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마케팅 요소로 네 가지를 듭니다. 훌륭한 마케팅이란 좋은 제품(Product)을 합리적인 가격 (Price)에 신속한 유통 과정 (Placement)을 거쳐 판매를 촉진(Promotion)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얘기할 광고는 이 중 네 번째에 해당되겠지요. 다음에 제시된 몇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소비자들의 인지구조와 기업들이 광고를 통해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살펴보기로 합시다.
또 하나의 가족 - 삼성전자
전통적으로 Excellent Company 이미지를 추구해 온 삼성은 그간의 신뢰감을 기반으로 활용하되 다소 냉정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커다란 변신을 도모하게 됩니다. '알고 보면 괜찮은, 우리 생활 속에 늘 곁에 있으면서 꼭 필요한 사람” 이 되고 싶다는 기업 이미지를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지난 1997년부터 '믿을 수 있는 친구'와 '또 하나의 가족'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는 것이죠. 이는 브랜드 파워의 제고일 뿐 아니라 향후 기업 경영을 위해서는 신뢰감과 더불어 친근감이 관건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에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점토 인형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하였으며, 내용도 어머니로 상징되는 가족애와 국위 선양을 그린 '이봉주 마라톤' 편, 고향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서울역' '귀향' 편, 이제는 흑백 사진처럼 빛 바랜 60~70년대의 정서를 그린 '레슬링' 편 등을 소재로 선택하여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오리온 초코파이 '정'
1974년 시판된 오리온 초코파이는 농심 새우깡과 더불어 대표적인 장수 상품입니다. 발매 시점부터 비스킷과 머쉬멜로우, 초콜릿이 결합된 복합 제품으로, 주식 대용의 고단백·고칼로리 영양식으로, 어린이에서 노인층에 이르기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얻던 이 제품은 몇 가지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경쟁사 모방 제품의 출시, 장수 제품이 갖는 소비자들의 식상감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때 초코파이의 변신이 시작 됩니다. 마케팅의 대상을 어린이에서 어머니로, 낱개 판매에서 박스 단위로 바꾼 것이죠. 제품 이미지를 ‘정'으로 고정한 것도 이때부터로 1989년 ‘선생님과 학생' 편으로 시작하여 1999년 '학예회' 편까지 총 21편의 정 시리즈 캠페인을 꾸준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장난치는 아이를 심하게 야단쳐 보낸게 마음에 걸려 혼자 교실에 남아 있던 선생님이 무심코 서랍을 열어 봅니다. '죄송해요, 선생님” 으로 시작되는 반성의 편지와 함께 아이가 몰래 놓고 간 초코파이 한 개, 이 감동적인 장면을 '정' 이라는 단 한 마디로 압축시켰던 이 광고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동양제과에 이 얘기를 전해 주었던 선생님은 편지 말미에서 '앞으로 죽을 때까지 초코파이만 사먹겠다'고 했답니다.
그렇다면 정 캠페인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성과 동질성을 가진 '정' 이라는 콘셉트를 일관되게, 그러면서도 표현 소재의 확장을 통해 장기 캠페인임에도 불구하고 신선감을 유지했기 때문일 겁니다. 초코파이의 역사는 신기록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에이스침대는 국내 최초로 침대 공학연구소를 설립해 침대의 과학화를 추구하며 국내 침대업계의 선두자리를 지켜 왔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10대 종합가구업체들은 침대의 전문성보다는 디자인을 중심으로 시장을 공략해 왔고 군소 업체들은 가격을 중심으로 협공해 와서 에이스의 시장점유율이 계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였죠.
소비자 조사 결과, 에이스침대에 대한 인지율 및 선호도가 다른 브랜드에 비해 높음에도 불구하고 구입률은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난 반면 10대 가구업체의 경우에는 낮은 인지율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높은 구매율을 보이는 등 상반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은 결과는 디자인을 중심으로 세트로 구매하는 성향을 반영한 것으로, 소비자들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저 관여 상황에서 감각적으로 침대를 구매 하는 경향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의 침대에 대한 무사고적 구매 습성의 흐름을 바꿔 놓을까에 대해 고심하게 됩니다. 침대가 인체공학·수면공학에 의해 생산되는 과학적인 제품이라는 뜻으로 침대는 과학입니다. 에이스침대로 슬로건을 결정했지만 소비자의 반응이 시원치 않았죠. 그래서 소비자 마인드를 바꾸어 줄 좀 더 강력한 표현을 찾던 차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라는 표현을 창출하여 소비자들이 “그럼 뭔가?' 하고 생각하게끔 만든 것이죠.
