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적 동물’의 ‘비이성적 행동
1960년,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악명 높은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너무나 놀랐다. 그는 피에 굶주린 악귀일 것이라 상상했는데, 만행을 저지르기엔 너무나도 평범한 얼굴이었다. 어떤 이념에 광분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었다. 그는 법정에서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세모자 사건’이 있었다. ‘두 아들이 전남편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데, 이후로도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행동은 계속된다. 수사 결과 이 사건은 엄마의 허위 자작극인 것으로 드러났다. 엄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이유는 단 하나. “시킨 대로 하지 않으면 두 아들이 다치거나 죽는다.”는 ‘무속인 권력’에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발생한 것이다.
우리는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 하는데, 왜 불합리한 명령에 ‘비이성적 행동’으로 반응하는가? 특히, 우리는 전쟁을 겪으면서 인간의 비이성적 행동을 수없이 목격했는데, 2차대전 전범재판을 보며 “사람들은 왜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진 스탠리 밀그램은 의문을 풀기 위한 실험을 시작한다.
심리학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비인간적인 실험
1961년 ‘기억력에 관한 실험을 위해 교사 역할을 해 줄 사람을 모집합니다.’라는 신문 광고를 보고 2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평범한 사람들 40명이 참여한다. 실험 참가자는 방으로 들어간다. 방에는 흰색 가운을 입고 엄격해 보이는 연구자가 있고, 테이블에는 15V에서 450V까지 30단계의 전기 충격기가 있다. 교사 역할을 맡은 실험 참가자는 옆 방 전기의자에 묶여 있는 학생에게 문제를 내고 틀린 답을 말할 때마다 처벌로 전기 충격을 준다. 한 문제를 틀릴 때마다 충격의 세기는 강해진다. 그 대가로 4달러 남짓의 돈을 받게 된다. (당시 맥도날드의 치즈버거가 19센트였으니, 치즈버거를 20개 이상 사 먹을 수 있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학생은 자꾸 답을 틀리고, 실험실에서 꺼내달라는 학생의 비명이 나오기 시작한다. 참가자는 “이러다 죽기라도 하면 어떻게 합니까?” 흰색 가운을 입은 연구자는 “절대 죽지 않으니 계속하라, 그리고 모든 건 내가 책임진다.”라고 한다. 실험은 계속되었고, 300V에서 소란이 멈춘다. 교사 역할의 참가자는 더는 못하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연구자는 “실험을 계속하세요”라며 방을 나간다. 이 실험이 계속되면 반대편 학생은 위험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리고 아무도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참가자는 스스로 자신의 임무에 총력을 기울이며 전기 충격을 최대치까지 올린다. 정적이 흐르고 교사는 상기된 얼굴로 방을 나선다. 학생은 죽었는가?
전기 충격기는 가짜였고, 전기의자에 묶여 있던 학생은 배우였다. 그리고 실험의 진짜 목적은 ‘권위에 대한 복종 연구’였다. “나는 알고 싶었다. 왜 사람들은 비인간적인 명령에 맹목적으로 따르는지, 왜 정의롭지 못한 권력자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는지 정말 알고 싶었다.”며 이 실험을 진행한 밀그램은 기껏해야 0.1% 정도의 사람만이 450V까지 전압을 올릴 것으로 생각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비인간적인 행위를 가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예일대 학생 92%는 “그럴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65%. 게다가 실험 참가자들은 말한다. “내가 왜 그런 무자비한 일을 했을까요? 저 자신이 이해가 안 갑니다. 시켜서 한 것뿐이에요”라고.
사람의 인격이 원숭이의 것보다 나은가?
밀그램은 실험을 통해, “그저 맡겨진 일을 할 뿐 어떤 악의도 품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끔찍하리만치 파괴적인 범죄의 대리인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스스로 행한 일이 초래할 파괴적 결과가 극명히 보이는 상황에서조차, 그리고 기본적인 도덕 기준에 반하는 행동을 해달라고 요청을 받았을 때조차, 권위에 저항할 대처수단을 가진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드물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조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평생 보고 겪는다.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보인 초등학생 아이들 간의 권력 형성과 붕괴, 그리고 복종은 어른이 되어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지속한다. 회사는 권한에 기반을 둔 위계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권한은 지위에서 나오는 권력으로(‘결정권 Power to make decision’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나의 상사는 나의 보상과 처벌에 결정권을 가지기 때문에 우리는 복종과 순응을 생활화한다. 직장인의 90도 인사는 그 중요한 표현이다. 권력의 무자비한 사용은 자발적 복종을 초래한다. 최근 ‘인분 교수’ 사건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교수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협회에 제자를 취업시킨 후, 업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폭력을 행사하고 인분을 먹이는 엽기적인 행각까지 벌이는데, 이 기막힌 상황에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제자들도 함께 가세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사람이 매일 그렇게 맞게 되면 머릿속이 바보가 된다.”며, 그런데도 탈출하지 못한 이유는 교수에 대한 꿈과 1억3천만 원의 공증각서, 그리고 가해자들의 절대적인 권위에 굴복당해 스스로 ‘본인이 잘못해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세뇌였다.
