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오죽헌
처음 목적지는 오죽헌으로 향했다. 비를 머금은 대나무와 소나무 향기가 오죽헌 초입에서부터 머리를 맑게 했다. 오죽헌은 강릉을 대표하는 유적지로 신사임당의 친정집이자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이다. 집 주변에 검은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오죽헌(烏竹軒)이라는 가호(家號)가 붙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주거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한 곳이다. 신사임당은 지금의 오죽헌 몽룡실에서 율곡 이이를 1536년(중종 31)에 낳았다. 율곡을 낳기 전 검은 용이 바다에서 집으로 날아 들어오는 태몽을 꾸었다 하여 산실을 몽룡실(夢龍室)이라 했으며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율곡은 이곳에서 여섯 살 때까지 생활하였다. 신사임당이 서울의 시가가 아닌 친정집에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16세기 당시만 해도 남자가 여자 집에 가서 결혼식은 올리고 자식을 낳고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 풍습이었기 때문이다. 신사임당은 서울 시가의 살림을 도맡아 하기 전까지 20여 년을 강릉에서 주로 살았다. 풍습도 있었지만 친정에 아들이 없었던 것도 이유가 되었다.
자경문을 통해서 오죽헌 경내로 들어간다. 경내 입구부터 소나무와 대나무, 배롱나무의 꽃향기가 향기롭다.
사랑채 툇마루 기둥에는 추사 김정희 필체의 주련이 걸려 있다.
오죽헌은 신사임당의 외증조할아버지 최응현의 별당으로 온돌방과 툇마루로 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일자형(一) 건물이다. 현재 오죽헌은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 <자경문> 등의 문장을 액자로 만들어 세워두고 율곡 이이의 철학을 전하고 있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으며 현재의 삶을 돌아보며 어떻게 살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진다.아직도 그때의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이곳에 생존해 있는 것처럼 오죽헌과 몽룡실은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는 듯했다. 뒤뜰에는 신사임당과 율곡이 직접 가꾸었다는 매화나무가 초록잎 무성하게 서 있다. 봄이면 홍매화 꽃이 피는데 특히 신사임당은 매화를 좋아해 매화를 자주 그리는 것은 물론 딸의 이름을 매창이라 짓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오죽헌 경내에는 한창 분홍꽃을 피운 배롱나무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한여름 백일동안 꽃을 피운다 하여 백일홍이라고도 하는 배롱나무 역시 600년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꿋꿋하게 서 있다.
오죽헌 경내에는 율곡 이이의 영정을 모신 문성사(文成祠)와 사랑채와 안채, 어제각(御製閣), 율곡기념관이 있다. 문성(文成)은 1624년 인조대왕이 율곡 이이에게 내린 시호(諡號)로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죽헌 오른쪽의 작은 중간문을 지나면 안채와 사랑채로 이어지는데 사랑채의 주련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판각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어제각에는 정조의 어명에 따라 율곡의 <격몽요결>의 원본과 직접 사용한 벼루를 보관해 두었다. 벼루를 손수 갈며 백성의 평안을 위한 글을 써 내렸을 율곡의 모습을 잠시 상상해본다. 율곡기념관에는 율곡과 어머니 신사임당, 이매창, 옥산 이우 등 오죽헌과 관련된 인물들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가까이서 시대의 대학자 율곡과 뛰어난 여류화가이자 현모양처 사임당의 지성과 예술성을 느낄 수 있다.
오죽헌 내부. 율곡 저서의 글귀들이 걸려있다.
