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는 천재의 대명사이다. 4살에 음악공부를 시작하여 5살에 작곡, 6살부터는 누나 난네를과 함께 유럽 전역으로 연주를 다녔다. 그 후 고향 잘츠부르크의 주교에 속한 궁정 음악가가 되었으나, 음악가로서 거의 유일한 정규직인 궁정을 뛰쳐나와 비엔나에 정착해 자유 음악가로 살았다. 오스트리아의 황제 요제프 2세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오페라 청탁을 받는 등 궁정 안팎으로 음악가로서 이름을 크게 날렸으나, 끝내 궁정 안에 자리를 잡지 못했고 35세에 사망했다. ‘천재’라는 수식어에 어울리는 듯한 놀라운 에피소드가 많았던 모차르트, ‘신이 사랑하는’이란 뜻의 ‘아마데우스(Amadeus)’로 더 익숙한 그는 우리에게 약 300여 통의 편지도 남기고 갔다. 그것들을 읽다 보면 우리가 잘 몰랐던 모차르트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렇다.
일러스트 하고고
아버지가 천재로 길러낸 아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정말 좋아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저의 사랑은 다음의 일로 아실 수 있습니다. 저는 어떤 소원이나 욕망도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단념하고 있습니다. 만일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면, 명예를 걸고 맹세합니다만,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당장 이곳의 근무를 사퇴하고 큰 연주회를 열고 네 명의 제자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 자신의 행복을 뒤로 젖혀 놓지 않으면 안 되는 사실에 몹시 우울하기도 합니다 (…) 젊은 시절을 이렇게 거지처럼 무의미하게 보낸다면, 이는 무척 슬프고 크나큰 손실입니다. 그것에 관하여 아버지의 호의 있는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궁정 음악가이자 음악 교사로 유능했다. 레오폴트가 만들어낸 탁월한 기획 작품이 모차르트라고 생각하는 학자도 많다. 음악적 재능을 갖고 태어난 모차르트에게 어릴 때부터 양질의 음악교육을 시켰고, 그로 인해 모차르트가 대단한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천재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천재로 길러졌다는 뜻이다. 이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모차르트는 아버지와 굉장히 친밀한 사이였음은 분명해보인다. 모차르트가 쓴 편지의 상당수는 아버지와 주고받은 것이고, 그는 항상 자신의 근황을 시시콜콜 알리며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했다. 이런 행동은 애정욕구가 몹시 강했던 모차르트가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으려는 측면이었고, 심지어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 위해 음악에 더 열심히 매진했다는 해석도 있다. “저를 사랑해주시겠어요?”라는 말을 자주 했다는 기록처럼, 모차르트는 아버지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자 하는 바람이 컸던 아이였다. 그렇다고 그가 아버지의 그늘에 머물기만 하지는 않았다. 그런 낌새를 직감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간곡한 편지를 보낸다.
“사랑하는 아들아, 부탁하건대 이 편지를 찬찬히 읽어다오. 어린 네가 의자 위에 서서 내게 <오라니아 피가타파>를 불러주지 않고는 잠자러 가지 않던 시절, 노래가 끝난 뒤 내 콧등에 뽀뽀를 하면서 내가 늙으면 나를 유리상자 속에 넣어 공기로부터 보호하고 영원히 네 곁에 명예롭게 보존하고 싶다고 말하던 그 행복했던 순간들은 이제 지나가버렸구나 (…) 너를 떠나 보낸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단다. 하나는 안정된 좋은 일자리를 찾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그 일이 실패하더라도 돈벌이가 좋은 대처로 가는 것이었다. 네가 세상에서 잊히는 평범한 음악가가 되든가, 아니면 후세가 책에서 읽을 유명한 악장이 되든가, 또는 네가 여자 하나 때문에 짚단 이불 위에 한 방 가득 굶주린 아이들만 얻는가는 모두 너의 이성과 생활 방식에 달려 있다.”
이에 일주일 후 아들의 답장은 아버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버지의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었다. 모차르트에게 사랑의 창세기가 열렸던 것이다.
“제가 의자 위에 서서 <오라니아 피가타파>를 아버지께 불러주었던 시절은 물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 사랑과 복종심이 줄어들었던가요? 더 이상 말하지 않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 때문에 뮌헨의 그 어린 가수를 비난하시다니, 제가 바보 멍청이었다고 고백해야겠군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잘츠부르크로 당장 돌아오라고 명령했지만, 그는 사랑하는 ‘그 어린 가수’가 있는 뮌헨으로 향한다. 아버지는 아들이 ‘방탕한 꿈’을 꾼다고 나무랐다. 모차르트는 애정이 담뿍 담긴 편지로 아버지를 위로해 드린 다음 완곡하게 이렇게 항의한다.
경제적 독립과 결혼으로 아버지를 벗어나다
“저는 계속해서 꿈을 꿀 겁니다. 이 땅 위에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하필 방탕한 꿈이라니요! 평화로운, 달콤한, 상쾌한 꿈이라고 하셔야지요! 평화롭거나 달콤하지 않은 것들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슬픔과 약간의 즐거움, 그리고 몇몇 참을 수 없는 일들로 이루어져 제 인생을 만들어 낸 현실 말입니다!” 청춘의 모차르트가 여자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아버지는 모차르트가 아직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라며 다독이고 타이르다가 윽박지르기도 했다. 아버지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아들, 아직 미숙한 아들에게 제대로 된 길을 열어주고 싶은 아비의 충돌은 급박하게 오가는 편지들 속에 팽팽하게 흐른다. 특히 여자 문제에 관해서 모차르트는 때로는 아버지의 말을 받아들이는 듯하나 결국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설적으로 토로한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혼자서 잘 해내고 있다고 안심시키며 언제나 자신을 믿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직접 얼굴을 마주하여 이야기하지 않고 편지로 나누는 대화에는 한계가 있었다. 서로의 기대와 걱정, 희망과 불안, 확신과 불만 등이 엉키면서 서로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커져만 갔다.
