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똑똑한 소비자는 공짜를 좋아한다?
요즘 제값주고 영화를 본 경우가 몇 번이나 있는가? 혹시 조조나 신용카드 할인 아니면 쇼설사이트에서 판매하는 할인티켓을 한번도 사용해 본 적 없는가? 그런 일 없다는 당신이야말로 돈 걱정 없이 사는 지극히 부자이거나 아니면 세상 물정 도통 모르는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공짜마케팅은 우리 주머니를 털어가는 강력한 비즈니스 수단의 반증이다. 대표적으로 할인점에서 하나 더 끼워 팔거나 제품포장지에 샘플 몇 개 묶어 파는 ‘덤 마케팅’ 혹은 ‘1+1 마케팅’에서부터 테이크아웃 커피점의 10개짜리 별쿠폰, 또는 공짜에 식상해진 고객들에게 현금과 같은 ‘상품권’을 제공하는 경우처럼 다양하다. 하지만 영리한 소비자는 ‘공짜’가 진짜 공짜가 아니라는 것쯤은 인지하고 있다. 즉 ‘하나를 사면 하나가 공짜’라는 말 속에는 ‘두 개를 구입하면 50%를 할인해준다’라는 의미라는 것쯤은,
또 1+1로 제공되는 증정품은 본 상품의 가격에 이미 포함된 거라는 것쯤은,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도 통상 배송비가 상품 마진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는 것쯤을 말이다.
이를 알면서도 현혹되는 소비자가 많은데 ‘공짜’ 즉 제로(Zero) 비용에 대한 소비심리는 도대체 뭘까? 한 초콜릿 판매실험결과에서 고급스러운 초콜릿은 도매가격의 절반인 15센트에, 일반적인 저렴한 초콜릿은 1센트에 팔았더니 73%는 비싼 초콜릿을 선택했다. 이번에는 모두 1센트씩 가격을 낮추자 69%가 고급 초콜릿에서 저렴한 초콜릿으로 선택을 바꾸었다. 가격 차이는 여전히 14센트인데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0원’ 즉 공짜라는 측면에서 저렴한 초콜릿을 더 선호한 것이다. 공짜는 단순히 가격이 ‘없다’라기 보다는 우리의 감정을 극렬히 자극하는 비이성적 흥분을 유발시키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심리야말로 공짜를 선택함으로써 혹시라도 손해 볼 일 없을 것이라는 안심을 갖도록 만들어 준다. 게다가 이득보다 손실을 극도로 꺼리는 인간들의 손실회피심리가 작용함으로써 공짜를 실제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공짜 비즈니스는 똑똑한 소비자들을 겨냥한다. 아일랜드 저가항공사인 라이언에어(Ryanair)는 영국 런던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까지 70달러의 정상운임 대신 단돈 20달러만 받는다. 대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활주로에서 고객을 태우고 내리도록 하며, 기내 음식이나 음료는 모두 유료로 판매하고 우선 탑승서비스나 수하물처리서비스에 이용료를 부과한다. 뿐만 아니라 웹사이트를 통해 호텔 예약서비스, 렌탈서비스나 기내 광고를 통해 비용을 회수한다. 특히 성수기에는 100달러 이상의 비싼 운임을 부과하여 저비용을 상쇄하고 있다. 무려 연간 130만명 이상이 이용한다고 한다. 이처럼 무차별적으로 제공되던 공짜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있다. 최근에는 프리미엄(Freemium)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데, 이는 Free(자유로운)와 Premium(고급 기능)의 합성어로 무료 서비스로 고객을 끌어들인 후 고급 기능을 유료화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경우다. 통신업체에서 값비싼 IPTV를 공짜로 설치해 준 후, 유료 콘텐츠 이용요금을 받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결국 기업은 공짜를 공돈이 아닌 것처럼 제공하고, 현명한 소비자는 그 공돈을 추구함으로써 윈-윈이 된다.
