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분류할 것인가
일단, 1차 관전 포인트는 4월 15일 미국이 과연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분류, 실제로 무역제재에 나설지 여부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도 최근 “중국이 위안화 절상을 거부할 경우,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25%의 수입 과징금을 부과하자”고 주장할 정도로 미국 내 분위기는 강경하다. 미국이 이처럼 환율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중국의 인위적인 위안화 저평가 정책이 막대한 대미 무역흑자의 원인이 돼 양국 간 무역 불균형을 심화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환율은 자국의 돈을 외국돈으로 바꿀 때 적용되는 상대적 교환비율이다. 보통 변동환율제(각국 통화가치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시장추세에 따라 변동하는 제도) 아래서 환율은 외화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중국은 외환시장의 수요와 공급 요인에 의해 환율이 자유롭게 결정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사실상 고정환율제를 실시하고 있다. 최근 위안·달러 환율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수준인 달러당 6.82위안에 고정되어 있다. 위안화가 고정돼 있으면 중국 수출상품의 가격경쟁력은 높아지고 무역 불균형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00년대 들어 미국의 대중무역수지 적자는 갈수록 악화, 2008년에는 사상 최고치인 266억 달러에 이르렀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 정부에 위안화 가치 절상을 강력히 요구, 이를 통해 무역수지 불균형을 어느 정도 해결하겠다는 생각이다. 특히, 미국의 실업률이 두 자릿수 가까이 치솟고 있다는 점도 미국의 입장을 더욱 강경하게 하고 있다. 재정적자가 심해 더 이상 내수 부양을 위한 통화·재정정책은 쓸 수 없는 상황이다. 11월 중간선거에서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의원들과 오바마 행정부의 정치적 고려도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압력에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중국은 미국에게 환율을 정치화하지 말 것과 자유무역을 훼손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미국이 세게 나오면 미국 국채를 파는 등 보복조치도 마다 않을 태세다. 사실 중국도 할 말이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달러화가 급등했을 때 중국은 위안화의 달러 환율을 그에 맞추어 올리지 않았다. 또 다른 어느 나라보다 앞장서서 대규모로 팽창적인 통화·재정정책을 써서 금융위기가 대공황으로 가지 않도록 큰 역할을 했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국제수지 흑자는 크게 줄었다. 그런데 이제 금융위기가 수습되고 달러화 가치가 내려가자 미국이 환율을 내리라고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중국은 굴복할 경우 ‘잃어버린 10년’의 불운을 겪은 일본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1985년 9월 눈덩이처럼 불어난 무역과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자 무역흑자국이었던 일본의 엔화를 대폭 절상시킨 ‘플라자합의’를 끌어낸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 제조업의 수출경쟁력에 타격을 주면서 결국 버블경제 붕괴로 이어져 잃어버린 10년을 낳았다. 월가의 유대 금융세력의 보이지 않는 손이 통통하게 살이 오른 중국 경제의 ‘양털깎기’에 돌입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지금은 양쪽 모두 한치도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문제는 금융위기 이후 양대 초강대국이 된 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이 자칫 세계 대공황과 같은 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최근 “미·중 갈등이 1930년대에 겪은 대공황 상황을 예고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1920년대 말과 30년대 초에 대공황을 겪은 이후 세계 각국은 환율전쟁을 했고, 그 결과 1930년대와 40년대 초까지 세계경제가 커다란 어려움 겪었다”고 강조했다. 국내 최고 경제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정 총리의 이러한 지적은 우울한 미래를 예고한다. 특히, 80년대 플라자합의는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반면, 중국엔 미군이 주둔해 있지 않다. 더구나 중국은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다. 일본과는 달리 미국과 끝장을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양국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사실 중국이 미국의 절상 압박에 마냥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현실이다.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대미 수출이 막히면 중국의 경기회복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중국 내부적으로도 부동산과 물가가 들썩이면서 위안화 절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다만 중국 정부는 수출과 경기 회복세를 봐가며 점진적 절상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일자리가 다급한 미국의 조기절상론과는 시기가 불일치할 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양대 초강대국의 총성 없는 환율전쟁은 앞으로 세계 경제의 기상도를 크게 바꿔놓을 수도 있다. 이 경우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 결국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미·중 환율전쟁의 정점은 4~5월이 될 것으로 보인다. 5월 베이징에서 열릴 미·중 경제전략대화가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다. 그때까진 환율의 추이를 주시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