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직장인의 액션 플랜[6]
우리 동네에 내가 가끔 가는 아주 조그만 일식집이 있다. 생선도 싱싱하고 음식도 푸짐하고 무엇보다 가격이 양심적이지만 솔직히 좀 무섭다. 분위기가. 왜냐하면 주방장겸 주인이 종업원들을 아주 혹독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주인은 “빨리빨리! 뭐 하고 있는 거야? 정신들 차리지 못해' 하고 쉴 새 없이 닦달을 한다. 주인장이 온갖 스트레스를 종업원 구박하는 것으로 푸는 듯하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사상도 이데올로기도 온데간데없는 나 같은 사람도 어떤 때는 밥이 넘어가지 않을 정도이다.
하기는 남편 선배 가운데 말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주인아저씨, 종업원들에게 너무 하는 것 아냐? 요즘 애들은 오냐오냐 하며 달래야 말을 듣지.” 하고 훈수를 놓다가 봉변을 당했다. 주인장 아저씨가 사시미 칼을 도마 위에 탁 놓더니 “내가 이런 자식들 때문에 일 못해. 내가 내 집에서 내 식으로 일하는데 무슨 상관이야. 내가 그래서 큰 일식집에서도 나온 사람이야.”라고 한판 붙자고 덤벼든 것이었다. 도마 위에 놓인 시퍼렇게 날이 선 사시미 칼을 보고 신변의 위협을 느낀 그 선배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나왔다는 전설 같은 일화가 있다. 그 사건을 접한 남편은 의협심 강한(?) 마누라가 심히 걱정되어 다시는 그 집에 가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래서 한동안 그 집에 발길을 끊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종업원들도 문제가 있었다. 한마디로 주인아저씨의 복장을 터지게 했다. 일식집이면 접시 수가 많고 온갖 종지가 많으니 일사불란하게 착착착 움직이며 제때제때 손님에게 갖다 줘야 한다. 밑반찬 역시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그런데 종업원 아가씨들이 정신을 어디 두고 있는 지 영 손발이 맞지 않는 것이다. '주인아저씨야, 실컷 떠들어라.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천천히. 약 오르지롱' 하는 식이다. 분명히 그 주인아저씨는 초년 시절부터 일식집 주방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아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니 그 종업원 아가씨들이 일하는 것이 절대로 눈에 찰 리 없을 것이다.
좁쌀 주인 아저씨도, 노세노세 종업원 아가씨도 양쪽 모두가 잘못이 있다고 느꼈다. 아무리 조그만 일식집이라도 조직은 조직이다. 손님이 있는 앞에서 손님이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종업원을 야단치는 것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 잭웰치는 조직을 잘 이끄는 비결 중 하나가 '종업원들의 지갑을 빵빵하게 채워주는 것' 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그 짠돌이 사장님은 아가씨들에게 제대로 보상을 하지 못한 듯했다. 나는 한심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런 어느 날, 나는 그 집의 도미머리조림이 참을 수 없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목숨을 걸고 가서 먹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가보니 전과는 뭔가 달랐다. 좁쌀 아저씨는 여전히 잔소리를 해댔지만 그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가만히 보니 종업원 아가씨 두 명이 새로 바뀐 것이었다. 우선 이 아가씨들은 어찌나 빨리 움직이는지 퀵서비스 오토바이 급이었다. 게다가 손님에게 갖다 줘야 할 밑반찬도 제때제때 척척 나왔다(그 집에 간 역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두 아가씨는 뺨을 발갛게 해가지고 정신없이 일했다. 나는 '요즘에 참 보기 어려운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언제나 늦게 들르는 손님이기 때문에 곧 가장 바쁜 시간이 지나갔다.
“맥주 한 병만 더 갖다 주세요.”라고 말하자 그 아가씨가 “네, 알갔습네다. 기다리십시오.”라는 것이었다. 남편은 “아, 저 아가씨, 연변에서 왔나보다.” 했다.
그러고 보니 일하는 태도가 남달랐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헝그리 정신으로 똘똘 뭉쳐 일할 때처럼 눈에 광채가 가득했다. 그뿐인가? 손님이 자리를 뜨면 후닥닥 달려들어 순식간에 테이블을 치웠고 깜짝 놀랄 새에 정돈을 해놓는 것이었다. 나는 그 옛날, 한국인 이민 노동자들의 잰 일솜씨를 보고 입이 벌어지는 서양 사람처럼 그렇게 놀랐다.
워낙 일이 많은 집이라 나는 슬며시 주인아저씨의 눈을 피해 물었다.
'힘들지요?'
그러자 그 아가씨가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보며 말했다.
'이 정도는 일 없습네다. 이렇게 일하지 않고 어떻게 밥을 먹습네까?'
나는 일 없다는 말이 괜찮다는 말이라는 걸 어디선가 주워들은 적이 있어 그녀가 말하는 것을 이해했다. 참 예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괜찮다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그 모습, 그 힘차고 당찬 젊은 여성의 모습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이 세상에 있을까 싶었다.
“저 주인 아저씨 무섭지요·'
내가 이렇게 묻자, 불안을 느낀 남편은 재빨리 주인아저씨의 동정을 살폈다. 그가 사시미 칼로 정신없이 회를 썰고 있는 것을 보고 남편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아닙네다. 독한 사람이 좋습네다. 저런 사람들이 외려 착합네다. 그리고 저 아저씨 정도는 일 없습네다. 이를 꽉 앙다물고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 아닙네까?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잘 합네다. 나하고 아무 상관 없습네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독립적이고 당당한가. 나는 어지간히 감동했다. 우리의 늠름한 연변 처녀는 당차게 입을 앙다물고 제 갈 길을 간다. 손바닥만 한 일식집이지만 확실하게 일하면서 속으로 말하는 것이다. '저 정도는 내게 일없다' 고, 조직에서 성공하려면, 연변 처녀의 각오로 가장 독한 상사 밑에서 일 해 보라! 분명히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