선교장 활래정. 옛 선비들이 머물며 풍류를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선조들의 지혜와 멋, 풍류가 흐르는 곳, 선교장
오죽헌을 나와 인근에 위치한 선교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내린 비를 한껏 머금은 초록의 연잎과 활래정(活來亭)이 한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져 있다. 피로했던 두 눈이 맑아진다. 선교장은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이 1703년에 지은 가옥이다. 지은 지 300년이 지났지만 당시의 12개 대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을 만큼 상태가 양호하다. 우리가 방문했던 날은 일부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주변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조선 후기 전통 가옥의 멋을 가까이에서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선교장은 안채와 사랑채, 별당, 정각 등 99칸의 정형적인 상류층 가옥이다. 대문을 중심으로 행랑채만 23칸 일자(一)로 펼쳐져 있으니 그 규모가 짐작될는지. 선교장에서 가장 멋스러운 곳이 바로 활래정이다. 활래정은 선교장 행랑채 바깥마당의 연못에 세워진 정자로 연꽃을 심고 연못 속에 네 개의 돌기둥을 세워 부교로 건너게 했다. 관동팔경을 지나는 선비들이 이곳에 머물며 수많은 시문을 남겼을 만큼 그 풍경이 아름답기로 명성이 자자하다. 한여름 연꽃이 필 무렵 가장 아름답다. 사랑채 열화당도 선교장에서 빼놓을 수 없다. 열화당(悅話堂)은 건물의 벽이 모두 문으로 지어진 것이 특색으로 온 집안의 식구들이 이곳에서 정다운 이야기(열화)를 나누며 지내자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선교장 내 열화당 작은도서관도 있는데 후손들이 선교장 300년 출판역사를 이어받아 열화당 출판사를 설립하고 선교장의 역사를 기념하고 후대로 이어지길 기원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 관람과 도서대출은 불가하고 2시간 이상의 독서객에게 선교장 관람료를 환불해준다고 한다. 99칸 가옥을 천천히 거닐어 본다. 선조들의 지혜와 멋, 풍류가 곳곳에 스며들어 그 기품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좌)열린 활래정 창문 사이로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우)솔향의 고장 강릉답게 초당마을숲은 울창한 송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채화처럼 펼쳐진 경포호 경포대
허난설헌, 허균 생가 시대의 문장을 만나다
강릉은 위대한 인물이 많이 태어난 고장이다. 대표적 인물로 율곡 이이와 여류 문장가 허난설헌,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을 지은 허균 등이 있다. 경포호와 초당마을숲과 인접해 허난설헌, 허균의 생가가 있다. 경포대해수욕장으로 통하는 초당동 길을 난설헌로라 이름붙이고, 경포호 산책로를 허균의 홍길동전으로 꾸미고 시(市)의 캐릭터를 홍길동으로 했을 만큼 강릉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경포호 소나무 숲에는 허난설헌, 허균 기념관도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한창 기념공원 조성 중이다. 허씨 가족의 오문비도 있다. 생가에 들어서니 너른 사랑마당에 ㅁ자형 본채가 있고 본채는 두 개의 대문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갈라져 있다. 마당에는 갖가지 꽃이 피어 소박한 분위기를 더하고 뒷마당에는 항아리가 장독대 위에 옹기종기 앙증맞게 자리 잡고 있다. 원형 그대로의 생가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곳에서 허균의 형제가 살았다고 하니 곳곳에서 허균 일가의 정취가 느껴지는 듯하다.
허균의 아버지는 초당(草堂) 허엽으로 조선 명종대의 학자이자 정치가로 서해 유성룡과 동인의 영수였다. 오늘날 유명한 초당두부의 그 초당이다. 초당두부는 16세기 중엽 당파싸움에 밀려 강릉 바닷가에 정착한 허엽이 만들어 먹던 두부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허엽에게는 허성, 허봉, 허균, 허난설헌 등 아들 셋과 딸 셋이 있었는데 익히 알고 있는 이가 허균과 허난설헌이다. 허균은 어려서부터 자유분방한 사고와 파격적인 학문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교국가에서 불교에 대해 호의적이었으며 승려들과도 자주 교류했으며, 기생 매창과 정신적 교감을 할 정도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지은 한글소설 홍길동전은 허균의 생애와 사고를 응축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천재 여류시인이라 불리는 허난설헌은 가부장적인 조선시대 보기 드문 뛰어난 여성 문인으로 훗날 중국, 일본의 문인들에게서도 격찬 받았다고 한다. 허난설헌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은 문장가인 둘째오빠 허성으로, 허성은 친구이자 당대 가장 뛰어난 시인 이달에게 동생의 교육을 맡겼다고 한다. 결혼 생활의 불행과 연이어 두 자식을 잃으며 허난설헌도 병이 들어 27세의 젊은 나이에 목숨을 다했지만 그녀가 남긴 시 구절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스며들고 있다. 생가를 나와 초당마을숲을 거닐어 경포호(鏡浦湖)에 닿았다. 경포호 경포대(鏡浦臺)는 송강 정철이 관동팔경 중 으뜸으로 꼽았을 만큼 그 풍광이 뛰어나다. 경포대에서 내려다보는 경포호는 거울처럼 맑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앞면 5칸 옆면 5칸의 정사각형 정자 경포대는 48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데, 그 추녀 밑에는 경포대란 편액과 숙종의 어제시를 비롯하여 여러 명사들의 기문(記文), 시판(詩板)이 있어 다양한 문화 유적을 만날 수 있다. 시원한 경포호 바람에 한여름 더위로 지친 심신이 깨어나는 듯하다. 세월은 변했어도 역사와 전통은 그곳 강릉에서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찾아가는 길
오죽헌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 3139번길 24
033-660-3301, ojukheon.gangneung.go.kr
선교장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 63
033-646-3270, www.knsgj.net
허균허난설헌기념관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 477-8
033-640-4798
경포호, 경포대
강원도 강릉시 안현동 산1
033-640-5129
강릉 관광
tour.gangneung.go.kr
033-640-5125, 5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