강하면서도 재미있는 이 표현은 즉각적인 소비자 반응을 이끌게 됩니다. 코미디 프로에서 다뤄지는가 하면, 초등학생들이 침대를 가구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교육위원회의 항의와 광고심의위원회의 재심 등 반발도 있었습니다. 에이스 측에선 이를 반기고 더더욱 홍보에 박차를 가한 건 불문가지일 겁니다.
본 캠페인의 주요 목적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침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고관여 상황으로 끌어들이는 거라면, 침대 구매시 기능에 대한 고려 의사가 현격히 높아진 것(22%→43%)으로 나타나 이러한 시도가 성공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IMF와 애국심 마케팅
요즘 거리엔 태극기가 붙은 가방이 유행입니다. 청소년들의 애국심, 외세에 대한 반발감을 업고 청바지 업계 '잠뱅이'는 '안중근' '유관순' 이라는 이름의 청바지를 팔고 있습니다. 그 동안 콜라를 만들어 오던 범양식품은 '콜라독립 815'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코카콜라와 펩시에 거세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BUY KOREA'라는 슬로건으로 증권업계 중위권에서 일약 1위에 오른 현대증권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기업의 소위 '애국심 마케팅'은 IMF라는 시대적 상황과 흐름을 같이 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어느 조사에선 애국심을 강조한 광고를 보고 상품을 구입했다는 응답자가 46.9%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기업체에서 애국심을 이용하여 마케팅 활동을 펼치는 것은 매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애국심이라는 무조건적 자극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복잡한 구매 의사 결정 과정이 단순화되어 구매 가능성이 극대화되는 데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합리적이고 차가운 소비자'에서 '감정적이고 따뜻한 소비자'로의 변화, 과연 그들의 행동이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도움을 주고 있을까요?
구전효과를 노린 마케팅 - LG전자 '쁘레요'
LG전자 가스 오븐 레인지 '쁘레요'는 가전제품 수요가 전반적으로 침체된 가운데서도 판매가 증가하는 대표적인 품목입니다. 탄탄한 제품력과 마케팅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지요. 1997년 10월 첫 선을 보인 이 제품은 1998년 5월 '쿠킹도우미'라는 이색 마케팅을 펼치면서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 결과 LG전자는 시장점유율을 7%에서 30%까지 끌어올리고 판매량도 월 1,500대에 육박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성공의 이유로는 고객의 요구 및 취향을 철저히 반영한 제품력이 첫번째 요인이지만, 무엇보다도 이 제품이 성공한 데는 구전효과를 고려한 프로모션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입니다. 전국 대도시에 상설 요리시설을 설치하고 전문 요리강사를 동원해 사용법과 요리법을 강습함으로써 주부들에게 알찬 정보를 제공하였습니다. 또 오븐요리 전문가를 채용하여 쁘레요를 구입한 고객 가정을 원하는 시간에 방문하여 무료로 오븐요리 교육을 실시하는 쿠킹도우미제를 실시했습니다. 구전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이 제도 실시 후 5개월여 동안 쿠킹도우미를 신청한 고객은 총 6천여 명이 넘어서는 등 시장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와 같이 긍정적 구전을 통하여 고객의 충성도를 제고시키고 고객으로부터 좋은 호감과 평판을 얻기 위해서는 제품보다는 부가적인 서비스로 고객을 감동 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욱이 제품별·기관별로 차별성이 거의 없는 금융기관의 경우엔 더할 나위 없겠죠.
'제일제당-김혜자'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지는 요즘 세태만큼이나 광고주와 광고모델이 백년해로 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어제는 “저는 ㅇㅇㅇ 침대를 씁니다”라고 말한 모델이 오늘은 “저도 이제 △△△ 침대로 바꿨습니다”라며 경쟁사 CF에 버젓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젊고 인기 있는 모델일수록 이런 경향이 심해 잘 나갈 때 벌어두자는 신념 때문인지 대여섯 개의 광고에 겹치기 출연도 마다하지 않죠.
이 같은 풍토 속에서 짧게는 수년, 길게는 10년이 넘는 세월을 변함없이 한 제품에만 출연하는 '장수 모델'이 돋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주)제일제당과 25년째 '밀월 관계'를 자랑하는 탤런트 김혜자씨입니다. 그가 조미료 「미풍」 모델을 시작 한 1973년만 해도 조미료 시장은 미원이 거의 장악 하고 있었습니다. 치열한 광고전을 벌이면서, 80년대를 기점으로 서서히 조미료 시장은 「미풍」, 「다시다」로 이어지며 대세가 뒤집힙니다. 이는 전적으로 초지일관 한 제품 광고에만 출연해 소비자를 꾸준히 설득 한 모델의 공이겠지요.