여기 버튼 앞에 붉은털원숭이 한 마리가 있다. 버튼을 누르면 먹이가 나오는 대신 상대방 원숭이는 고통스러운 자극을 받게 된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붉은털원숭이는 15일 동안 버튼을 누르지 않았고 15일 동안 먹이를 얻지 못했다. 우리는 직장에서 잘못된 일을 보고도, 동료가 형편없는 대접을 받는 것을 보면서도 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가만히 있지 않았는가? 붉은털원숭이의 이타적인 행동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준다.
쇼핑의 또 다른 이름, ‘메시지에의 복종
밀그램의 실험에서 권위와 권력을 나타내는 기재들이 있었다. 흰색 가운과 엄격한 목소리, 대학교의 명성 등이 그것이다. 권위와 권력에 복종하는 인간 심리는 마케팅에 흔히 사용된다. 화장품이나 제약광고를 떠올려 보라. 많은 경우 흰색 가운을 입은 전문가가 제품의 효능에 대하여 증언을 하곤 한다. 사실, 전문가가 아니어도 좋다. 흰색 가운은 의사, 연구원 그리고 요리사 등 그 자체가 권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구매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위기와 불안을 느끼고, 결국 구매한다. TV홈쇼핑 쇼핑호스트는 제품의 수량 부족, 시간의 제한 등 긴박한 상황을 만들면서, 평형이 유지되는 소비자의 상태를 깬다. 기회는 지금뿐이라며 “방아쇠를 당겨라 Trigger effect”는 안내를 하고 우리는 구매를 한다. 이렇게 쇼핑의 상황을 좌지우지하는 쇼핑호스트의 멘트 자체가 권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떤 특성이 있는 집단의 결정도 권력이 된다. 광고 문구를 기억해 보라. 종종 광고에서는 ‘직장인이 가장 많이 쓰는’, ‘앞선 여성의 선택’이라는 등의 메시지로 준거집단의 결정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되게 한다. 우리는 현재 속해 있는 집단을 의식하며, 어 떤 집단에 속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래서 의지와 상관없이 그 집단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2 준거집단의 양식을 따르는 것이다. 마치 놀이동산에 있는 놀이기구를 타려면 입장권을 구매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유행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타인을 의식하고 동조하려는 심리적 압박이 권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신은 고의로 오답을 말할 수 있는가?
밀그램의 실험 이전에 사회심리학의 대가이자 밀그램의 스승인 3솔로몬 애쉬의 실험이 있었다. 실험은 개별적인 사고가 집단사고에 쉽게 지배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그는 왼쪽의 막대 그래프와 서로 다른 세 개의 막대 그래프가 있는 오른쪽을 비교하여 크기가 같은 막대 그래프를 하나 선택하는 간단한 실험을 했다. 1명의 피험자와 7명의 바람잡이가 이 문제를 함께 풀도록 했는데, 바람잡이들이 모두 엉뚱한 답을 제시하자 피험자 역시 이들과 같은 엉뚱한 답을 제시했다. 이러한 심리를 반영한 광고가 있었다. 광고에서는 “모두가 ‘YES’라고 할 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친구, 그 친구가 좋다. ‘YES’도 ‘NO’도 소신 있게” 라고 말해 한때 유행이 되기도 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너무나 정교하게 디자인되어 있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본능이 마비되어 다양한 형태의 권력에 대하여 반사적으로 복종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권위와 권력에 맹목적으로 복종하지 않는다. 그 저항은 혁명으로 나타났고, 그 혁명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온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내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은 나라고 하지 않는가? 복종과 순응에서 조금은 벗어나 자기중심적으로 살아보자!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므로.
1 Stanley Milgram (1933.8.~1984.12. 美. 사회심리학자)
《권위에 대한 복종 Obedience to Authority》 저서를 통해, 예일 대학교 부교수 재직 중 실시한 ‘복종실험’을 세상에 알림. 애쉬의 동조실험과 함께 2차 세계대전에서 발생한 잔혹한 인간군집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이 되었다.
2 Reference Group
사람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집단에 속하며, 특정 집단은 개인의 사고방식, 태도, 행동의 형성에 영향을 주며 기준이 되기도 한다.
3 Solomon Asch (1907.9.~1996.2. 美. 사회심리학자)
사회심리학의 개척자. 프린스턴 대학 교수 시절 실시한 집단 압력에 대한 연구-‘순응실험Conformity Experiment’은 밀그램의 실험과 더불어 심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실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