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은 태초부터 지닌 모든 생물의 꿈이다. 그래서 영원불멸에 관한 예술 작품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열 가지의 장생물을 십장생(十長生)이라고 일컬으며 그림을 그려 생활 곳곳에 응용하고 그처럼 오래 살기를 기원했다. 십장생이란 장생 불사를 뜻하는 열 가지 물상으로, 해·달·산·물·돌·소나무·불로초·거북·학·사슴 등을 말한
다. 이 중 달과 돌이 빠지고 대신 구름과 대나무가 들어가 기도 하는 등 몇 종류가 제외되거나 추가되기도 한다.
십장생은 대부분 그 생물학적 수보다는 그것이 지는 의미 때문에 십장생으로 여겨진 것이 많다. 사슴의 수명은 30년을 넘지 못하나 신선이 기른다는 상상의 동물 기린이라는 설에서, 학은 40~50년을 살지만 고고한 군자의 상징에서, 약 500여년을 산다는 소나무는 은행나무보다는 수명이 짧지만 사철 푸른 상록수라는 점 때문에 취해진 듯하다. 거북의 수명은 보통 150~200년을 산다고 한다.
불로초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지만 현대에 와서는 흔히 영지버섯이라고 여겨진다. 십장생 그림에 보이는 불로초의 생김새도 이와 닮았을 뿐만 아니라 영지버섯의 정식 학명도 불로초이다. 영지버섯의 실제 생장은 여름 한철 2개월 정도일 뿐이지만 약효가 영험하기 때문에 십장생에 끼게 된 듯하다. 영지버섯은 최근 여러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백혈병 및 간암에 뚜렷한 효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두루미로 알려진 학은 먹이가 많다고 하여 아무 곳에 앉지 않고, 절조를 꺾느니 죽음을 택하며, 암수가 한번 짝짓기를 하면 평생 부부로 연을 맺어 함께 살고 재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1992년 12월초 강원도 철원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았다가 수컷을 잃은 두루미 한 마리가 그 옆을 맴돌며 닷새 동안 먹지 않고 울기만 하다가 군인에게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인간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오늘날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인간의 평균 수명은 66세. 그러나 고대 그리스는 불과 19세, 6세기경의 유럽은 21세, 19세기만 해도 26세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지금까지 공인된 세계 최고령자는 프랑스의 칼망 할머니로 122세까지 살았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이 연장되기는 했어도 영원히 살지는 못한다.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삼신산(우리나라의 금강산·지리산·한라산으로 추정)에 수천명을 보냈다는 진시 황도 50세에 객사했고, 옥황상제의 첩서왕모로부터 불로 불사한다는 천도복숭아를 선물받은 한무제도 54살밖에 못 살았다. 불로장생의 대명사 동방삭은 서왕모의 천도복숭아를 훔쳐먹고 삼천갑자, 즉, 회갑이 60년이니까 60년 x 3,000년인 18만년을 살았다고 하지만 단지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영원불멸의 염원을 담아 시문·그림 뿐만 아니라 벽·창문·병풍 등에 십장생을 많이 이용했는지도 모른다. 역대 대통령들도 십장생 문양을 넣은 그릇을 사용했다는 것을 보면 오래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이의 소망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