이처럼 특정 회사나 제품에 한 연예인이 계속 등장 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연구에 의하면, 신뢰할 수 있는 연예인이 한 제품이나 회사의 광고에만 출연할 경우 제품이나 회사의 신뢰도나 호감도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특정 연예인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와 선호가 제품의 구매 욕구에 반영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특정 연예인이 여러 제품에 동시에 출연할 경우 제품에 대한 인지도나 구매 욕구는 소위 '소멸' 현상에 의해서 감소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광고주는 자사 모델과 전속계약을 맺을 때 계약기간 중 동종 업종의 광고에 출연하는 것을 금지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곤 합니다.
「신기한 한글나라」의 문제인식 유발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식교육에 대한 경쟁적 열성 덕분에 황금시장이라고 일컫는 학습지 시장은 업계의 추정에 의하면 그 규모가 대략 1조 8천억 원 정도 됩니다. 조기교육 바람과 교육과정 개편 등에 힘입어 연평균 40% 이상의 성장을 보이면서 20여 개 이상의 업체가 치열한 경쟁을 보이는 가운데 '빅4'로 자리 잡은 대교, 재능, 공문, 웅진의 아성에 한솔교육은 '신기한 한글나라 시리즈'로 꾸준히 시장점유율을 늘려 나갑니다.
하지만 전체 학습지 시장에서 한글 학습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작았기 때문에 매출 확대를 위해선 시장 규모(M/S)를 늘리는 것이 급선무였죠. 이를 위해 소비자로 하여금 문제의식을 유발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였는데, 당시에 목표소비자를 구독자로 만드는데 가장 큰 문제는 '한글은 나중에 배워도 돼'라는 소비자 인식이었습니다. 즉, 현재 학습지 비구독자 및 종합 학습지를 구독하고 있는 소비자들은 욕구가 발생 하면 곧바로 종합 학습지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대부분 부모들이 그러한 패턴을 보이고 있고 또한 종합이니까 여러 개를 골고루 배우게 한다는 구전에 의한 영향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에 '한글나라'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었고, 결국 이러한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문제의식을 유발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이러한 인식을 깨기 위해, 현재 종합 학습지를 구독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본격적으로 종합 학습지를 시작하기 이전에 있는 만 18개월에서 만 3세까지의 자녀를 둔 주부를 주 타깃으로 삼아, TV광고를 통해 2살짜리 평범한 아이가 능숙하게 한글을 읽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소비자로 하여금 자신의 아이가 상대적으로 뒤떨어져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죠. 그 결과,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던 월 신규 회원의 숫자도 광고 메시지가 도달된 1997년 12월부터 급신장을 하였고 학습지 시장에서 유례없는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름값에 홀렸나?
크리스찬 디오르, 니나리치, 카운테스마라, 지방시.......
세계적인 일류 디자이너의 이름을 빌린 이들 상표는 봉급쟁이들이 입는 와이셔츠에 붙어 있는 외제 상표 들입니다. 연간 3천억 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와이셔츠 시장에서 외국과의 브랜드 도입계약으로 국내에서 생산되는 이들 브랜드들이 국산을 압도하며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1992년에 국내에 입성한 지방시의 경우,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서만 첫해 4,300만원 정도에 불과하던 매출액이 1993년 1억 5천, 1994년 2억 5천만 원으로 뛰어올랐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라이벌인 니나리치에서도 나타납니다. 장당 5~8만원의 고가에도 불구하고 구매결정권을 가진 주부들의 외제 선호와 이름 값 덕분에 날개 돋친 듯 팔리게 됩니다. 반면에 로열어패럴의 로얄, 태양어패럴의 헬리우스, 한독어패럴의 크라시 등 대표적인 우리 상표 와이셔츠들은 외제와 비슷한 품질에 장당 2~4만원의 합리적인 가격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에게 철저하게 외면을 당합니다.
와이셔츠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 동안 브랜드만 빌려주던 외국 기업들이 시장 개방과 함께 한국에 직(直) 상륙할 것이라며, 고유 상표를 개발하려는 업계의 노력과 헛된 상표에 현혹되지 않는 소비자의 지혜가 합쳐 져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국내에서 만든 동일한 품질의 와이셔츠가 외국 브랜드를 사용한 덕분에 더 잘 팔리는 것은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평가가 제품의 물리적 속성에만 근거한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