 붉은 빛깔의 안토시아닌은 나무뿌리 근처의 흙에 스며들었다.안토시아닌은 강력한 항산화 효과를 내는 물질인데, 진딧물을 비롯한 해충의 침입을 막아주는 데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 결국 나무는 생명 활동을 중지하고 동물처럼 겨울잠에 드는 무방비 상태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제 몸에 가지고 있던 해충 방제 요소를 한껏 끌어올려 뿌리 부근에 내려놓은 것이다.말없이 지나온 나무의 한해살이는 그렇게 마무리된다. 바람 서늘해지던 초가을부터 나무들이 힘겹게 이뤄온 겨울 채비를 모두 마쳤다. 고요히 잠 들 차례다. 눈보라 몰아치는 벌판에서 홀로 찬바람 이겨내야 하는 건 하릴없이 나무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고요해 보이지만, 치열할 수밖에 없는 잠자리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제가끔 자기만의 멋과 아름다움을 가진다. 그 아름다움에는 살아남기 위한 간절함이 들어 있게 마련이다. 꽃도 열매도 단풍도 모두 이 땅에 하나의 생명으로 살아남기 위해 나무가 펼쳐낸 아우성이다. 나무가 이 계절에 펼친 화려한 빛깔의 축제도 결국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나무가 체득한 간절한 생존 전략의 흔적이었다.
이가을, 붉게 물든 단풍나무 그늘에 들어서서 나무들이 부르는 생명의 노래에 오래오래 귀 기울여야 할절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