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직장인의 액션 플랜 [5]
사람 만나는 일이 업인 내 후배가 하소연을 했다. 어떻게 가면 갈수록 일이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사람을 만날 때일 수록 더 그렇다고 했다. 사람 만나는 일인 만큼 상대에게 호감을 주면 그 다음부터는 일이 일도 아니게 잘 풀리는 법이건만.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법은 의외로 아주 쉬운 일이다. 거꾸로 내 자신이 어떤 때 사람들에게 호감을 가졌던가를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말 처럼 쉽지는 않다.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갖게 하는, 그래서 목표 달성을 빠르게 하는 지름길이 있을까? 그것은 '상대에 대해 아는 것' 이다. 성서에서 지식 - 안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랑한다'라는 뜻이다. 사람은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된다. 또 거꾸로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에도 단계가 있듯이 '상대를 휘어잡는 데'도 단계가 있다.
오늘 어떤 사람을 만난다고 하면 우선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앵커우먼 바바라 월터즈는 중요한 사람을 만나러 갈 때, 단순한 식사초대인 경우조차 그 사람에 대해 평균 8~9권의 책을 읽고 갔다고 했다. 나는 그 구절을 읽고 바바라 월터즈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럴 만한 시간이 없거나 상대가 낸 책이 없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럴 때는 첫째, 인명록을 뒤지거나 데이타베이스의 인명 정보를 활용한다. 웬만큼 중요한 사람이면 컴퓨터만 서너 번 클릭하면 그의 나이, 학교, 경력 등 중요한 것은 다 꿰뚫게 된다. 전혀 인명 정보가 기재되어 있지 않은 사람인 경우는(이런 경우는 거의 드물지만) 그 사람을 알 만한 사람들에게 간접 취재하는 것이다. '6간극' 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아무리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여섯 사람 정도만 거치면 대개 이렇게 저렇게 연결 되는, 결국은 아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이다.
둘째, 이런 기본 과정을 거쳐 대충 신상 파악이 되면 그 사람의 자료 분석에 들어간다. 그 사람의 경력을 꼼꼼히 살피고 우선 그 사람이 가장 자랑스러워할 부분을 점검한다. 그 황금기 내지는 스타 탄생 시점 말이다. 이런 부분부터 일을 풀어가면 아주 쉽다. “그러니까, 그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이 일을 하셨 다면서요?” 하면 상대는 신이 나서 마구 이야기를 시작한다.
셋째, 그 사람의 취미가 무엇인가를 유심히 살핀다. 취미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중국의 장쩌민이 국가 주석이 되고 나서의 일이다. 장쩌민은 대개의 공산주의자들이 그랬듯 자신의 계급을 배신했다. (장쩌민은 대대로 한의사를 해온 부르조아 집안의 후손이었다). 장쩌민이 어렸을 때 집 안에는 피아노가 있었고, 그는 이 점을 내내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장쩌민은 국가 주석이 된 뒤 세계 각국의 여러 언론들과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장쩌민이 최고로 만족스러워해서 오는 사람마다 보여준 인터뷰 기사는 한 홍콩 기자가 쓴 것이었다. 그 기사는 다른 기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끝에 있던 단 한 줄이 장쩌민을 한없이 감격시켰다. “새 중국 국가 주석 장쩌민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쳤으며 그 솜씨는 수준급이다.”라는 한 줄이었다. 물론 그 뒤 그 홍콩 기자가 굵직 한 특종을 한 것은 미루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넷째는 눈빛이다. 상대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과감하게 보여주는 눈빛이다. 예전만 해도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 반대로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이미지를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국제화 시대에 서구인들은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고 말하면 무엇인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빨아들일 듯이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클린턴 같은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다섯째는 제스처이다. 일본 혼다 자동차의 전설적인 경영자 혼다 소이치로, 그에게는 몇 가지 처세술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일본인에게는 드문 제스처였다. 혼다는 잘 모르는 중요한 사람을 만날 경우 그 직전까지 비서를 통해 그 사람에 대한 브리핑을 들었다. 혼다처럼 수많은 사람을 만나다보면 나중에 일일이 기억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는 한 번 만났지만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어떤 사람이든간에 언제 그를 만났었나 집중적으로 '초치기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죽은 뒤 그의 비서는 혼다의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이렇게 기억했다.
'회장님은 초치기 교육을 받고 난 뒤, 곧바로 접견실로 달려갔지요. 회장님을 기다리던 손님에게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말씀하셨어요. '아니 이럴 수가, 왜 내게 그 동안 연락 한 번 안했나? 이런 몹쓸 사람' 이라고요.' 백 마디의 말보다 비록 연출이라 할지라도 혼다의 제스처 효과가 얼마나 컸을까는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여섯째, 적당히 아부하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은 다 똑같다. 적당히 근거 있는 아부를 하면 너무나 쉽게 허물어진다. 때로는 전혀 근거 없는 아부에도 맥을 못춘다.
일본 특파원 시절, 나는 아카사카의 한국 술집에 업무상 혹은 개인적으로 자주 놀러 갔었다. 그러면서 많은 술집 여성들을 알게 되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여성들인지라 남자들을 어떻게 다뤄야 될지를 알고 있었다. 한 번은 서울에서 온 어떤 사업가와 함께 술집에 가게 되었다. 그는 60이 넘었으며 대충 이주일씨 형님같이 생긴 분이었다. 그날 마마와 호스티스 그리고 나, 사업가 이렇게 넷이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런데 마마가 계속해서 끝없이 '어쩜 그렇게 잘 생기셨어요. 머리도 벗겨진 게 중후해 보이고, 저는 눈 작은 남자들이 자신만만해 보여서 참 좋아요. 키도 작으니까 참 다부지고 멋져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아무리 그래도 심하다. 말이 돼야 아부를 하지. 오히려 손님이 화내는 것은 아닐까? 정말 얼굴에 철판 깔았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새파란 호스티스 아가씨는 한술 더 떠 내게 속삭였다. “저 언니, 정말 끝내주죠?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 말은 못해요. 그래도 어느 정도 기본은 되어야 저런 말이 입에서 나오죠.” 그러나 나나 새파란 신참 호스티스나 산전수전 다 겪은 마마에게 완전 KO패를 당했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술기운이 돌자 그 사업가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소리 참 많이 들었지. 여자 때문에 우리 마누라 속깨나 썩었다구.' 그날 마마는 매상깨나 올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설명한 여섯 가지만 준비하면 비즈니스에서 사람 다루기는 식은 죽 먹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