2 엉뚱한 소비자는 쾌감을 쫓는다?
인간은 이성보다 감정에 의해서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버드대학 제럴드 잘트만(Gerald Zaltman) 교수에 따르면, 우리가 내리는 의사결정의 70% 이상을 감정에 기인한다. 문제는 우울한 기분이나 불안감, 주변 사람들과의 심각한 갈등처럼 부정적인 감정과 스트레스가 우리를 쇼핑중독으로 이끌기도 한다. 인터넷쇼핑몰을 돌아다니다 물건을 주문하는 것이 사는 낙이라거나, 하루라도 TV홈쇼핑을 보지 않으면 허전하다 못해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말하는 쇼핑중독증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가 이를 대변하고 있다. 쇼핑중독과 유사하지만 다른 개념으로 충동구매가 있는데, 이는 상품에 노출되기 전까진 구매의도가 없었지만 예정에 없던 상품을 구매하는 경우다. 이들 쇼핑중독자나 충동구매자는 구매충동에 대한 의지력이 상실된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결국 쇼핑중독은 도박이나 알코올 중독현상과 유사하기 때문에 쇼핑행위는 본인의 부정적 감정을 잘 다스림으로써 회복탄력성을 키우고, 긍정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명품에 노출될 경우 우리는 감정을 다스리기 어렵다. 명품은 품질 좋고 유명하지만 아무나 살 수 없어 희소가치가 높은 비싼 제품이다. 명품에 노출된 우리 뇌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스캔하자 뇌의 쾌감중추 부위가 평소보다 더 활성화되었다. 인터넷게임이나 약물 중독에 버금가는 명품 중독현상은 특히 가격이 비쌀수록 더 강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가격이 비쌀수록 만족도 역시 높아지는데, 한 연구에 따르면 100달러짜리 와인은 5달러짜리 가격표가 붙어 있는 동일한 와인보다 만족도가 더 높았다. 그렇다면 명품이 우리 뇌의 쾌감중추를 자극하는 이유는 뭘까? 최근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명품구두 구매조사결과를 보면, 여성이 고가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연인관계에 위협을 줄 수 있는 다른 여성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 신호 기능이라는 점이다. 또 여성들이 연인관계가 위협받으면 더 비싼 핸드백이나 자동차, 구두를 원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들 제품을 사기 위해 32%를 더 지출하게 된다고 한다. 명품구매와 같은 여성들의 과시적 소비는 여성 집단 내의 미묘한 서열과 관련이 있다는 얘기다. 제프리 밀러(Geoffrey Miller) 진화심리학 교수가 지적한대로 명품소비는 일종의 과시적 소비이며, 이 과시적 소비야말로 짝을 구하는 인간 본성의 발로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시적 소비로 우린 더 행복해졌는가? 캘거리대학 커티스 이튼(Curtis Eaton) 교수에 따르면, 부국이 될수록 국민들은 보석이나 명품 브랜드처럼 신분을 상징할 수 있는 사치품의 소비에 집착하게 되는데, 이런 소비 성향은 사치품을 소유하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준다. 즉 경제적 번영에 도달하게 되면 제품의 내재적 가치와는 별반 관계없는 지위 상징(Status Symbols)을 추구하게 되어 결국 과시적 소비로 흘러가게 된다. 문제는 베블런 이론에 바탕을 둔 과시적 소비는 사회 전체로 볼 때 제로섬 게임(Zero Sum Game)이라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점이다. 값비싼 보석이나 디자이너 브랜드의 의류, 고급 자동차의 구입행위는 일차적으로 그 소유자를 만족하게 하지만, 나머지 사회 구성원들에겐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해 더 가난해진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3 현명한 소비자는 착한 소비를 한다?
