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에세이집을 선생님께 헌정하고 싶습니다
일러스트 하고고
“선생님의 견해를 저에게 유익한 가르침으로 삼겠습니다. 사실 저 역시 깊이 생각해본 결과 선생님과 마찬가지의 몇몇 결론들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써본 작품이기에 저는 거기에 그저 시금석 정도의 중요성을 부여할 뿐입니다. 선생님께서 읽어보시고 소감을 말씀해주신다면 그에 따라 저는 제가 정했던 목표, 현재 저의 처지를 잊어버린 채 추구하고자 노력하려던 목표를 그대로 간직하든가 포기하든가 할 생각입니다.”
둘의 만남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 10월,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수도 알제의 그랑 리세(중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친 32세 장 그르니에의 반에 17세 소년 알베르 카뮈가 있었다.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 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하고 여러 지역에서 교사로 일하며, 유명 출판사에서도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파리의 문인들과 교류했던 그르니에는 카뮈의 재능과 잠재력을 알아보고 물심양면 지원한다.
작가를 꿈꾸던 카뮈에게는 선배이기도 했던 그르니에가 조언을 구할 최적의 상대였다. 그때부터 카뮈의 결핵 발병과 휴양, 복학과 취직, 소설과 에세이 발표, 카뮈의 급작스런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 직전까지 235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제지간을 넘어 친구와 동지로서 우정을 만들어나갔다.
“선생님께 쓸모 있는 존재도 되지 못하고 아무런 도움도 드리지 못한 채, 선생님이 느껴주셨으면 싶은 우정을 오직 열띤 말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늘 죄송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 저의 이 보잘것없는 에세이집을 선생님께 헌정하고자 하는데 허락해주시겠습니까? 언제나 선생님의 제자인, A. 카뮈.”
평생 동안 그르니에는 카뮈를 하대하거나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들지 않았지만, 해야 할 말은 진솔하게 건넸다. 어떤 편지는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고 있으나 상당한 긴장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카뮈의 습작 원고를 본 그르니에가 편지로 비평을 전하자 답장에서 카뮈는 “우선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오늘 제가 유익하게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목소리입니다. 선생님이 제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언제나 몇 시간 동안 반발심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저는 어쩔 수 없이 깊이 생각을 하고 결국은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오직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우정을 느낄 뿐입니다”라며 스승의 참된 의도를 읽어낸다.
<이방인>은 대단한 성공이나, 마음에 좀 걸린다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치하에서 발간되어 부조리와 허무로 점철된 독특한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표현하여 단숨에 독자를 사로잡았다. 새로움은 늘 낯설기에 대중의 반응은 절대적 거부 혹은 압도적 환영으로 확연하게 나뉘는 법. 작품이 담고 있는 새로움의 가치가 당대에 얼마나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시간이 흐를수록 한쪽으로 기우는데, <이방인>은 당시 전쟁으로 고통받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신의 원고를 읽었소. <이방인>은 대단한 성공이요 – 카프
카의 영향이 내 마음에 좀 걸리긴 하지만 특히 제 2부가 좋소. 감옥장면의 페이지들은 결코 잊을 수 없소. 1부는 흥미롭지만 (…) 통일성 부족, 너무 짧은 문장들, 시작 부분에서 가령 ‘기분이 좋았다 ……’ 같은 식의 상투적 방식으로 흐르는 스타일로 인하여 주의력이 흩어지는 느낌이오. 그러나 대개 인상은 강렬하오.”
<이방인>에 대한 그르니에의 최초 평가는 솔직하되 날카롭고, 다정하되 신랄하다. 비평의 근거도 꼼꼼히 적어두어서
자신의 의견이 단순히 인상이나 기분에 의지하지 않음을 일러준다. 하지만 글은 글쓴이의 마음과 어긋나기 마련이다. 때때로 생겨난 오해를 서로 자신의 미숙한 표현 탓이라며 상대를 배려한다.
“편지를 받고 난처했습니다. 당신이 보내온 두 편의 원고가 대단히 훌륭했다고 편지를 써보낸 줄 알았는데 – 그 반대로 받아들였다니! 그렇다면 내가 제대로 표현을 못 한 것이지요. <이방인>은 탁월한 작품입니다. 그 작품은 깊고 개성적인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있어요 (…) 그러니 갈리마르(*유명 출판업자)에게 편지를 쓰고 – 원고를 보내도록 하시오. 이 편지가 한갓 오해에 불과했던 것을 씻어주길 바라오. 당신의 친구, 장 그르니에.”
스승의 지적에 따라 카뮈는 원고의 많은 부분을 수정해서 출판에 이르게 됐다. 무조건적인 지지가 결코 사랑이 아니다. 상대의 성장을 바라는 애정에서 비롯된 지적은 오해를 녹이며 더 큰 이해의 밑절미로 작용한다. 시대순으로 그들의 편지를 읽다보면, 그들의 관계는 스승-제자, 창작자-비평가를 넘어선다. 2차 세계대전의 곤궁한 시절에 각자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서로에게 최대한의 물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애쓴다.
스승과 제자, 문우, 그리고 가족
“당신은 알제(알제리의 수도)에 있으니 어쩌면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소. - 다름이 아니라 ‘대추야자’와 말린 ‘무화과’를 한 100프랑어치가량 보내줄 수 있을는지요. 이곳의 식량 사정이 좋지 않고, 내게는 아이들이 있어요! (…) 당신의 지금 형편과 관련해서는 가스통 갈리마르(카뮈의 책 출판사 사장)가 매월 긴급한 조치를 해두었어요 – 그걸로 충분치 못하면 내게 그냥 말만 해주면 돼요.”