“그동안의 저의 노력은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확실한 수입을 가지는 데 있었어요. 그러면 불시의 수입과 합쳐서 여기서 어엿이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제 결혼하는 일입니다! 이런 생각을 들으시고 깜짝 놀라십니까? 그러나 가장 사랑하는 아버님, 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마침내 저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바라고 있던 것을 털어놓았습니다만, 이번에는 저의 이유를 매우 근거 있는 까닭을 털어놓게 해주십시오.” 자신의 상황과 처지, 기질과 성격 등을 나열하고 지금이 아내가 절실하게 필요할 때이며, 심지어 결혼 상대가 아버지가 몹시 싫어하여 절대로 만나지 말라고 거듭 당부하던 베버 집안의 딸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하지만 콘스탄체는 ‘모든 딸들 가운데서 제일 선량한 아가씨’로 ‘온 집안의 일을 모두 뒷바라지하는 아주 정숙한 여자’로 외모도 ‘밉지는 않지만 절대로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고, 낭비벽이 없고 검소한 치장에 익숙해져 있다’며 아버지가 가장 신경쓰는 경제적인 부분에 염려를 덜어놓게 한다. “제가 이 이상의 아내를 바랄 수 있는지 어떤지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의견을 묻는 것처럼 편지를 쓰고 있지만, 그는 이미 결혼의 의사가 굳건했다. 아버지의 체면과 명예를 위해 의논하는 듯한 인상이 더 강하다. 게다가 결혼하더라도 자신이 아버지를 경제적으로 돌보겠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아버님, 제가 벌어들이는 확실한 수입의 반은 아버님이 쓰시도록 하세요”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사랑받길 원했던 대상인 아버지를 벗어나 모차르트는 신체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성장했다. 그의 사랑의 대상은 부인이 된 콘스탄체와 친구들, 특히 스물네 살 연상의 요제프 하이든과 친밀한 우정으로 옮겨갔다.
부인과 친구로 대체된 아버지의 사랑
“친애하는 친구 하이든에게! 자기의 아이를 넓은 세상으로 내보내려고 결심한 아버지는 그 아들을 다행히도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고명하신 분의 보호와 지도에 맡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다름 아닌 나의 여섯 아이입니다. 나를 인정해주신 것에서 용기를 얻었기에 이들 작품을 당신에게 위임합니다. 앞으로 나는 이 아이들에 대한 모든 권리를 당신에게 양도합니다.”
- 충심으로 당신의 가장 성실한 친구인 W.A. 모차르트.자신의 생애를 ‘신동’으로 마치는 많은 연주자들과 달리, 모차르트는 자신을 천재적인 음악가로 길러낸 아버지의 강력한 그늘을 오랜 세월에 걸쳐 스스로 걷어냈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아버지를 죽인(극복한) 아들만이 자신의 세계를 열 수 있다’고 했는데, 자신에게 드리워진 아버지의 그늘을 스스로 벗어났기에 모차르트가 자기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참고서적
<모차르트의 편지>(정영일 편저, 선영사)
<필립 솔레르스, 모차르트 평전>(김남주 옮김, 효형출판)
<노베르트 엘리아스, 모차르트>(박미애 옮김, 문학동네)
오늘의 편지 이야기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 아빠에게
2017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어린이부/가족 <은상> 이은제
안녕하세요, 아빠? 저 둘째딸 은제예요.
저는 아빠 ‘딸’이라는 게 너무 좋아요.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자상하시고 친절하시니까요. 그런데 저는 요즘 고민이 있어요. 건강하시던 아빠가 병원에 가시는 일이 점점 많아졌기 때문이지요. 지난겨울에 승진을 하시면서 많이 바빠져서 눈 혈관이 터지고, 머리도 아프셔서 CT까지 찍으셨잖아요. 그런데 CT 결과가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아빠가 집에서는 표현을 안 하셔서 스트레스가 많으신지 몰랐거든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매일 수원에서 출퇴근하시고 난 뒤 주무실 수 있는 시간이 5시간 정도밖에 안 되더라고요. 제가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 아빠는 주말인데도 영어 공부를 하시다가 소파에서 주무시고 계시잖아요. 제가 힘이 세서 소파에 있는 아빠를 안방 침대로 데려다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빠가 편히 쉬신 후에 예전처럼 잘 놀아주시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어요.
밖에 벚꽃이 많이 폈는데 작년 이맘때 벚꽃 구경하러 치악산에 놀러간 것이 생각나시죠? 그때는 세렴폭포에 가서 발도 같이 담그고 발 사진도 찍고, 아빠랑 언니랑 나무 이름 많이 맞히기 시합도 했었잖아요. 올해도 그렇게 꽃구경을 가고 싶었는데 아빠가 런던 출장을 급하게 가시는 바람에 못가서 아쉬워요.
아빠! 아빠는 “가족들을 위해 회사를 다니는 건 당연한데 왜 힘들다고 하니?”라고 하셨죠? 그래도 아빠, 힘든 일이 있으실 때는 언제든지 저희에게 말씀하셔도 돼요. 우리는 가족이니까요!
- 아빠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은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