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 가는 잔치 No,
격식 없이 즐기는 소소한 파티 Yes
요즘이야 공교육 현장에서도 멀티미디어 기기를 통한 동영상 교육이 주를 이룬다지만, 필자가 소싯적엔 공책 사이에 책받침을 대고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동년배 사내 녀석들에게 소피마르소는 요즘 아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신과 같은 존재였다. 소피마르소 책받침은 책받침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그녀의 데뷔작이었던 ‘라붐’의 영화 스토리에서 또래라고 하기엔 너무도 비교가 되는 일상 생활 속의 자유 내지는 이성교제의 자연스러움은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영화 ‘라붐’ 은 파티 혹은 축제라는 뜻이며, 아직까지도 영화 속 파티장에서의 헤드폰 장면은 각종 패러디 및 광고물로 활용되고 있다.
미디어나 스크린을 통해 접하게 된 외국의 파티와는 우리의 삶이 동떨어진 것 같아서였을까? 불과 십수 년 전만해도 우리생활 속에서 파티라는 말은 낯선 키워드였고, 우리와는 동떨어진 사람들만의 향유 문화로 여겼었다. 파티는 왠지 고급스럽고 유별난 행사 이상의 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는 우리의 생애주기를 봐도 삶은 끊임없는 희로애락의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사람에게 있어 희로애락은 혼자 느끼는 감정이 아닌,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과 함께 그 감정을 공유하며 서로 간의 동질감을 느끼게 해 주는 일종의 행사와 연결 되게 마련이다. 그러한 행사를 우리는 잔치 혹은 연회라는 표현으로 혈연 혹은 지연 위주의 다소 폐쇄적인 친목유대를 강화하며 살아왔다.
반면에, 외국의 파티 개념은 기존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행사라기보다는 새로운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기 위한 오픈형 행사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이렇듯 행사의 대상이 다르다 보니, 우리네 잔치는 그럴싸한 장소에 푸짐한 음식, 가급적 많은 이들이 찾아와야 성공적인 행사로 인식되는 반면, 외국의 파티는 참석자 모두가 파티의 주최자 개념으로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형성 자체에 비중을 둘 수 있는 것이다.
일상으로의 초대, 파티의 대중화
하루도 쉼 없이 부지런히 벌기만 해야 했던 시절에는 1년에 한두 번 연회를 통해서 내가 이만큼 열심히 살고 있노라 과시하는 행사가 필요했었다. 삶의 양적 성장은 있지만 질적으로 빈곤함을 느끼던 시절에는 맛으로 정평이 난 곳들을 찾아 헤매며 우리 스스로를 안도하게 했다. 피곤한 격식은 걷어 내고 주변인들과 함께 어울려 담소를 나누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는 영화 속 파티의 개념이 서서히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1인 가구를 위시한 소인 가족 구성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잔치, 연회라는 다소 부담되는 행사 스타일에도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 모임에서부터 동호회 및 네트워크 행사에도 소규모 파티 형식으로 간소화 되는 추세이다. 미디어, 인터넷의 발달도 파티의 대중화에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 불과 3~5년 전만 해도 먹방 콘텐츠가 인기리에 방영 되었지만, 지금은 집에서 스스로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콘텐츠로 무장한 쿡방이 연일 대중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집에서 간단하게 즐기는 홈 파티에 대한 요리 레시피부터, 데코레이션 방법, 분위기 연출 방법 등 무궁무진한 홈 파티 콘텐츠가 연일 업로드 되는 중이다.
청양의 해, 을미년이 저물어 간다. 누구를 위해서 살아 왔다고 표현하는 것은 모순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명백한 것은 나와 우리가족을 위해 매시간을 소중하게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온 우리 스스로에게 격려와 감사의 마음을 전할 시간이다. 소소하지만 진심을 담아 이야기 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 우리 가족만의 파티를 준비해 보자. 단언컨대, 홈 파티에 격식은 필요 없다. 작은 양초, 잔잔한 음악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