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이다. 글로벌한 인재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난리이다. 글로벌은 말 그대로 ‘지구의’, ‘세계적’이라는 뜻이다. 즉, 세계 어느 곳에 가서도 일할 수 있고 돈 벌 수 있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21세기에 여권을 갖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글로벌한 인재가 될 수 있을까?
우선 영어를 잘해야 한다. 이미 영어는 국제어가 되어 버렸다. 그것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프랑스어를 말도 못하게 아끼는 프랑스인이지만 프랑스에서 조금만 이름 있는 다국적 기업에 전화를 하면 ‘봉쥬르’ 대신 ‘굿 애프터눈’ 하고 첫인사를 한다. 전세계 컴퓨터에 입력된 정보의 95%가 영어로 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인터넷 역시 이제 컴퓨터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 하는 ‘테크놀러지’의 문제가 아니라, 영어를 얼마나 자유롭게 구사하느냐 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차원이 되었다.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곧 인터넷을 자유롭게 ‘서핑’하고 ‘시킹’한다는 것을 뜻한다.
얼마 전에 작가 복거일씨가 영어를 한글과 함께 공용어로 쓰자고 주장했다가 일부에서 ‘사대주의자’라는 비난을 들었다. 이것은 현실을 무시한 채 ‘코리아 넘버원’에 머물고 있는 이들의 주장이다. 영어 공용은 영어를 사랑해서도, 숭배해서도 아니다. 이른바 ‘시장의 요구’라는 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두번째는 국제적 배경, 국제적 인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제 우리의 경쟁 상대는 이 좁은 한국이 아니다. 순식간에 이메일을 주고 받듯 경쟁의 속도와 내용도 국제화되고 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이니라 전세계를 기반으로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세계 주요 다국적 기업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스카우트되는 이들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자격조건은 그가 얼마나 다양한 ‘국제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골퍼 타이거 우즈가 말 그대로 다채로운 ‘핏줄’을 자랑하듯 얼마나 많은 나라와 지역과 인종을 경험했는가가 바로 주요한 경력이 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세번째는 편견을 없애는 것이다. 스스로 눈에 가려진 베일을 거둬내는 것이다. 내가 읽은 책에 나온 한 미국 대학생의 데이트론을 잠시 소개해 보면 – “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것은 다른 인종과 하는 데이트이다. 자신과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애인을 통해 우리는 세상의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사랑은 눈이 머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피부색에도 물론 눈이 멀어야 할 것이다” – 멋진 말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든가 우리 것이 최고라는 답답한 사고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절대로 우리 것이 최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식한 사람, 많은 것을 보지 못한 사람만이 내가 최고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물론 우리 한국 문화가 뒤떨어진다든가 열등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모든 문화는 상대적이다. 각각의 문화는 나름대로 특성과 아름다움이 있다. 어느 문화는 뒤떨어진 미개한 것이라고 감히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글로벌한 인재는 ‘생각의 패러다임’자체를 바꾼 사람이다. 뒤집어 생각하고 끊임없이 질문할 수 있는 사람, 다른 이의 아이디어를 사고 내 아이디어를 팔 수 있는 사람, 도전하고 그 위험 부담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외국에 나가서도 김치찌개를 꼭 먹어야 한다고 한국 식당만 찾아다니면 절대로 글로벌한 인재가 될 수 없다. 어느곳에 가서든 그 나라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그 나라 옷을 입을 수 있고 그 나라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고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고 먼저 악수를 청할 자세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은 넓고 만나야 할 사람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