우리 주변에 계속 공짜만 챙기거나 기업에서 제공하는 부가서비스 혜택만을 골라서 담아가는 소비자를 일컬어 체리피커(Cherry Picker)라 한다. 신체리는 놔두고 맛있는 체리만을 골라 먹는다는 의미다. 정작 기업매출 기여도는 떨어지는 무임승차 고객과 같은 체리피커와 우량고객을 구분하기 위해 기업에서는 디마케팅(Demarkering)을 구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대중매체보다 카카오톡이나 트위터 등 SNS를 통한 입소문 마케팅이 주효하기 때문에 체리피커를 구전(口傳)의 핵심으로 만든다면 신규고객 확보는 물론 기존고객 유지에도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 또 다른 유형으로 오프라인매장에서 상품을 눈으로 확인한 후 온라인을 통해 최저가격 상품을 찾는 쇼루밍족이 있다. 말 그대로 쇼루밍(Showrooming)은 오프라인매장은 단지 전시실 역할만 한다는 뜻에서 나온 마케팅용어다. 오프라인매장은 직접 입어보고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입어 보는데 돈 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똑같은 제품을 비싸게 구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온라인쇼핑몰에서는 할인쿠폰 등을 적용하면 최대 반값으로 구매할 수 있어 인기다. 특히 온라인쇼핑몰은 단지 저렴하다는 이점 이외에 구매 결정에 따른 스트레스와 구매자의 익명성이 보장되어 결정철회에 따른 심리적 압박감이 적다. 결국 체리피커와 쇼루밍족은 스스로를 매우 스마트한 소비주체라 여기지만, 사회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리 착한 소비자만은 아닌 것 같다. 체리피커들이 독식하고 있는 부가서비스 혜택은 기본적으로 신규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제공되는 혜택이기 때문이다. 체리피커나 쇼루밍족을 포함한 요즘의 현명한 소비자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소비형태로 칩시크 상품에 대한 인기를 들 수 있다. 칩시크(Cheap-Chic)는 싼 가격에 품질, 디자인 등 핵심 가치를 갖춘 브랜드 상품이나 서비스를 말하는데, 한마디로 말해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가져다주는 상품을 말한다. 요즘처럼 불황기에는 합리적인 소비가 느는 경향을 보이는데, 저비용 항공사인 제주항공의 시장점유율이 오히려 늘어나는 이치다. 제주항공은 경제성, 편리성, 안전성을 내세워 취항 5년 만에 매출 2000억원, 누적 탑승객 1000만명을 돌파한 칩시크 상품이다. 또 제품의 핵심가치인 품질과 디자인까지 고려한 칩시크 브랜드는 단지 비용절감차원의 유통업체 PB(Private Brand)의 노 디자인(No Design)이나 동대문식 노 브랜드(No Brand)와는 확연히 다르다. 싸지만 나름대로 브랜드 핵심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SPA 브랜드인 유니클로 등 패션의류와 미샤 화장품 등 소비재로 시작된 칩시크 열풍은 유통, 항공, 금융 등 서비스 업종으로 확산되는 추세를 보인다. 최근 프랑스인들은 지난 한해 동안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구입한 소비자의 51%가 중고를 구입했다고 한다. 한 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52%의 프랑스인들은 과거의 과시적 소비성향을 끊고 적게 소비하며, 보다 의미 있는 소비를 열망하고 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접하는 가치소비의 사례가 있다. 명품 소품을 구입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얻는 스몰 럭셔리(Small Luxury) 트렌드다. 이런 류의 가치소비 트렌드가 음식 분야로 확장되어 유행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미각 사치족’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상위 1%가 타는 고급 외제 승용차를 살 수도 없고, 고가 명품에 돈을 쓰기는 어렵지만 먹는 것만큼은 최상류층과 비슷한 수준으로 소비를 하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이다. 백화점이나 마트 할 것 없이 다소 값비싸지만 유기농 친환경 먹거리에 대한 두드러진 매출 증가 현상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외형적인 사치보다 내재적인 만족도를 높여주는 가치소비야말로 요즘처럼 빈부격차가 심해질 때 하나의 위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