카뮈가 한 살 무렵, 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사망했다. 아비 없이 자란 그에게 그르니에는 마음의 아버지처럼 많이 의지했고 서로를 다정하게 보살폈다. 사르트르와 더불어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카뮈가 엄청난 사회적 성공을 거둔 후에도 그들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서서히 바뀌어갔다. 마치 아들이 성장하여 나이든 아비를 돕는 것처럼 말이다.
“혹시 내게 30만 프랑을 빌려줄 수 있을까요? 그래준다면 내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당신에게 폐가 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스승의 편지를 받자마자 곧바로 카뮈는 필요한 조치를 취한 후에 답장을 보낸다. 돈은 입금했으며 급히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카뮈가 그르니에만큼 자주 편지를 쓴 상대는 시인 르네 샤르였다. 카뮈와 샤르는 13년 동안 184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아무래도 그르니에보다는 편안한 친구나 선후배의 느낌이 더욱 강하다. 글뿐만 아니라 현실정치에 몸도 던졌던 그들의 우정은 샤르가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고, 카뮈도 즉각적으로 호응하면서 이뤄졌다.
카뮈와 르네 샤르, 동지의 우애
“친애하는 알베르 카뮈, 당신은 대단한 책 ‘소설 <페스트>’를 쓰셨습니다. 아이들은 다시 자랄 수 있을 테고, 공상은 숨 쉴 수 있을 겁니다. 우리 시대엔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 저의 애정 어린 존경을 전합니다.”
첫 만남 이후 1년쯤 지난 1947년 샤르가 보낸 이 편지엔 카뮈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듬뿍 담겨 있다. 샤르에게 건넨 미완성 <페스트>의 후반부 원고 여덟 쪽에 ‘살도록 도와주는 르네 샤르에게, 우리의 왕국을 기다리며, 그의 친구이자 형제이길 바라는 알베르 카뮈’라고 적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에 대항하여 저마다의 방식으로 독립 투쟁 활동을 했던 그들이 종전 후에 다져나간 우정은 존중과 애정으로 두터웠다. 카뮈는 샤르의 고향 근처 마을에 집을 사고 싶다며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하고, 샤르는 곧바로 집을 찾아보고 진척 사항을 알려주는 등 오랜 친구와 같은 친밀함을 나눈다.카뮈는 사회적 명성이 높아질수록 적도 많아졌다. 최연소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만, 비난과 비판이 뒤섞여 카뮈를 향한 공격과 비아냥은 멈추지 않았다. 작가로서 카뮈가 고립되었을 때, 노벨상 수상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 그르니에와 샤르는 한결같이 카뮈를 지지하고 상처난 마음을 보듬었다.
“르네,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내 안에 깃든 빈자리가, 공허가 오직 당신의 글을 읽을 때 채워집니다.”
참고서적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알베르 카뮈·장 그르니에 저, 김화영 옮김, 책세상) <알베르 카뮈와 르네 샤르의 편지>(알베르 까뮈·르네 샤르 저, 백선희 옮김, 마음의숲)
오늘의 편지 이야기
내가 바라보는 곳까지 나아갈 수 있게 해준 너에게
2017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청소년부/자연 <장려상> 이연우
안녕? 넌 너의 이름이 뭔 줄 아니? 흔히 사람들은 너를
‘길’이라고 부르지. 요즘 좀 더워져서 갑갑하지 않니? 시원한 물과 손잡고 싶을 때도 있을 거야. 난 언제나 너의 친구들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단다. 아, 내 소개가 늦었네. 난 이제 중3인 이연우야. 이번 주도 너를 만나기 위해 열심히 체력훈련과 운동을 하는 중이야. 내가 너에게 이렇게 정성들여서 편지를 쓴 이유는 너한테 고마운 게 많아서야. 우리 학교는 1년에 한 번씩 지리산에 가는데 그 산을 넘는 동안 걸을 수 있게 해주고 쉼터도 만들어주고 너무 고마워. 사실 네가 미울 때도 있어. 지리산 너무 힘들거든.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가는 동안이나 정상에선 눈에 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정상에, 목표까지 올라갔다는 그 상쾌함이 얼마나 멋있는 감정인지!! 이것이 다 네 덕분이야. 그래서 매년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어. 고마워♡
내가 어렸을 때 어떤 동화책을 보았는데 그 책은 호랑이가 굴에 빠져서 한 사람이 구해주었는데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했어. 그러곤 길이랑 나무에게 재판을 받고 있는 그런 내용인데 이때 길이 이렇게 얘기했어. ‘사람들은 길을 밟아도 고맙단 얘기도 안하고 차기만 하지. 그럼
난 너무 속상해’라고 답했어(혹시 너도 그러니...). 난 그 책을 읽곤 걸어 다닐 때마다 길에게 고맙다고, 걸을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하고 있어. 잘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 만날 고맙다 하다 보니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는 거야. 길은 정말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란 걸. 이제 깨닫게 된 거지.
난 아직도 너희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있어. 결론은 길을 걸어가며 고맙다고 하며 다니는데 걷다보니 길이 있기 때문에 이 산을 넘어서 미웠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모습을 볼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목표까지 갈 수 있게 도와준
네가 너무 좋다는 거야. 지금 이 순간에도 난 너와 맞잡고 있단다. 그만큼 우린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특별한 관계지. 내가 다시 ‘지리산’을 통해 너에게 가는 그날까지 조금만 기다려줘♡
- 이연우가