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부여로 천도한 후 왕실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혼란에 빠졌고, 실권을 장악한 지역 귀족들은 미천한 집안 출신이었던 서동을 왕위에 올려 정치적 패권을 확고히 하고자 했다. 하지만 서동은 귀족들에게 휘둘렸던 이전의 왕들과는 달리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왕위에 오른 무왕은 무너진 왕실을 바로 세워 백제를 부흥시키고, 정치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천도를 단행했는데, 그곳이 익산이다. 익산 곳곳에는 보국안민과 삼국 통일의 원대한 포부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온 무왕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서동공원 백제 무왕 동상
화려했던 백제의 마지막 천도지, 익산
미륵산 남쪽 끝자락, 너른 구릉지에 펼쳐진 왕릉지유적은 무왕이 백제의 왕궁으로 자리 잡은 곳이다. 동서 245m, 남북 490m에 이르는 반듯한 장방형의 왕궁지는 외곽 담장과 함께 14개의 건물터가 발견된 최초의 고대왕궁이다. 백제의 기억을 품고 오롯이 왕궁을 지키고 있는 왕궁리5층석탑(국보 제289호)은 높이가 8.5m에 이른다. 왕궁리5층석탑을 중심으로 뒤로는 금당지와 강당지, 넓은 후원이 자리하고, 지대가 낮은 북서쪽에는 공방터와 대형화장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 금과 유리 등으로 장신구를 만들었던 공방터, 우리나라 최고의 위생시설인 대형화장실은 백제왕궁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독특한 유적이다. 공방터는 귀한 신분계층만 사용하던 금제품을 왕궁 내에서 만들게 해 외부로의 유출을 관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방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대형화장실은 구덩이를 파고 좌우에 나무기둥을 세워 만들어졌는데, 가장 큰 곳은 길이 10.8m, 폭 1.8m에 이른다. 퇴적토에서는 회충, 편충 등 기생충 알이 발견됐고, 화장지 대신 사용했던 25~30cm 크기의 뒤처리용 나무막대도 발견됐다.
왕궁리유적전시관은 왕궁을 상징하는 금제품, 유리제품, 수부명 인장와, 연화문 수막새, 공방용 도가니 등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1,400여
점의 유물 중 300여 점을 선정해 전시하고 있다. 또한 5가지 주제로 구성된 공간은 왕궁지유적의 이해를 돕고 백제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백제의 왕궁·왕궁유적관’에서는 왕궁과 사찰유적을 모형으로 만들어 왕궁지의 옛 모습을 재현해 놓았고, ‘왕궁의 생활관’에서는 출토된 유물을 통해 왕궁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왕궁리 유적의 백제건물관’에서는 백제의 건물 양식을, ‘백제왕궁관’에서는 서울, 공주, 부여, 익산에 이르는 백제왕궁의 역사를 보여주며, 왕궁을 사찰로 사용했던 이곳만의 독특한 역사도 확인할 수 있다.
왕궁리 유적전시관. 왕궁과 사찰유적을 재현한 모형으로 왕궁지의 옛 모습과 왕궁의 생활상을 관람할 수 있다. 당시의 유물도 볼 수 있다.
신분을 초월한 사랑의 노래, 서동요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무왕의 어릴 적 이름 서동은
‘마’를 캐고 살았던 데에서 온 것이다. 시장에서 마를 팔던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 공주가 매우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그녀를 흠모하게 됐다. 매일 꿈에서 나타나는 그녀를 너무 보고 싶었던 서동은 신라의 수도 경주로 몰래 들어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마를 공짜로 나눠 주며 ‘선화공주는 남몰래 시집을 가서 서동 서방을 밤에 몰래 안고 잔다.’라는 노래, 서동요를 부르게 했다. 이 노래는 순식간에 퍼져 진평왕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선화공주는 궁궐 밖으로 쫓겨났다. 이렇게 해 선화공주와의 만남을 이루게 된 서동은 자신이 마를 캐던 산에서 금덩이를 캐내 진평왕에게 보냈고, 선화공주와의 결혼을 이루게 됐다는 이야기다. 오금산에 자리한 익산토성(사적 제92호)은 둘레 690m, 동서로 뻗은 100m 내외의 산등성이에 흙과 돌로 쌓은 포곡식 토성으로 현재는 남문지와 수구지, 건물지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서동이 마를 캐고 오금을 얻은 곳이라 하여 오금산성으로도 불리며, 고구려 왕족 안승이 자리 잡은 후 생긴 보덕국이 있던 곳이라 하여 보덕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익산 석왕동에는 남북으로 2기의 무덤이 있는데, 쌍릉(사적 제87호)이라 부른다. 200m 정도 거리를 두고 자리한 쌍릉은 지름 30m, 높이 5m의 북쪽 무덤을 대왕묘라 하며, 지름 24m, 높이 3.5m로 규모가 작은 남쪽의 것은 소왕묘라고 한다. 백제 말기의 굴식돌방무덤으로, 발굴 당시 돌방 안에서 잘 보존된 목관이 발견됐다. 한적한 오솔길로 이어진 쌍릉의 주인에 대해서는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능이라는 설과 마한의 무강왕과 그 왕비의 능이라는 설이 전해지는데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금마면 궁남지를 둘러싸고 조성된 서동공원은 100여 점의 조각상이 곳곳에 설치된 문화 휴식처다. 백제 역사의 마지막 부흥기를 이끌었던 무왕을 기리는 이곳 중앙광장에는 ‘무왕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서동과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이 느껴지는
‘서동요’ 조각상이 시선을 잡는다. 서동공원 내에 있는 호수 궁남지에도 서동요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백제 무왕 35년, 궁성의 남쪽에 못을 파고 이십여 리에서 물을 끌어다가 채우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못 가운데 섬을 만들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이곳이 백제 무왕 때 만든 궁의 정원이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좌)미륵사지 동탑. 발굴 당시 원형이 남아있지 않아 서탑과 옛 문헌을 근거로 복원된 것이다.
(우)미륵사지 당간지주. 높이 각각 3.95m. 보물 제236호로 미륵사지 남쪽에 현재 2기의 당간지주가 동서로 약 90m의 간격을 두고 원위치에 남아 있다.
미륵사지터. 미륵사는 백제 무왕에 창건되어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폐사되었다. 1980년부터 1995년까지 국립문화재연구소 주도하에 체계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사실이 입증되었다.
다시 태어나는 백제의 꿈, 익산 미륵사지
삼국유사 기이 편에 따르면 무왕이 선화공주와 함께 사자사에 가는 도중 용화산 밑의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났고, 이에 부인의 간청으로 절을 세웠다. 이곳이 바로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이다. 무왕은 왕권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담아 미륵사를 어느 사찰보다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었다. 그 결과 한 사찰에 3개의 대웅전과 3개의 탑이 있는 독특한 구조의 동양 최대 사찰이 완성됐다. 지금은 2개의 석탑이 남아 있는데, 서쪽에 있는 미륵사지 석탑과 동쪽에 있는 미륵사지 동탑이 그것이다. 익산 미륵사지는 1974년 동탑지 발굴조사를 시작으로 1980년부터 미륵사지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그리고 1992년 미륵사지 동탑 복원이 먼저 진행됐다. 동탑은 발굴 당시 원형을 잃은 채로 무너져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현존하는 서탑과 옛 문헌을 근거로 복원한 것이다. 국보 제11호로 지정된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석탑이다. 특히 탑의 소재가 목재에서 석재로 교체되면서 진행된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1915년 무너지기 직전 상태를 일제가 보수한다며 시멘트를 발라 석탑 형태를 유지시켜 놓았던 것을 원형을 되살리고자 2001년, 해체 복원이 결정됐다. 해체하던 중 석탑 1층 심주석 중앙의 사리공에서 금제 사리장엄구와 금제 사리봉안기라는 중요한 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특히 백제 왕후가 미륵사를 창건하고 탑을 세웠다는 기록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이 담긴 사리봉안기는 미륵사의 창건 배경과 창건자, 건립 연대 등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 해체에만 10년, 연구에 5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던 작업은 이제 복원을 남겨두고 있다. 복원 수준에 대한 많은 고민이 있었으나 결국 남아 있는 기존 석재로 1, 2층은 사면 전체를, 3층에서 6층까지는 훼손된 형태대로 복원하기로 결정됐다. 2013년 11월 시작된 복원 작업은 2016년 말 완료를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미륵사지에는 이곳을 찾은 관람객을 위해 관람로가 조성돼 있는데, 이 관람로에서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3탑 3금당의 가람 배치, 2기의 당간지주, 연꽃무늬를 새긴 석등받침과 지붕돌인 옥개석 등 미륵사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서는 미륵사지의 역사와 함께 금제 사리장엄구와 금제 사리봉안기, 금동향로(보물 제1753호)를 비롯한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지금 익산 곳곳에는 오랜 시간 묻혀 있던 유적을 발굴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무왕이 천도해 백제의 부흥을 꿈꿨던 곳, 익산. 시간을 지나 되살아나는 생생한 백제의 이야기가 이제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하고 있다.
tip 1. 익산의 맛
본향 한정식
마 삼합, 산약전골, 마약떡 등 익산 대표 특산물인 마를 활용한 창작요리를 선보이는 한정식집이다. 찰진 밥에 마와 견과류 등 33가지 약재로 만든 마약밥(1만원)과 백제 무왕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정식 메뉴(1~7만원)가 이색적이다.
익산시 무왕로 951-8 / 063-858-1588
미륵산순두부
미륵사지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미륵산순두부는 국내산 콩을 사용해 두부를 만드는 곳으로, 현지인들도 자주 찾는 맛집이라고 한다. 마를 넣은 순두부로 만든 마순두부찌개(8천원)와 조미료 없이 만든 밑반찬에서 정성이 느껴진다.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97 / 063-836-8919
tip 2. 투어 프로그램
무왕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
왕궁리유적전시관에서 진행하는 무왕길 여행은 무왕과 관련된 유적지를 찾아 걷는 도보 여행 프로그램이다. 왕궁리유적, 제석사지, 서동생가터, 용샘, 익산쌍릉, 익선토성, 미륵사지, 사자사지, 미륵산성 등을 6가지 코스로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매년 2월부터 11월 4째주 토요일에 운영하며, 4시간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프로그램 참여 신청과 내용 문의는 왕궁리유적전시관 홈페이지(http://wg.iksan.go.kr)를 통해 할 수 있다.
익산시티투어
익산의 주요관광지를 투어버스로 이동해 체험할 수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과 농촌체험 등 매달 다른 테마와 코스로 진행되며 해설사가 여행에 함께해 익산의 다양한 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 3월부터 11월까지 매월 둘째, 넷째 주마다 정기적으로 운영된다. 여행코스와 일정은 익산시 문화관광 홈페이지(http://iksan.gojb.net)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선착순 40명 예약신청을 받으며 성인 2천원, 어린이 1천원의 탑승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